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대표님

첫 번째 주문은 돈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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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재가 눈을 떴을 때는 오후 두 시가 넘었다.

빵집에서는 벌써 두 번째 반죽이 나왔고, 현실의 싱크대에는 컵라면 용기가 하나 남아 있었다. 그는 둘을 번갈아 보다가 물부터 마셨다.

‘모라는?’

[오전 장사를 마쳤습니다. 화분에도 물을 주었습니다.]

‘언니한테 이겼네.’

[받침 아래로 물이 넘쳤습니다. 판정은 보류하겠습니다.]

민재는 웃으며 커튼을 걷었다.

맞은편 담장 아래에 파란 여행 가방이 있었다.

손잡이에 묶인 노란 끈을 보는 순간 잠이 완전히 깼다. 낙뢰를 맞던 날, 길에 나와 있던 짐에도 저 끈이 있었다.

가방 옆에는 이수진이 쪼그려 앉아 있었다. 벌어진 지퍼를 손으로 누르는 중이었다. 발치의 종이 상자는 새것으로 바뀌었지만 안에 든 냄비와 옷은 같았다.

민재는 지갑을 집어 들고 내려갔다.

골목에는 축축한 벽 냄새가 났다. 수진은 가방을 세우려다 그를 보고 손을 멈췄다.

“안녕하세요.”

“아직 여기 계셨어요?”

묻고 나서 후회했다. 수진의 손가락이 손잡이를 한번 쓸었다.

“오늘은 짐 가지러 왔어요. 친구 집에 며칠 있기로 해서.”

한쪽 바퀴가 돌아가지 않았다. 민재는 가방 손잡이를 받아 들었다.

“큰길까지 들어드릴게요.”

“무거운데.”

“컴퓨터 들고 이사해본 사람입니다.”

수진이 잠깐 웃었다.

그녀는 가방보다 옆구리에 낀 비닐 파일을 더 단단히 붙들고 있었다. 투명한 비닐 안에서 계약서 모서리가 보였다.

큰길에 닿기 전에 휴대전화가 울렸다. 수진은 화면을 확인한 뒤 받지 않았다. 곧 문자가 왔다.

방금 생겼던 웃음이 사라졌다.

“집주인이에요?”

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보관료도 내래요. 자기 건물 복도에 짐 놔뒀다고.”

민재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보증금은요?”

“계약한 사람은 자기가 대리인일 뿐이래요. 집주인은 그 사람한테 돈 받은 적 없다고 하고.”

“입금한 계좌가 있잖아요.”

“그것도 냈어요. 계약서도 내고. 그런데 서로 남이라고 하니까…….”

큰길 건너편에서 버스가 멈췄다. 사람들이 내렸고, 한 사람이 수진의 가방을 피해 걸어갔다.

“얼마예요?”

“칠천이백이요.”

민재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칠 년 모은 돈이에요. 제 통장에 있던 걸 전부 넣었어요.”

수진은 설명을 잘했다.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한 사람처럼 어디서 질문이 나올지 알고 있었다. 계약서를 보여주기 편하게 파일의 열린 쪽을 민재에게 돌리기까지 했다.

그가 묻지도 않은 일이었다.

“오늘도 일 가세요?”

“네. 늦은 조라 괜찮아요.”

그녀가 식당 유니폼이 든 보조 가방을 어깨 위로 당겼다.

택시가 왔다. 민재는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수진은 고맙다며 허리를 숙였다. 계약서를 안은 팔은 끝내 풀리지 않았다.

차가 떠난 뒤에도 그는 길가에 서 있었다.

며칠 전에는 자기 월세 날짜를 세느라 바빴다.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 뒤에 늘 같은 계산이 붙었다.

내가 뭘 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 계산을 할 필요가 없었다.

‘시스템.’

[듣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잃은 돈. 어디로 갔는지 찾아.’

건물들의 윤곽이 의식 속에서 얇게 겹쳤다.

벽 너머가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주소와 계약, 돈과 사람의 관계가 공간을 빌려 펼쳐졌다. 수진이 살던 방에서 선 하나가 뻗었다.

[지급액 전부를 확인했습니다.]

