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신, 대장장이 강무진

제6장 — 숲의 사절

도리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관찰?”

“그렇습니다.”

실바나는 대장간 안으로 한 걸음 들어왔다. 장화를 신은 발이 석분 위에 닿았지만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고, 그녀의 시선은 강무진보다 먼저 화덕과 모루, 벽에 걸린 집게들을 훑다가 작업대 위에 놓인 실패작 일곱 장 앞에서 조금 오래 머물렀다.

“귀 긴 양반들은 남의 화로에 와서 훔쳐보는 걸 사절 임무라 부르나?”

“기술을 훔치라는 명령은 받지 않았습니다.”

“그럼 뭘 보겠다는 거지?”

“이 인간이 소문과 같은 자인지 확인하겠습니다.”

실바나가 강무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스톤빔의 명장을 굴복시켰고, 쇳물을 맨손으로 다루며, 바위를 가르는 검을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도리아가 코웃음을 쳤다.

“셋 다 틀렸다.”

“그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뭐?”

“짧은 수명을 가진 이들의 소문은 대개 사실보다 빨리 자랍니다.”

도리아가 망치를 쥔 손에 힘을 주는 사이, 강무진은 모루 위의 시험편을 집게로 들어 화덕에 되넣었다. 말을 주고받는 동안에도 쇠는 기다려 주지 않았고, 내부 온도는 이미 내려가고 있었다.

“관찰하십시오.”

강무진이 풀무 손잡이를 잡았다.

“다만 작업을 방해하시면 나가셔야 합니다.”

실바나의 눈매가 아주 조금 좁아졌다.

“원로회의 사절에게도 같은 말을 합니까?”

“화로 앞에서는 다 같습니다.”

도리아가 수염 사이로 웃음을 흘렸다.

“저 말은 마음에 드는군. 내 화로니까 최종 결정은 내가 한다. 방해하면 내가 내쫓겠어.”

실바나는 잠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대장간 벽 쪽으로 물러났다.

“규칙을 따르겠습니다.”

강무진이 풀무를 움직이자 숯층 사이로 공기가 스며들며 불꽃이 짧게 일어났다가 가라앉았다. 시험편의 가장자리가 먼저 밝아지려 하기에 그는 집게를 비틀어 두꺼운 등을 화심 쪽으로 돌렸다. 손끝에는 쇠의 온도가 색보다 선명하게 전해졌는데, 표면과 중심의 차이가 아직 컸다. 지금 꺼내면 겉은 붙고 안은 갈라질 터였다.

도리아도 불빛을 살폈다.

“조금 더?”

“열 번만 더 불어 넣겠습니다.”

“아홉 번이면 돼.”

“숯이 새것입니다. 열 번입니다.”

도리아는 대꾸하지 않았다. 열 번째 바람이 들어가자 그가 집게를 낚아채 시험편을 꺼냈다.

망치가 떨어졌다.

캉. 캉. 캉.

강무진은 반대편에서 작은 망치로 모서리를 눌렀다. 도리아가 큰 힘으로 결을 붙이면 그는 안쪽에 남은 공극이 빠져나갈 길을 만들었고, 금속의 결은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손안에서 흐르는 물살처럼 느껴졌다. 너무 깊이 치면 층이 밀렸으며, 약하면 불순물이 남았다.

두 사람의 망치가 번갈아 울리는 동안 실바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강무진이 시험편을 물에 담그자 증기가 솟았다. 그는 완전히 식히지 않고 꺼내 잔열로 수분을 날린 뒤 표면을 숫돌로 갈아냈다. 그러자 엷고 고른 무늬가 드러났다.

도리아가 등불에 비춰 보았다.

“전보다 낫다.”

“가장자리에 한 군데 겹쳤습니다.”

“어디?”

강무진이 손톱 끝으로 머리카락보다 가는 틈을 짚었다. 도리아는 한참 들여다보다 혀를 찼다.

“크흠. 이걸 또 찾아내는군.”

실바나가 벽에서 떨어졌다.

“제가 보아도 되겠습니까?”

도리아는 시험편을 내밀지 않았다.

