시스템 대표님

백 년을 앞선 하룻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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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는 빵집 뒤편에서 시작됐다.

벽돌담 너머로 지붕 하나가 솟았다. 그 옆에 다른 지붕이 붙었다. 길이 갈라지고, 낮은 다리가 수로를 건넜다. 민재가 시선을 들자 두 골목의 끝이었던 자리에서 전차가 모퉁이를 돌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화면 쪽으로 몸을 숙였다.

전차 창가의 소년이 졸다가 유리에 이마를 찧었다. 맞은편 노인이 웃었다. 소년은 모르는 척 창밖을 봤다.

‘잠깐.’

화면의 움직임은 멎지 않았다. 민재가 무엇을 멈추려는지 고르는 동안에도 전차는 달렸다.

‘도시를 전부 한꺼번에 보여주진 마. 내가 걸어서 봐야겠어.’

[시작 위치를 유지합니다.]

민재의 시야가 빵집 앞에 내려앉았다.

붉은 의자에는 어느새 종이봉투가 놓여 있었다. 빵집 여자가 문을 열더니 봉투를 집었다.

“의자는 고쳐놓고 가셨네요.”

민재의 손이 키보드 위에서 멈췄다.

여자가 의자를 한 번 흔들어봤다.

“아까 넘어져 있던데. 다리 부러진 줄 알았어요.”

‘내가 뒤집은 걸 기억하는 거야?’

[그녀가 관찰한 사건입니다.]

민재는 대화 입력란을 열었다.

고쳐놓은 건 맞지만 내가 넘어뜨렸다고 쓰려다가 지웠다. 첫인사부터 의자 파손 자백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앉아도 됩니까?」

“봉투만 안 깔고 앉으시면요.”

여자는 웃지도 않고 말했다. 그러더니 봉투를 안으로 가져갔다.

민재는 붉은 의자에 앉았다. 화면의 높이가 낮아졌다. 가게 안쪽에서 철판이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멀리서 전차 종이 울렸다.

그는 공책에 적었다.

주민이 플레이어를 기다리지 않을 것.

잠깐 생각한 뒤 그 아래에 한 줄을 보탰다.

그래도 돌아오면 반가운 사람이 있을 것.

‘전부 나한테 친절할 필요는 없어.’

[관계는 사건과 선택에 따라 형성할 수 있습니다.]

‘내가 길을 물었다고 인생사를 다 털어놓지도 말고. 부탁을 거절했다고 악당 취급하지도 말고.’

[당신도 편의점에서 봉투를 거절한 사람에게 복수하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 상식이면 돼.’

민재는 펜 끝으로 빈 페이지를 두드렸다.

오래전에는 주민마다 호감도 숫자를 붙였다. 빵을 주면 셋이 오르고, 정해진 대사를 고르면 둘이 올랐다. 그걸 조금이라도 감추려고 답변을 수십 개씩 썼다. 결국 자기가 쓴 문장을 자기가 또 보고 있었다.

‘기억은 다르게 남았으면 좋겠어. 내가 한 말을 통째로 저장해서 다시 읽는 식 말고. 누구한테는 별일 아니고 누구한테는 오래 남는 거.’

[가능합니다.]

‘가능하다는 말, 이제 좀 무섭다.’

[불가능한 항목을 요청하시면 구분해드리겠습니다.]

민재는 한참을 고민했다.

그동안 접어둔 요구를 꺼낼 때마다 예산이나 인력을 먼저 떠올렸던 탓이었다. 이번에도 습관적으로 작은 것부터 고르고 있었다.

그는 공책의 앞장을 펼쳤다. 지우개 자국 때문에 종이가 얇아진 도시 지도가 있었다.

‘저수지 언덕에 집들이 있고, 아래에는 시장. 바다도 있으면 좋겠어. 항구까지 가는 길이 좀 멀어서 돌아오는 전차를 기다릴 수 있게.’

골목 끝에서 바닷바람에 실린 종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퀘스트 때문에 밤을 붙잡아두지 마. 내가 늦으면 가게도 닫고 사람도 자야지.’

[늦은 방문에는 별도의 결과가 생깁니다.]

‘그걸 전부 손해로 만들지는 말고.’

민재가 지도를 돌려놓았다.