‘전부?’

[건물 매입 대금, 가족 명의 자산, 다른 계약의 반환금과 개인 소비로 나뉘었습니다.]

‘받은 적 없다는 말은.’

[거짓입니다.]

민재가 건물을 올려다봤다.

삼 층 창문에서 빨래가 흔들렸다. 난간에는 플라스틱 화분이 놓여 있었다. 출입문에는 분리수거 날짜를 지켜달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다.

‘처음부터 보여줘.’

***

원룸 문을 닫자마자 민재는 의자에 앉았다.

노트북에서는 모라가 남은 빵을 작은 바구니로 옮기고 있었다. 그는 화면을 그대로 두고 눈앞의 빈 공간을 봤다.

계약서 한 장이 의식 속에 떠올랐다. 수진이 안고 있던 문서였다.

곧 다른 계약서가 겹쳤다.

같은 방, 같은 기간. 보증금은 달랐다.

‘이건 뭐야?’

[금융기관 제출용 허위 계약입니다.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높여 임대인의 반환 채무를 축소했습니다.]

‘수진 씨가 서명한 거야?’

[기존 서명을 옮겼습니다.]

두 서명이 포개졌다. 획 끝의 작은 떨림까지 같았다.

그 아래로 집주인 장만석과 중개업자 안병철의 대화가 이어졌다.

이번 건 얼마 남겨요.

먼저 칠천이백 받아. 사천오백으로 정리해둘 테니.

나중에 문제 되면요.

네가 내 대리라는 종이가 없는데 무슨 문제.

민재는 등받이에서 몸을 뗐다.

‘이런 걸 남겨뒀어?’

[삭제한 대화입니다.]

‘둘 다?’

[대화방과 기기에서 지웠습니다. 별도 사본도 폐기했습니다.]

문장 옆으로 시각과 기록들이 붙었다. 메시지를 받은 장치의 흔적, 이후 작성된 문서, 같은 날의 거래가 맞물렸다. 삭제된 대화가 돌아온 뒤에는 그것을 지우라고 지시한 통화까지 이어졌다.

민재는 입술을 한번 문질렀다.

없어진 부분을 그럴듯하게 채운 게 아니었다. 지운 행위까지 장만석의 말 옆에 놓여 있었다.

‘계약 하나만 이런 거야?’

공간이 넓어졌다.

방 하나에서 뻗은 선이 옆 건물로 이어졌다. 골목 밖으로 나갔다. 서로 다른 임대인 이름들이 한 가족과 몇 명의 지인 아래로 묶였다.

같은 중개업자.

같은 계약 수정 방식.

반환 요구가 오면 서로에게 넘기는 같은 답변.

[현재 피해 계약은 열아홉 건입니다. 반환되지 않은 보증금은 십삼억 칠천육백만 원입니다.]

숫자 아래로 각자의 생활이 나타났다.

새벽 두 시에 중고로 팔린 냉장고. 취소한 자격시험 접수. 연체 안내를 받은 다음 날 해지한 적금.

민재는 이삿짐 상자 위에 놓인 생일 케이크 사진에서 멈췄다.

아이가 초를 불고 있었다. 뒤쪽에는 아직 비닐을 벗기지 않은 이불이 쌓여 있었다. 케이크를 받친 상자에 검은 펜으로 겨울옷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 집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더 작은 방으로 옮겼습니다. 짐 일부는 지인의 창고에 보관 중입니다.]

사진을 닫자 부부가 보낸 반환 요청이 나왔다. 날짜가 한 달씩 내려갔다. 처음에는 길었던 문장이 나중에는 짧아졌다.

십만 원이라도 먼저 보내주시면 안 될까요.

장만석의 답장은 없었다.

민재는 공책을 당겼다. 어제 게임 속 가게의 불빛을 그렸던 다음 장이었다.

그 위에 장만석이라고 썼다.

펜촉이 종이를 조금 파고들었다.

***

장만석은 안마 의자의 강도를 한 단계 높였다.

화면 속 진행자가 현금 흐름을 만드는 자산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그는 견과류를 집어 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말이었다.