“쇠를 아나?”

“화살촉이 부러지는 이유 정도는 압니다.”

“그걸로는 부족해.”

강무진이 도리아의 손에서 시험편을 받아 실바나에게 건넸다.

“부러뜨리지는 마십시오. 아직 기록해야 합니다.”

실바나는 양손으로 쇳조각을 받아 표면의 무늬와 두 각인을 차례로 살폈다.

“어느 쪽이 당신의 것입니까?”

강무진은 망치의 머리와 자루를 이루는 두 번 꺾인 선, 그 아래 모루를 이루는 가운데의 짧은 획을 가리켰다.

“소문대로군요. 만든 물건마다 표식을 남긴다고 들었습니다.”

“책임질 물건에 이름을 남기는 겁니다.”

“명성을 퍼뜨리기 위해서가 아니고요?”

“부러지면 누가 잘못 만들었는지 알아야 합니다.”

실바나의 손가락이 각인 위에서 멈췄다. 그녀는 곧 시험편을 돌려주었는데, 표정은 처음과 같았으나 강무진을 바라보는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

“원로회는 인간의 쇠를 경계합니다.”

“이유가 있습니까?”

“인간은 숲의 나무를 베어 숯을 만들고, 땅을 파헤쳐 광석을 꺼냅니다. 더 많은 쇠를 얻으면 더 넓은 땅을 원합니다. 더 넓은 땅을 얻으면 다시 더 많은 쇠를 찾습니다.”

도리아가 콧김을 뿜었다.

“드워프 앞에서 광산 흉을 보는 배짱은 인정하지.”

“드워프는 산과 맺은 계약을 지킵니다. 적어도 자신들이 무너뜨릴 수 있는 깊이가 어디인지는 압니다.”

“인간은 모른다?”

“알고도 멈추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실바나는 강무진을 향해 말을 이었다.

“당신은 인간 마을에 농기구를 만들어 주었고, 드워프에게 새로운 제법을 전했습니다. 원로들은 다음이 무엇인지 궁금해합니다. 숲의 나무를 베어 화덕을 늘릴지, 우리의 은맥을 찾을지.”

“필요한 만큼만 씁니다.”

“필요를 정하는 이는 누구입니까?”

“쓰는 사람과 값을 치르는 사람입니다.”

“숲은 값을 말하지 못합니다.”

강무진은 반박하지 않았다. 전생에서도 좋은 숯 한 가마를 얻으려면 많은 나무가 들어갔고, 광산은 땅을 헤집었으며 화덕은 연기를 뿜었다. 물건을 만든다는 것은 재료를 다른 모습으로 없애는 일이기도 했다.

그는 시험편을 실패작들 옆에 놓았다.

“그러니 보고 판단하십시오.”

실바나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그럴 생각입니다.”

그날부터 그녀는 대장간 가까이에 머물렀다. 아침에는 강무진이 숯을 고르는 모습을 지켜봤고, 낮에는 도리아와 함께 광석을 분류하는 손을 살폈으며, 마을 농부가 부러진 괭이를 들고 왔을 때도 곁에 있었다.

괭이날은 끝이 얇아진 채 가운데가 갈라져 있었다. 강무진은 새 쇠를 덧대지 않고 닳은 부분을 접어 두께를 확보한 뒤, 날 끝만 짧게 담금질했다.

농부가 물었다.

“아예 새로 만드는 게 낫지 않겠소?”

“자루는 멀쩡하고 몸도 쓸 만합니다.”

“돈은 낼 수 있는데.”

“필요 없습니다.”

강무진은 괭이날 아래에 작은 각인을 남겼다. 실바나는 농부가 돌아갈 때까지 말이 없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물었다.

“새것을 만들면 더 많은 값을 받을 수 있었을 텐데요.”

“쓸 수 있는 쇠를 녹이는 건 낭비입니다.”

“당신이 언제까지 그렇게 행동할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건 나도 모릅니다.”

실바나의 눈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말입니까?”

“사람은 변합니다. 물건은 남습니다. 그러니 남는 걸 보면 됩니다.”