‘빵을 못 샀으면 빵집 뒤 계단에서 남은 빵 먹는 주인을 만날 수도 있잖아. 계획대로 안 됐는데, 그래도 잘 왔다 싶은 밤.’

처음으로 시스템의 응답보다 그의 말이 길어졌다.

그는 의자를 당겨 앉았다.

‘한 번 놓쳤다고 영원히 못 보는 사건도 남발하지 마. 사람들 출근하는 동안 접속 못 했다고 도시가 벌주면 싫어. 대신 이미 한 선택은 남아야 해. 누구 편을 들었는지, 무슨 약속을 했는지.’

[머물고 싶지만 매달려 있을 필요는 없는 세계로 구성하겠습니다.]

민재가 펜을 내려놓았다.

정확했다.

그가 몇 년 동안 설명하려다 실패한 것을 한 문장으로 돌려받았다.

***

빵집 여자의 이름은 아직 없었다.

민재가 물었을 때 그녀는 잠깐 앞치마를 내려다봤다. 마치 가슴께에 이름표가 붙어 있어야 했는데 잊고 나온 사람처럼 보였다.

민재는 곧바로 시야를 가게 밖으로 옮겼다.

‘내가 너무 일찍 들어온 거지?’

[이름을 포함한 개인 이력의 연결 전입니다. 기존 시험 공간의 행동 기억은 유지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름은 내가 지어도 돼?’

[이 인물의 초기 설정에 반영할 수 있습니다.]

민재는 공책 귀퉁이에 적힌 낙서를 봤다.

처음 빵집을 그릴 때 적어둔 이름이었다.

‘모라.’

여자가 밀가루 묻은 손으로 머리카락을 넘겼다.

민재는 다시 가게에 들어가 이름을 물었다.

“모라예요. 저 앞 간판에는 가게 이름만 있죠?”

여자가 창밖을 가리켰다.

“아버지가 자기 이름 붙이는 걸 싫어하셨어요. 빵이 맛없으면 이름까지 욕먹는다고.”

민재가 작게 웃었다.

‘아버지 이야기도 방금 연결된 거야?’

[가족의 이력과 가게의 내력, 주변 인물과의 관계가 함께 구성됐습니다. 현재 시점 이후의 선택은 정해두지 않았습니다.]

모라는 대화를 끝낸 뒤 창가의 접시를 확인했다. 동전 두 개는 여전히 거기 있었다.

민재는 키보드를 당겼다.

「주인이 안 나타나면 어떻게 해요?」

“오늘은 여기 두고요.”

「내일은요?」

“내일 생각해야죠.”

모라는 철판을 들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답변을 기다리던 민재가 빈 가게를 봤다.

현명한 말도, 다음 임무를 암시하는 대사도 아니었다. 아직 정하지 않은 일을 묻는 손님에게 할 법한 대답이었다.

그는 종이에 동그라미를 하나 그렸다.

그 안에 모라라고 썼다.

도시 전체의 설계도보다 그 작은 동그라미가 마음에 들었다.

해가 기울 무렵 민재는 게임 속에서 항구에 도착했다. 생선을 손질하던 사람이 길 한가운데로 물을 끼얹었다. 민재의 캐릭터가 멈추자 그가 미안하다는 듯 양동이를 들었다.

“신발 젖었어요?”

「조금요.」

“그쪽으로 가면 말릴 데 있어요. 창고 벽에 해가 오래 들어서.”

그는 길을 가리킨 뒤 다시 일을 시작했다.

창고 벽에는 이미 세 사람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하나는 장화를 벗었고, 하나는 도시락을 먹었다. 마지막 사람은 그냥 바다를 보고 있었다.

민재는 그 옆에 캐릭터를 앉혔다.

무언가 시작될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 일도 시작되지 않았다.

바다를 보던 사람이 일어나 떠났고, 도시락을 먹던 사람은 빈 통을 싸서 무릎에 올렸다. 민재가 자리를 지키는 동안 벽의 햇빛이 조금씩 좁아졌다.

그는 그 장면을 끝까지 봤다.

***

밤 열한 시가 지나자 원룸 창문에 빗방울이 다시 붙었다.