월급쟁이는 돈을 벌고, 자신 같은 사람은 돈이 흘러오는 자리를 샀다.

전화가 울렸다. 안병철이었다.

“왜.”

“이수진 씨가 또 연락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살 데가 없다고…….”

“그걸 왜 나한테 말해. 네가 계약했잖아.”

안병철이 말을 멈췄다.

장만석은 견과류 통을 내려놓았다.

“내가 네 계좌로 받은 돈까지 보증한다고 했어?”

“그런 뜻은 아니고요.”

“그럼 됐네.”

그는 의자에서 일어나 서재로 갔다. 창밖으로 자기 건물 옥상이 보였다. 자기 이름으로 된 것은 셋뿐이었다. 나머지는 아내와 처남, 오래 거래한 지인의 이름으로 흩어놓았다.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한 비용도 진작 냈다.

“예전에 쓰던 노트북은 버리셨죠?”

“버렸어.”

“회계 쪽에서 걱정을 해서요.”

“걱정 많으면 장사 못 해.”

장만석은 서재 문을 닫고 책장 아래 서랍을 열었다.

검은 천에 싸인 노트북이 있었다. 통신 기능을 막아놓고 몇 년째 선도 연결하지 않은 물건이었다.

남에게 맡겨도 되는 기록과 아닌 기록이 있었다. 안병철도 예외는 아니었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누구부터 팔아넘길지 모를 일이었다.

“그쪽은 지울 거 다 지웠지?”

“네. 복구도 안 된다고 확인받았습니다. 보안 업체에서 최상위 서비스로 점검했어요.”

“비싼 인공지능 쓴다는 거?”

“전담 인력도 붙었습니다. 자료 남은 거 없답니다.”

“돈값은 하네.”

장만석은 서랍을 닫았다.

문제 될 종이는 없었다. 남은 기록은 자기 손안에 있었다. 세입자들이 붙들고 있는 건 서로 다른 이름의 계약서뿐이었다.

그가 일정표를 열었다.

내일은 새 계약 하나, 밀린 세대 퇴거 정리 하나.

오후에는 골프 연습이었다.

“내일 들어올 사람은?”

“간호조무사요. 어머니하고 살 집 찾는답니다. 보증금 칠천이고 일부 대출입니다.”

“대출 나왔을 때 받아. 늦어지면 딴 데 써.”

장만석은 통화를 끊고 탄산수를 꺼냈다.

목 안이 시원했다.

***

[분리된 장치에서 원본 장부를 확인했습니다.]

민재의 의식 속에 검은 천으로 싸인 노트북이 스쳤다.

‘켜져 있어?’

[아닙니다.]

‘연결도 없고?’

[장 접속으로 저장 상태를 읽었습니다.]

닫힌 노트북에서 장부가 펼쳐졌다.

장만석이 마지막으로 저장한 그대로였다. 이름 옆에 입금액과 돌려막은 금액이 적혀 있었다. 겉으로 남긴 회계 자료와 다른 숫자에는 차이의 행방까지 붙었다.

수진의 이름 끝에 짧은 메모가 있었다.

가족 지원 없음. 오래 버틸 힘 없음.

민재는 그 문장을 두 번 읽었다.

다른 이름 옆에도 비슷한 말이 붙어 있었다.

부모 지방.

소송비 부담 큼.

아이 때문에 이사 어려움.

장만석은 돈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만 계산한 게 아니었다. 빼앗긴 사람이 얼마나 오래 싸울 수 있는지도 적어뒀다.

민재는 공책에 쓴 이름을 내려다봤다.

‘그 보안 업체는 이걸 못 봤고.’

[의뢰받은 범위에서 우수한 결과를 냈습니다. 남은 외부 자료는 찾기 어렵게 정리됐고, 장치도 통신망에서 분리됐습니다.]

‘그래서 안심한 거네.’

[현재 탄산수를 마시며 골프장 날씨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민재가 짧게 웃었다.

전담 인력과 비싼 상용 AI가 문을 닫아줬다. 장만석은 그 안에서 편히 쉬었다.

민재 앞에는 닫힌 서랍 안의 장부가 펼쳐져 있었다.