강무진은 숯가루가 묻은 손을 씻었다.

“말보다 오래 갑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강무진은 도리아와 함께 산 아래 냇가로 내려갔다. 담금질 물의 온도를 맞추려 새 수조를 만들 생각이었고, 실바나도 일정한 거리를 둔 채 따라왔다.

숲은 드워프의 산길과 엘프 영역 사이에 걸쳐 있었다. 굵은 침엽수 아래로 햇빛이 가늘게 쪼개지는 가운데 실바나는 길을 밟지 않고 뿌리와 돌 사이를 골라 걸었다. 늘어진 가지를 손끝으로 스칠 때마다 잎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강무진은 수조 자리를 살피다 걸음을 멈췄다.

금속이 느껴졌다.

북동쪽 사면 너머에서 화살촉 여러 개가 빠르게 흔들렸고, 그 곁에는 갑옷의 철편과 굵은 사슬도 있었다. 움직임은 일정하지 않았다. 앞쪽의 무거운 금속이 멈출 때마다 뒤편의 가벼운 고리들이 서로 부딪혔다.

끌고 가는 행렬이었다.

그 사이에 은이 섞인 화살촉 셋이 있었다. 엘프가 쓰는 얇고 긴 형태였다.

실바나가 동시에 고개를 들며 활로 손을 가져갔다.

“정령들이 불안해합니다.”

“북동쪽입니다.”

“무엇이 있습니까?”

“갑옷 여섯. 쇠사슬 하나. 끌려가는 사람은 적어도 셋입니다.”

실바나의 표정이 굳었다.

“어떻게 알았습니까?”

“쇠가 움직입니다.”

강무진은 수조용으로 가져온 망치를 허리 고리에 걸었고, 도리아도 작은 도끼를 뽑았다.

“가 보지.”

실바나는 이미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있었다.

“제가 앞서겠습니다.”

그녀가 숲 안쪽으로 달리자 발소리는 곧 사라졌다. 녹색 망토가 나무 사이로 두 번 보인 뒤, 흔적도 없이 숲에 섞였다.

강무진과 도리아는 사면을 가로지르며 금속의 움직임을 놓치지 않았다. 거리가 빠르게 줄어드는 동안 사슬은 네 걸음마다 땅을 긁었고, 가끔 행렬이 멈추면 갑옷 하나가 뒤로 돌아섰다.

곧 나무 사이로 길이 보였다.

재를 문지른 듯 검은 피부의 무장병 여섯이 엘프 셋을 끌고 가고 있었다. 이마에서 뒤로 굽은 뿔과 잿빛 갑주가 눈에 들어왔으며, 포로들의 손목은 하나의 사슬로 이어져 있었다. 가장 뒤의 엘프는 한쪽 다리를 절었고 발목에서는 피가 흘렀다.

앞장선 마족이 줄을 잡아당겼다.

“속도를 유지해라. 상품 상태가 나빠지면 값을 덜 받는다.”

넘어진 엘프가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실바나는 길 위쪽의 나뭇가지에 몸을 낮추고 있었다. 활을 쥔 왼손이 떨렸다. 바람 때문은 아니었다.

강무진은 갑옷의 구조를 느꼈다. 철편을 가죽끈으로 연결한 찰갑이라 가슴은 두꺼웠으나 겨드랑이와 무릎 뒤는 비어 있었다. 무기는 곡도 넷과 창 둘이었고, 전부 관리 상태가 좋아 날에는 기름까지 먹여 두었다.

단순한 산적이 아니었다.

실바나가 시위를 놓자 화살이 앞장선 마족의 손등을 꿰뚫었고, 사슬 손잡이가 땅에 떨어졌다.

“매복이다!”

마족들이 즉시 흩어졌다. 둘이 포로 쪽으로 붙는 사이 셋은 방패를 들어 위를 막았고, 마지막 하나는 뿔피리를 꺼냈다.

강무진이 손을 뻗었다.

뿔피리 끝에 둘러진 철테가 손안에서 잡아당겨지는 듯 울렸다. 그가 감각을 비틀자 얇은 철테가 오므라들며 피리의 취구를 짓눌렀다.