민재는 식빵을 한 장 꺼냈다. 잼을 바르다 말고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빼앗겨 칼끝으로 같은 자리를 계속 문질렀다.

화면 안에서는 시장 상인들이 천막을 걷고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천막 고리를 풀지 못해 옆 가게를 불렀다. 옆 가게 주인은 돈을 세다가 투덜거리며 나왔다. 둘은 사다리 방향을 두고 잠깐 다퉜다.

‘이런 도시를 여러 명이 같이 돌아다니면?’

[서로의 행동이 같은 세계에 남습니다.]

‘한 명이 다리를 고치면 나중에 온 사람도 건너고?’

[그렇습니다.]

‘반대로 누가 재미로 전부 부수면?’

[공유 공간의 훼손은 주민과 이용자의 생활을 지속적으로 박탈하지 않도록 제한할 수 있습니다. 사건의 흔적과 수리 과정은 남길 수 있습니다.]

‘좋아. 망가뜨리는 사람 하나 때문에 나머지가 청소 당번 되면 싫어.’

천막 고리가 풀렸다.

두 상인은 끝내 고맙다는 말 없이 각자의 가게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돈을 세던 사람이 귤 하나를 던졌다. 상대가 익숙하게 받았다.

민재는 씹던 식빵을 삼켰다.

‘시험은 얼마나 한 거야?’

[현재까지 독립 시험 세계의 누적 시간은 사백십칠 년입니다.]

민재가 식빵을 내려놓았다.

‘내가 항구에서 멍때리는 동안?’

[그전에도 진행했습니다. 시장 경제, 관계의 변화, 장기간 미접속, 다수 이용자의 상충 행동을 병렬 검증했습니다.]

민재가 보고 있던 도시 옆으로 작은 풍경들이 펼쳐졌다.

한쪽에서는 항구에 배가 들어왔다. 다른 곳에서는 큰비로 전차가 멎었다. 시민들이 대체 길을 찾는 동안 가게 주인은 젖은 손님들을 처마 아래로 불렀다. 계절이 여러 차례 바뀐 거리도 있었다. 오래된 가게를 물려받은 딸이 문틀의 키 표시를 지우지 않고 간판만 새로 달았다.

그 모든 풍경은 민재가 보는 도시와 구별되어 있었다.

‘모라가 저기서 몇십 년씩 살다 돌아오는 건 아니지?’

[현재 세계의 시간은 연속되어 있습니다. 시험은 별도의 분기에서 수행하며 경험을 주민에게 덮어쓰지 않습니다.]

그제야 민재는 다시 빵을 들었다.

한입 베어 물자 입안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다.

회사에서 가장 비싼 예측 모델을 돌리던 날이 떠올랐다. 팀장은 결과를 기다리다 퇴근했고, 민재는 새벽에 오류 알림을 받고 돌아갔다. 아침 회의에서는 기다린 시간보다 결과를 설명하는 시간이 짧았다.

지금은 빵 한 장을 먹는 동안 도시들이 세대를 건넜다.

‘그럼 완성은?’

[요청하신 구성의 실행본은 완성됐습니다. 시험 결과도 반영됐습니다.]

‘벌써?’

[밤을 새우시는 것은 선택입니다.]

민재는 벽시계를 봤다.

막힌 게 없는데도 자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방을 한 바퀴 돌았다. 세 걸음이면 싱크대였고 돌아서면 책상이었다. 공간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가만히 앉아 있기 어려워서 걸었다.

‘예전에 봤던 거 하나만 같이 보자.’

***

민재는 노트북을 정상적으로 켜고 인터넷을 연결했다.

브라우저의 즐겨찾기에는 오르비스 인터랙티브의 공개 체험장이 남아 있었다. 반년 전 게임 업계가 뒤집혔다는 기사를 읽고 저장한 링크였다.

최상급 상용 AI로 움직이는 주민, 누구와도 자유로운 대화, 살아 있는 항구 도시.

민재는 그때 시연 영상을 세 번 봤다. 인터뷰에서 수석 개발자가 동시 운용 주민 수를 말했을 때는 공책을 덮었다. 자기 손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체험장에 들어가자 제복을 입은 안내인이 손을 흔들었다.

화면은 화려했다. 물 위에 비친 성벽도 정교했다. 민재는 카메라를 돌려 햇빛을 확인했다.