‘내일 새로 받는 돈부터 막아. 피해자가 한 명 더 생길 필요 없어.’

[계약 예정자가 알아보던 다른 매물 중 안전한 대안을 확인했습니다. 직접 비교할 수 있도록 실제 조건을 전달하겠습니다.]

‘기존 피해자들은 더 다치거나 쫓겨나지 않게 해두고.’

[내일 오후 두 시에 짐을 빼러 오는 인력이 있습니다. 현장 보호를 준비하겠습니다.]

민재는 펜을 내려놓았다.

공책에는 세 단어가 적혀 있었다.

돈. 기록. 사람.

기록만 공개하면 사람들이 화를 낼 터였다. 장만석은 억울하다고 말하고, 수진은 또 계약서를 꺼내 자기 사정을 설명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떠든 뒤에도 돈을 못 찾는 결말은 싫었다.

‘돈은 돌려줄 만큼 있어?’

[충분합니다. 숨긴 자산의 현재 소유 관계와 피해금의 이동을 모두 구분했습니다.]

‘명의 빌려준 사람들까지 다 한패야?’

관계도가 다시 펼쳐졌다.

사기임을 알고 이익을 나눈 사람과 재산을 숨기는 데 이름만 빌려준 사람이 갈라졌다. 장만석이 맡긴 수리 일을 했을 뿐인 기사는 표시 밖으로 빠졌다.

‘관련 없는 사람은 건드리지 마.’

[분리했습니다.]

‘빠져나갈 돈하고 도와줄 사람은?’

새로운 선들이 나타났다.

처남의 계좌. 해외로 보낸 자금. 사건이 접수되면 전화를 넣어주겠다던 퇴직 공무원. 급히 처분할 수 있게 맡겨둔 매물까지 있었다.

각각의 선 끝에는 그것을 붙잡을 기록이 놓였다.

민재는 빈 손바닥을 한번 폈다.

전에는 이런 일을 하려면 무엇부터 배워야 할지조차 몰랐다. 지금은 목적을 정할 수 있었다. 끝까지 밀어줄 상대도 있었다.

‘좋아. 이건 하자.’

[목표를 확정했습니다.]

‘기사 하나 나고 끝내지 마. 돈 돌려받고, 저 사람이 다시 같은 짓 못 하는 데까지.’

[피해 회복과 가담자들의 책임 확정, 도피 방지까지 준비하겠습니다.]

‘장만석은 본인이 왜 잃는지 알았으면 좋겠어.’

[장부를 상당히 자세히 작성했습니다. 본인 기록이 설명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민재는 그 답이 마음에 들었다.

***

저녁 무렵, 장만석은 중개사무소에 들렀다.

새 계약자는 약속보다 먼저 와 있었다. 내일 서명하기 전에 어머니에게도 집을 보여드리고 싶다고 했다.

어머니는 지팡이를 의자 옆에 세웠다.

“다니시기 편한 집이에요.”

장만석이 웃었다.

“계단도 몇 개 없고. 제가 이런 건 꼭 봅니다.”

딸이 가방에서 질문을 적어온 종이를 꺼냈다. 안병철은 물컵을 내려놓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장만석은 그 옆에서 적당히 고개를 끄덕였다.

딸의 전화가 울린 것은 그때였다.

그녀는 밖에 나가 짧게 통화한 뒤 돌아왔다.

“죄송한데, 계약은 조금 더 보고 결정해도 될까요?”

안병철의 손이 멈췄다.

“무슨 문제 있으세요?”

“병원 근처에 봤던 집이요. 조건이 바뀌었다고 연락이 와서요. 어머니가 다니시는 곳하고도 가까워서 한번 보려고요.”

“여기도 기다리는 분이 있어요.”

장만석은 웃음을 유지했다.

“오늘 보고 내일 계약하기로 했잖아요. 놓치면 아쉬우실 텐데.”

어머니가 딸의 손등을 눌렀다.

딸은 잠깐 망설였다가 질문지를 접었다.

“네. 그래도 보고 결정할게요.”

문이 닫혔다.

장만석은 유리 너머로 두 사람이 택시를 잡는 모습을 봤다. 그러고는 혀를 찼다.