마족이 숨을 불어넣었지만 소리는 나지 않았다.

도리아가 길 아래에서 튀어나왔다.

“쇠사슬이나 휘두르는 놈들이 쇠를 찼구나!”

도끼가 방패 가장자리를 찍자 마족 하나가 충격에 밀렸다.

강무진은 곧장 포로들에게 달렸다. 곡도를 든 마족이 길을 막고 날을 옆으로 그어 왔지만, 그는 반걸음 물러나 궤적을 피하며 망치로 칼등을 쳤다.

캉!

손끝으로 충격이 올라왔다. 칼은 단단했으나 지나치게 급랭되어 있었고, 날에서 자루 쪽으로 가는 결 하나가 이미 끊어져 있었다.

강무진이 같은 자리를 다시 치자 곡도가 두 동강 났다.

마족이 부러진 칼을 내려다보는 순간, 강무진은 어깨로 가슴을 밀어붙여 상대를 쓰러뜨렸다. 곧바로 쫓아가 망치 머리로 투구 옆을 내리치자 마족의 몸이 축 늘어졌다.

옆에서 창이 날아왔다.

강무진은 사슬을 끌어당겼다. 바닥에 늘어진 쇠고리가 뱀처럼 솟아 창대를 감으면서 창끝이 그의 옆구리 한 뼘 앞에서 빗나갔다. 금속은 느낄 수 있어도 나무 창대까지 움직일 수는 없었기에, 그는 사슬을 팽팽히 당긴 채 몸을 틀었다.

창을 쥔 마족이 균형을 잃자 화살이 목 아래 갑옷 틈에 박혔다.

실바나는 다음 화살을 걸었고, 그녀의 손은 더 이상 떨리지 않았다.

남은 마족 셋이 진형을 바꿨다. 둘이 도리아를 막는 동안 하나는 포로를 향해 칼을 들었다.

“접근하면 상품을 폐기한다!”

강무진의 걸음이 멈췄다.

마족은 엘프의 목에 칼날을 댔다. 실바나의 시위가 팽팽해졌으나 포로와 적이 겹쳐 각도가 나오지 않았다.

“무기를 내려라.”

마족이 말했다.

강무진은 망치를 내려놓았고, 도리아도 이를 갈면서 도끼를 낮췄다.

마족의 입가가 올라갔다.

강무진은 칼날 안쪽을 느꼈다. 날은 엘프의 목에 닿아 있었고, 칼자루에는 손가락 두 마디 길이의 가느다란 철심이 박혀 있었다.

그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손을 쥐었다.

철심이 옆으로 꺾이면서 칼자루가 마족의 손안에서 터졌다. 손가락이 벌어진 순간, 강무진은 바닥의 망치를 발등으로 차올려 잡았다.

한 걸음.

망치가 마족의 팔꿈치를 쳤다.

두 걸음.

돌아오는 망치가 턱을 올려쳤고, 마족은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

도리아의 도끼가 방패 하나를 옆으로 밀어내자 실바나의 화살 두 발이 연달아 날았다. 첫 화살은 허벅지의 갑옷 틈을, 두 번째는 칼을 든 손목을 꿰뚫었다.

마지막 마족이 달아났다.

강무진은 쫓지 않고 땅에 떨어진 사슬로 손을 뻗었다. 쇠고리가 길 위를 미끄러져 달아나는 자의 발목을 감자 마족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도리아가 천천히 다가가 도끼등으로 뒤통수를 쳤다.

“내 화로에서 작업하던 중이었다. 운 좋은 줄 알아라.”

숲이 조용해졌다.

강무진은 쓰러진 마족들의 무기를 먼저 걷어냈다. 모두 숨은 붙어 있었기에 다시 싸울 수 없는 상태인지 확인하고 나서야 포로들에게 다가갔다.

엘프 셋은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사슬이 당겨지며 서로의 손목이 흔들렸다.

“열쇠를 찾겠습니다.”

강무진이 말하자 가장 앞의 엘프가 고개를 저었다.

