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로 안으로 들어서려는 강무진의 등 뒤에서 실바나가 낮게 말했다.
“신호가 완전히 끊기거나 해가 기울 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따라가겠습니다.”
강무진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도리아는 바위 그늘에 쪼그려 앉은 채 갱도 입구를 노려보았다. 평소 같으면 광산의 지지대부터 광석의 빛깔까지 한마디씩 보탰을 그였으나, 지금은 여행용 망치의 자루만 굵은 손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안에서 크게 두 번 울려라. 길을 뚫어야 하면 내가 간다.”
“그럴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크흠. 광산에서 그런 소린 하는 게 아니야. 무너지지 않으면 다행이고, 무너지면 제대로 뚫는 거지.”
강무진은 몸을 낮춰 갱도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스무 걸음쯤 떨어지자 햇빛이 끊겼고, 대신 벽에 걸린 광석등의 붉은 불빛이 축축한 바닥을 희미하게 핥았다. 갱도는 성인 두 명이 비껴갈 만큼 좁았으며 천장은 도리아조차 등을 굽혀야 할 정도로 낮았다. 나무 지지대에는 검은 곰팡이가 피어 있었고 곳곳에 바위가 눌러 터뜨린 흔적이 보였는데, 광산을 오래 쓴 탓만은 아니었다. 서둘러 광맥을 따라가느라 지지대를 지나치게 벌려 세웠고 물이 스미는 균열도 막지 않은 채, 광석을 캐는 사람의 목숨보다 하루 생산량을 앞세운 구조였다.
강무진은 왼손을 벽에 댔다.
돌 속에 박힌 금속이 손바닥으로 밀려들었다. 철광맥은 검붉은 띠가 되어 아래쪽으로 비스듬히 이어졌고, 그 곁에는 질 나쁜 황철석과 소량의 구리가 섞여 있었다. 바닥에는 부러진 정과 닳은 곡괭이 날이 흩어져 있었으며, 더 깊은 곳에서는 수십 개의 쇠고리가 느껴졌고 고리들은 저마다 다른 속도로 움직였다. 빠른 것, 느린 것,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 쇠사슬의 진동을 따라가자 사람들의 걸음과 곡괭이질이 손끝에 닿았는데, 그 수가 실바나에게 들은 것보다 많았다.
강무진은 숨을 죽인 채 첫 갈림길까지 나아갔다. 오른쪽에서는 수레바퀴가 철로를 긁는 소리가 들려왔고, 왼쪽에서는 거친 목소리와 함께 채찍이 허공을 가르는 소리가 울렸다.
“다음 교대 전까지 세 수레를 채워라. 기준량에 못 미치는 개체는 식량 배급에서 제외한다.”
말투는 차분했으나 오히려 그래서 명령의 내용이 더 선명하게 들렸다.
강무진은 벽의 오목한 곳에 몸을 붙이고 안쪽을 살폈다. 붉은 피부에 뒤로 굽은 뿔이 난 마족 둘이 횃불 아래 서 있었으며, 가슴에는 숲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문장이 찍힌 철편 갑옷을 걸치고 있었다. 뿔 달린 탑 아래로 세 줄의 사슬이 내려오는 표식이었다.
한 마족이 무릎 꿇은 인간 노인의 어깨를 발로 밀었다. 노인은 부러진 곡괭이 자루를 움켜쥔 채 일어나려 했지만 발목의 쇠고리가 짧게 연결되어 있어 제대로 몸을 세우지 못했다.
“도구가 부러졌습니다.”
“그러니까 네 생산성이 떨어진 것이다.”
“새 곡괭이를 주시면 채우겠습니다.”
“도구 손실도 네 몫이다.”
마족이 허리에서 채찍을 풀었다.
강무진은 바닥에 놓인 부러진 곡괭이 날을 느꼈다. 철의 결은 거칠었고 탄소는 한쪽에 몰려 있었으나, 쓰기 전에 한 번만 제대로 불리고 두드렸어도 저렇게 부러지지는 않았을 물건이었다.
채찍이 올라가는 순간, 강무진은 손가락을 굽혔다.
바닥의 곡괭이 날이 튀어 오르며 채찍의 손잡이를 때렸고 마족의 손이 옆으로 꺾이고, 그가 신음하기도 전에 강무진이 어둠에서 걸어 나왔다.
“누구냐?”
다른 마족이 곡도를 뽑았다. 날이 칼집을 빠져나오는 순간 강무진은 그 쇠의 두께와 열처리 상태를 읽었는데, 칼등은 지나치게 단단했고 슴베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균열이 퍼져 있었다.