“항구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그는 안내인에게 물었다.

「오늘 저녁에 동쪽 계단에서 종이배를 띄울 건데, 같이 갈래요?」

“멋진 계획이군요. 동쪽 계단은 아름다운 명소입니다.”

「와줄 수 있어요?」

“저는 이곳에서 여행자 여러분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말이 자연스러웠다. 표정도 적절했다.

민재는 근처 과일 상인에게 같은 약속을 해봤다. 상인은 하루 장사를 끝내면 가보겠다고 말했다. 민재는 종이배에 푸른 줄을 그리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체험장 시간을 저녁으로 바꿨다.

과일 상인은 같은 자리에 있었다. 상자 위의 사과도 같은 개수였다.

「계단에 안 왔네요.」

“동쪽 계단은 항구가 잘 보이는 곳입니다. 방문을 추천합니다.”

민재는 잠시 손을 멈췄다.

「푸른 줄 그린 종이배요. 같이 보기로 했잖아요.」

상인은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혼동을 드려 죄송합니다. 저는 과일 판매와 항구 안내를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브라우저 옆에서는 귀가등의 밤이 깊어지고 있었다.

민재는 창을 바꿔 빵집으로 돌아갔다.

모라가 문밖에 발판을 받쳐놓고 등갓을 닦는 중이었다. 민재의 캐릭터를 본 그녀가 먼저 말을 걸었다.

“모라라고 불러주셨죠, 아까.”

민재의 손가락이 멎었다.

“여기서는 다 빵집 아가씨라고 하거든요. 뒤에서도 그렇게 부르면 돌아봐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헷갈려요.”

그는 천천히 대답을 입력했다.

「간판에 써두면 어때요?」

“아버지랑 똑같은 얘기 하시네요. 이름 욕먹는 건 제가 할 테니까 쓰라고 하셨는데.”

그녀가 웃었다.

낮에는 이름 붙이기를 싫어했다던 아버지였다. 민재가 그 말을 꺼내자 모라가 천을 접었다.

“자기 이름은 싫고 제 이름은 괜찮대요. 이상하죠?”

민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기억한 문장을 복창하는 게 아니었다. 같은 사람에 대한 서로 다른 이야기가 그녀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모라가 발판에서 내려왔다.

“마침 잘 왔어요. 하나만 도와주실래요?”

화면 어디에도 느낌표는 뜨지 않았다.

“아홉 시 전차 타고 올 사람이 있는데, 제가 반죽을 봐야 해서요. 정류장에서 길 좀 알려주실래요? 저희 언니예요.”

「어떻게 생겼는데요?」

“저랑 닮았는데, 그 말 하면 싫어해요.”

「그럼 못 알아볼 것 같은데요.」

모라가 잠시 생각했다.

“전차에서 마지막으로 내릴 거예요. 사람들 다 내릴 때까지 짐 못 챙기거든요.”

민재는 정류장으로 갔다.

전차가 멈췄다. 모자를 쓴 남자, 잠든 아이를 업은 여자, 어깨에 화구통을 멘 청년이 내렸다. 마지막으로 커다란 가방에 끈이 걸린 여자가 허리를 굽히고 나타났다.

민재가 말을 걸자 그녀는 가방부터 바닥에 내려놓았다.

“모라가 보냈어요? 직접 안 나오고?”

「반죽을 봐야 한대요.」

“또 그 핑계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종이로 싼 꾸러미를 가방에서 꺼냈다.

“그럼 이거 좀 들어줘요. 기울이면 안 돼요.”

민재는 빵집까지 천천히 걸었다.

꾸러미 안에는 작은 화분이 있었다. 언니는 동생이 물 주는 걸 잊을 거라고 투덜거렸다. 모라는 가게 창가에 자리를 만들면서 자기가 언제 잊었냐고 맞받았다.

민재가 끼어들 틈 없이 자매의 대화가 이어졌다.

그는 옆에 켜둔 오르비스 체험장을 봤다.

과일 상인이 미소 지으며 새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때 도시라고 믿었던 풍경이 이제는 무대처럼 보였다. 무대가 못 만든 것은 아니었다. 조명도 아름답고 배우도 능숙했다.