“저들이 삼켰습니다. 도망치지 못하게…….”

강무진은 사슬을 잡았다.

차갑고 거친 쇠였다. 여러 번 사용되어 고리 안쪽이 닳았고, 불순물이 많은 데다 용접부도 엉성했다. 힘으로 벌리면 손목에 충격이 갈 터였다.

그는 고리마다 결이 끊어진 자리를 찾아 엄지와 검지로 누른 뒤, 금속을 천천히 양쪽으로 밀었다.

끼익.

고리가 소리 죽인 마찰음을 내며 벌어지자 엘프들이 숨을 죽였다.

강무진은 세 사람의 사슬을 차례로 풀고 나서 마지막으로 다친 엘프의 발목을 살폈다. 상처 안에는 작은 화살촉 조각이 박혀 있었다.

그가 손가락을 가까이 대자 은이 섞인 금속 조각의 위치가 선명하게 잡혔다.

“조금 아플 겁니다.”

“이미 충분히 아픕니다.”

엘프가 마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빨리 끝내겠습니다.”

강무진은 조각이 들어간 방향 그대로 금속을 움직였다. 살을 더 헤집지 않도록 각도를 한 치씩 맞추자 피와 함께 화살촉 끝이 빠져나왔다.

실바나가 무릎을 꿇고 상처에 손을 얹었다. 그녀가 낮은 엘프어로 무언가 속삭이자 주변의 잎이 한꺼번에 기울었고, 연한 녹색 빛이 손가락 사이로 스며들며 피가 멎었다.

“이들은 서쪽 물푸레 정찰대입니다.”

실바나의 목소리는 전보다 낮았다.

“두 달 전에 연락이 끊겼습니다.”

구출된 엘프 하나가 그녀의 은장을 알아보고 떨리는 손을 가슴에 얹었다.

“사절님. 다른 이들이 있습니다.”

“어디에 있습니까?”

“접경의 광산입니다. 엘프만이 아닙니다. 인간도, 수인도…… 뿔과 꼬리를 가진 어린 종족들도 있었습니다.”

강무진은 벌어진 사슬 고리를 내려다보았다.

안쪽에는 검붉은 얼룩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방금 생긴 흔적이 아니었으니, 같은 사슬이 여러 사람의 손목을 묶어 왔다는 뜻이었다.

실바나가 포로의 어깨를 받쳤다.

“몇 명입니까?”

“모릅니다. 갱도 아래에도 있었습니다. 밤에도 쇠를 캐게 했습니다. 쓰러진 자는 밖으로 나오지 못했습니다.”

숲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강무진은 붙잡은 마족들의 갑옷을 살폈다. 가슴 철편 안쪽에는 뿔이 달린 탑 아래로 세 줄의 사슬이 내려오는 같은 문장이 찍혀 있었고, 무기에는 번호까지 새겨져 있었다.

보급을 받고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병력이었다.

노예 사냥은 몇몇의 범죄가 아니었다. 누군가 계획하고, 장비를 나누고, 운반로를 관리하고 있었다.

강무진은 마족의 곡도 하나를 집어 들었다. 부러진 단면에는 거친 결정립이 드러났는데, 강한 쇠였지만 다루는 법은 조급했다. 많이 만들기 위해 시간을 줄인 흔적이었다.

실바나가 그를 바라보았다.

“당신은 이유를 묻지 않았습니다.”

“무슨 이유 말입니까?”

“왜 이들을 구해야 하는지.”

강무진은 곡도를 내려놓았다.

“묶여 있었으니까요.”

“당신과 같은 인간도 아니었습니다.”

“쇠사슬은 종족을 가리지 않습니다.”

실바나의 활을 쥔 손가락이 천천히 펴졌다. 그녀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구출된 동족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이들을 원로회의 길로 데려가야 합니다. 치료와 증언이 필요합니다.”

“가십시오.”

“당신도 함께 와 주십시오.”

강무진은 실바나를 보았다.

“관찰은 끝났습니까?”

“아닙니다. 다만 관찰한 것을 보고할 이유는 충분해졌습니다.”