그가 손바닥을 펴자 곡도가 마족의 손에서 멎었다. 상대가 팔에 힘을 주자 날이 부르르 떨렸지만, 강무진이 금속의 결을 반대 방향으로 밀어내자 짧은 파열음과 함께 슴베가 부러지며 칼날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강무진은 거리를 좁히며 망치로 마족의 명치를 쳤다. 철편 갑옷이 안으로 찌그러지며 상대가 숨을 토하고 쓰러지자, 채찍을 든 마족은 허리의 뿔피리를 잡으려 했다.
허리띠의 쇠장식이 갑자기 비틀렸고 뿔피리를 묶은 고리가 조여들며 손가락을 붙잡는 사이 강무진은 그대로 다가가 망치자루를 턱 아래에 올려쳤다.
두 마족이 바닥에 쓰러지자 노인이 강무진을 올려다보았고 움푹 팬 눈가와 갈라진 입술 때문에 나이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당신은…… 경비가 아니오?”
강무진은 대답 대신 노인의 발목 앞에 앉았다. 쇠고리는 오래된 피와 광석 가루로 굳어 있었으며 잠금쇠에는 열쇠 구멍 대신 쐐기가 박혀 있어, 빨리 채우고 쉽게 풀지 못하게 만든 구조였다.
그가 엄지로 쐐기 머리를 눌렀다.
철이 미세하게 울리며 안쪽으로 밀려나자 고리의 맞물림이 풀렸고, 강무진은 상처를 건드리지 않도록 양옆으로 벌렸다.
“걸을 수 있습니까?”
노인은 벗겨진 발목을 내려다보다가 벽을 짚고 일어섰다.
“걸어야 한다면.”
“출구는 뒤쪽입니다. 아직 나가지는 마시고, 다른 이들에게 조용히 전해 주십시오.”
노인의 입술이 움직였지만 소리는 나오지 않았고 대신 그는 쓰러진 마족의 곡도를 집으려 했다.
강무진이 먼저 칼날을 발로 눌렀다.
“그건 두고 가십시오.”
“저것들이 깨어나면?”
강무진은 마족들의 갑옷을 손으로 훑었고 철편 가장자리가 늘어나 서로 맞물리며 팔과 다리를 감싸더니 바닥의 철로에 달라붙었다. 두 마족은 갑옷째 광차 궤도에 묶였다.
“못 일어납니다.”
노인은 몇 번이나 그들을 돌아보면서 어둠 속으로 물러났다.
강무진은 다시 손을 벽에 댔고 갱도 전체의 쇠가 전보다 또렷하게 잡혔다. 경비들이 지닌 검과 창은 모두 열셋이었고, 허리의 열쇠 뭉치가 다섯, 지상 작업장 쪽에는 쇠뇌 세 자루가 모여 있었다. 그런데 노예들의 쇠고리는 마흔을 넘었고 강무진은 잠시 감각을 더 밀어냈다. 남쪽 능선 너머, 다른 신호와 확연히 떨어진 곳에서 창 한 자루가 홀로 서 있었는데, 움직임이 거의 없는 것으로 보아 초입 바깥의 감시 자리를 지키는 파수병 같았다. 갱도 안의 일과 무관해 보였으므로 강무진은 그 신호를 마음 한구석에 밀어 두고 다시 안쪽으로 집중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유난히 거칠게 움직였다.
왼쪽 아래 갱도였다. 쇠사슬이 당겨졌다 풀릴 때마다 고리 하나가 다른 것보다 크게 뒤틀렸고, 그 곁에서는 창날 셋이 빠르게 흔들렸다.
강무진은 걸음을 재촉했다.
경사가 급해지면서 공기는 더욱 탁해졌다. 물과 땀, 녹슨 쇠 냄새가 엉겨 붙었고 바닥에는 핏자국이 광석 가루와 함께 검게 굳어 있었는데, 아래쪽 공동에 이르자 욕설과 짐승의 으르렁거림이 겹쳐 들렸다.
늑대의 귀를 가진 사내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헝클어진 잿빛 머리카락 아래로 한쪽 귀가 찢겨 있었고, 벗은 상체에는 채찍 자국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목에는 굵은 쇠테가 채워졌고 양손과 양발의 사슬은 공동 중앙의 말뚝에 연결되어 있었지만, 그런데도 마족 병사 셋이 사내를 반원으로 둘러싼 채 선뜻 다가서지 못했다.
사내의 발치에는 부러진 창자루가 놓여 있었다.
“고개를 숙여라, 노예.”
앞에 선 마족이 창끝으로 그의 어깨를 눌렀고 사내는 몸을 낮추는 대신 이를 드러냈다.
“목줄 없으면 말도 못 거는 놈이.”