그런데 이쪽에서는 누군가 화분을 어디 둘지 두고 다투고 있었다.

민재가 체험장 창을 닫았다.

‘저 사람들은 이걸 보면 뭘 먼저 물을까.’

[구현 방식, 연구진 규모, 연산 설비가 우선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내가 뭘 만들었냐고는 안 묻겠네.’

[직접 확인하느라 질문이 늦어질 수도 있습니다.]

민재는 웃으며 공책을 덮었다.

새벽 네 시 십이 분이었다.

***

완성된 도시를 가장 높이서 본 것은 해가 뜨기 직전이었다.

민재의 시야가 저수지 위 언덕에 섰다. 아래로 시장의 천막과 전차 선로가 보였다. 항구의 배들이 어둠 속에서 느리게 흔들렸다.

건물마다 불이 켜져 있었다.

보기 좋았다. 너무 보기 좋았다.

‘불을 좀 꺼줘.’

몇몇 창문이 어두워졌다.

‘무작위로 끄라는 뜻은 아니고.’

[생활 시간과 공간의 용도를 기준으로 조정하겠습니다.]

도시가 다시 달라졌다.

잠든 집의 창이 꺼졌다. 새벽 일을 시작한 세탁소에는 푸른 등이 켜졌다. 선착장 끝에서는 경비실 불빛이 물 위로 길게 늘어졌다.

민재는 빵집을 찾았다.

가게 안은 어두웠다. 창가에는 언니가 가져온 화분이 놓였고, 문 위의 작은 등만 남아 있었다.

‘저건 왜 켜져 있어?’

[모라가 언니를 배웅한 뒤 끄지 않았습니다. 다시 들어올 때 열쇠 구멍이 잘 보이도록 남겼습니다.]

‘좋다. 저건 남겨.’

민재는 언덕 아래의 집들을 오래 봤다.

한 창문은 불이 밝았다. 밤새 재봉틀을 돌린 사람이 의자에 기대 잠들어 있었다. 다른 집에서는 물을 마시러 나온 노인이 부엌등을 켰다. 잠깐 환해졌던 창문이 다시 어두워졌다.

그는 도시 전체를 환하게 만드는 대신 어디에 불빛이 필요한지 골랐다.

돌아오는 길모퉁이. 늦게 문을 여는 가게의 처마. 전차에서 내리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계단.

골목이 조금 어두워지자 켜진 등이 더 잘 보였다.

‘이야기도 이렇게 가자.’

[듣고 있습니다.]

‘도시 구하는 일은 나중에 있어도 돼. 처음 온 사람이 오늘 저녁에 어디 갈지부터 궁금했으면 좋겠어.’

민재는 붉은 의자가 있는 빵집을 내려다봤다.

‘빵 하나 사러 갔다가 누굴 기다리게 되는 정도면 충분해.’

[첫 진입 동선을 조정했습니다.]

동쪽 하늘이 밝아졌다.

민재는 그 빛이 화면 속인지 창밖인지 구분하려고 고개를 돌렸다. 원룸 커튼 끝에도 아침이 묻어 있었다.

그는 노트북 덮개를 조금 당겼다가 멈췄다.

‘내가 자고 일어나면?’

[도시는 이어집니다.]

‘모라는?’

[새벽 반죽을 준비할 예정입니다. 어제 받은 화분에는 아직 물을 주지 않았습니다.]

‘언니 말이 맞았네.’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민재가 소리 없이 웃었다.

이번에는 저장 버튼을 찾지 않았다.

대신 게임 속 빵집 문 앞에 짧은 쪽지를 남겼다.

다음에 올 때는 빵을 사겠다고.

어제까지는 빈 페이지였던 공책 위에 아침 햇빛이 닿았다. 민재는 그 페이지를 접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웠다. 눈을 감고도 전차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잠들기 직전, 그가 생각으로 물었다.

‘모라가 쪽지 봤어?’

[방금 읽었습니다.]

‘뭐래?’

[빵값을 적어둘 걸 그랬다고 했습니다.]

민재는 이불을 끌어당기며 웃었다.

“장사는 잘하겠네.”

아침에 다시 갈 곳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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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끝 3

ReNovels · 한 회차씩, 이야기 속으로.

회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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