그녀는 여전히 격식을 갖춘 목소리로 말했다. 인간에 대한 경계가 사라진 얼굴은 아니었지만, 처음 대장간 문턱에 섰을 때와 달리 이제 그녀의 몸은 강무진과 구출된 이들 사이를 막고 있지 않았다.

“원로회에 당신을 소개하겠습니다. 모든 원로가 제 판단에 동의하지는 않을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인간에 대한 우리의 불신도 한 번에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실바나는 가만히 그 말을 들었다.

“당신은 신뢰를 원하지 않습니까?”

“신뢰는 달라고 해서 받는 게 아닙니다.”

강무진은 벌어진 사슬 고리를 집어 허리 주머니에 넣었다.

“만들어 쌓는 겁니다.”

도리아가 쓰러진 마족들을 한데 묶으며 끼어들었다.

“그건 쇠보다 오래 걸리지. 귀 긴 양반들 고집은 담금질도 안 되니까.”

실바나는 도리아를 바라보았지만 받아치지 않았다. 대신 아주 희미하게 입술 끝이 움직였으나, 강무진은 그것이 웃음이었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들은 부상자들을 부축해 드워프 마을로 돌아갔고, 붙잡은 마족들은 별도의 석실에 가두었다. 도리아는 화로 앞에서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겠다며 치료에 필요한 칼과 집게만 만들어 건넨 뒤 문을 닫았다.

밤이 깊었을 때 실바나가 대장간으로 찾아왔다.

강무진은 사슬 고리의 단면을 갈고 있었고, 숫돌 위로 검은 가루가 떨어졌다.

실바나는 낡은 가죽 지도 한 장을 작업대에 펼쳤다. 숲 동쪽과 접경 산맥 사이에 붉은 선이 그어져 있었다.

“동족의 증언을 맞춰 보았습니다.”

그녀가 지도 한곳을 짚었다.

“사냥대가 향하던 광산은 이곳일 가능성이 큽니다.”

강무진은 지도를 내려다보았다. 숲에서 이틀 거리였는데, 산길을 따르면 사흘이 걸리고 계곡을 가로지르면 하루 반이면 닿을 수 있었다.

“경비는요?”

“확인된 것만 스물입니다. 실제로는 더 많을 겁니다. 갱도 안의 수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실바나는 손가락을 떼지 않았다.

“원로회에 보고하면 논의가 열릴 것입니다. 정찰대를 보낼지, 숲의 방위를 먼저 굳힐지 결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합니다.”

“얼마나 걸립니까?”

“빠르면 보름입니다.”

강무진은 숫돌질을 멈췄다. 사슬 고리 안쪽의 얼룩이 불빛 아래 드러났다.

보름이면 쇠는 수십 번 달아올랐다 식을 수 있었다. 갱도에 갇힌 사람의 몸은 그만큼 버티지 못했다.

“길을 알려주십시오.”

실바나의 시선이 그의 손에 머물렀다.

“혼자 갈 생각입니까?”

대장간 안쪽에서 도리아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렸다.

“누가 혼자 간대?”

문이 열리자 여행용 망치와 작은 화덕 도구를 등에 멘 도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광산이면 쇠도 있겠지. 엉터리로 캐는 꼴은 못 봐.”

강무진은 사슬 고리 옆에 망치를 내려놓았다.

실바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다 잠시 뒤 지도의 계곡 길에 손가락으로 선을 그었다.

“이 길은 마족의 초소를 피할 수 있습니다.”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저는 원로회의 사절입니다. 동족의 안전을 무엇보다 우선해야 합니다.”

그녀는 지도를 접어 품에 넣었다.

“그러니 함께 가겠습니다.”

화덕 속 숯이 무너지며 작은 불티가 솟았다.

강무진은 벽에 걸린 집게와 망치, 짧은 칼을 차례로 챙긴 뒤 마지막으로 벌어진 사슬 고리를 주머니 깊숙이 넣었다.

새벽이 오기 전, 세 사람은 광산으로 향했다.

회차 끝 6

ReNovels · 한 회차씩, 이야기 속으로.

회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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