“칠천짜리 들어오면서 유난은.”

안병철이 눈치를 살폈다.

“다른 분 연결하겠습니다.”

“육천오백까지 내려. 이번 주에 받으면 돼.”

그에게는 빈방 하나가 생겼을 뿐이었다.

장만석은 내일 짐을 빼기로 한 세대를 다시 확인했다.

“삼 층 여자 아직 그대로지?”

“네. 갈 데 구할 때까지만 기다려달랍니다.”

“날짜 줬잖아. 내일은 짐부터 빼. 사정 들어주니까 당연한 줄 알아.”

안병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

민재는 김밥 두 줄을 사서 돌아왔다.

비닐봉지를 내려놓자 보고가 왔다.

[계약 예정자는 대안 매물을 직접 확인했습니다. 어머니와 상의한 뒤 그쪽을 선택했습니다. 선입금 피해는 없습니다.]

‘잘됐네.’

민재는 김밥 하나를 입에 넣었다.

노트북에서는 항구의 저녁 종이 울렸다. 빵집 처마 아래에 비를 피하는 손님들이 모였다. 모라는 문을 조금 더 열어주면서도 젖은 신발을 매트에 닦으라고 했다.

현실의 하늘에는 비가 없었다.

민재는 창밖을 봤다. 수진의 가방이 놓였던 자리는 비어 있었다.

게임을 팔면 돈이 들어올 터였다. 그 돈으로 사람을 고용하고, 변호사도 붙이고, 피해자들을 도울 수 있었을 것이다.

익숙하고 설명하기 편한 순서였다.

‘내가 돈부터 벌고 해도 됐겠지.’

[가능한 순서였습니다.]

‘그런데 내일 또 누구 짐이 나오잖아.’

[장만석의 예정대로라면 그렇습니다.]

민재는 남은 김밥을 집었다.

“그 순서는 마음에 안 들어.”

이미 준비는 그의 식사 속도와 상관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증거들이 원본에 연결됐다. 서로 모른다던 사람의 말은 같은 시각의 거래 옆에 놓였다. 피해금이 모습만 바꾼 채 숨어 있던 자산에는 회수에 필요한 기록이 붙었다.

내일 현장에 올 사람들이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 어느 기록부터 전달받아야 장만석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지도 정리됐다.

민재는 그 모든 것을 생각 속에서 내려다봤다.

노트북에는 빵집만 보였다.

‘우리가 했다는 건?’

[접속의 출처는 남지 않습니다. 기록의 내용과 원본만 전달됩니다.]

‘피해자들한테 도움값 요구하는 사람도 없게 해.’

[이를 빌미로 접근하는 행위까지 감시하겠습니다.]

민재는 빈 포장을 접었다.

수진이 자기 이름으로 돈을 돌려받으면 됐다. 또 누군가의 선의를 믿고 서류를 내밀 필요 없이.

그는 내일 입을 셔츠를 꺼냈다. 구김이 심했다. 손에 물을 묻혀 펴다가 그냥 욕실 옷걸이에 걸었다.

[현장에 갈 예정입니까?]

‘길 건너에서 볼 거야. 사람들이 어디로 가는지까지.’

[맞은편 카페가 오전 아홉 시부터 영업합니다. 현장이 보이는 자리가 있습니다.]

‘좋네.’

민재는 공책을 펼쳤다.

내일 날짜 아래에 한 줄을 적었다.

오후 두 시. 세림빌라.

장만석이 세입자의 짐을 빼내기로 한 시간이었다.

‘돈은 그 전에 못 움직이게 해두고. 현장에는 피해자 편에 설 사람들이 먼저 와 있게.’

[준비하겠습니다.]

‘공개는 장만석이 직접 말한 다음이야. 돈 받은 적 없다고.’

[해당 발언 직후로 맞추겠습니다.]

민재는 펜 뚜껑을 닫았다.

길가에 내려놓은 짐을 보면 이제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 알았다.

내일은 가방을 들어주러 가는 날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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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끝 4

ReNovels · 한 회차씩, 이야기 속으로.

회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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