창날이 어깨를 찔러 피가 흘렀지만 사내는 물러서지 않고, 사슬이 팽팽해질 만큼 앞으로 몸을 밀었다.
“한 번만 가까이 와 봐. 목덜미는 물어뜯어 줄 테니까.”
마족이 창을 거두더니 사내의 가슴을 걷어찼다. 몸이 뒤로 넘어가면서 오른손목의 검은 낙인이 드러났다. 쇠로 지진 문장은 갑옷의 표식과 같았고 오래 아문 자국 위에 다시 불로 덧댄 흔적까지 남아 있었다. 광산과 상단이 바뀔 때마다 같은 자리에 소유 표식을 거듭 찍은 탓이었다.
강무진의 손이 망치자루를 감쌌다.
마족 하나가 인기척을 알아차리고 고개를 돌렸다.
“누구—”
강무진이 바닥을 밟았다.
공동을 가로지르던 낡은 철제 궤도가 들썩이며 고정못 세 개가 돌에서 빠져나와 화살처럼 날아갔고, 먼저 돌아본 마족의 창대와 손목 보호대를 꿰어 벽에 박았다.
나머지 둘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좁은 공동에서 창은 길었다. 왼쪽의 창끝이 먼저 가슴을 노렸고 오른쪽의 창은 퇴로를 막으려 비스듬히 들어왔지만, 강무진은 반걸음 안으로 파고들어 첫 창의 자루를 팔꿈치로 밀었다. 동시에 창날의 쇠를 아래로 잡아당기자 끝이 바닥에 처박혔고, 그는 그 자루를 밟으며 망치로 상대의 손등을 쳤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창이 떨어졌다.
두 번째 마족의 날이 옆구리를 스쳤다. 강무진이 몸을 틀었지만 겉옷이 길게 찢어졌고 차가운 날끝이 피부를 얕게 갈랐는데, 상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창을 당겨 다시 찌르려 했다.
강무진은 창날을 맨손으로 잡지 않고 손바닥을 세운 채 그 안의 쇠를 느꼈다. 질이 나쁜 철은 억지로 곧게 펴서 결이 한쪽으로 늘어나 있었으므로, 그는 가장 약한 부분에 힘을 모아 비틀었다. 창날이 옆으로 꺾이며 마족의 자세가 무너지자 강무진의 망치가 팔꿈치 관절을 거쳐 관자놀이 옆에 멎었다.
쓰러지는 몸을 피한 강무진은 곧장 벽에 붙들린 마족에게 다가갔다. 상대가 입을 벌리자 갑옷의 목가리개가 솟아올라 턱을 닫았고, 망치자루가 명치를 파고들자 마족은 눈을 뒤집으며 축 늘어졌다.
공동이 조용해졌다.
늑대수인 사내는 넘어진 채 강무진을 노려보았고 눈동자는 황갈색이었고, 굶주림으로 볼이 패였는데도 시선만은 무뎌지지 않았다.
“인간이 왜 여기 있지?”
“사슬을 풀러 왔습니다.”
“마족끼리 싸우는 인간도 있나?”
“나는 마족이 아닙니다.”
강무진은 사내 앞에 앉아 목의 쇠테부터 살폈다. 안쪽에는 살을 파고드는 돌기가 달려 있어 억지로 당길수록 상처가 벌어지는 구조였는데, 쇠를 벌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으나 한꺼번에 힘을 주면 녹슨 돌기가 살점을 긁을 터였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뭘 하려고?”
“풉니다.”
강무진은 쇠테의 온도와 두께를 손끝으로 읽으며 힘을 여러 갈래로 나눴다. 맞물린 부분을 먼저 느슨하게 만들고 돌기의 끝을 안쪽으로 둥글게 말아 넣은 뒤, 목의 굴곡을 따라 고리를 천천히 벌렸다.
차가운 쇠가 바닥에 떨어졌다.
사내는 목을 문지르지 않았다. 대신 손목과 발목의 사슬이 차례로 풀리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보다가, 마지막 고리가 떨어지고 나서야 손가락을 몇 번 폈다 오므렸다.
“이름이 뭡니까?”
“노예한테 이름을 왜 물어?”
“노예가 아니니까요.”
사내의 귀가 아주 조금 움직이며, 그는 강무진의 얼굴과 쓰러진 마족들, 발치의 열린 쇠고리를 차례로 훑었다.
“라칸.”
“강무진입니다.”
“그래서 강무진. 문을 열어 놓고 다 도망치라는 건가?”
“그럴 생각입니다.”
라칸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짧게 숨을 뱉었는데, 웃음이라기보다는 기침에 가까운 소리였다.
“여기 갇힌 게 몇인데?”
“마흔둘입니다.”
이번에는 라칸의 눈빛이 달라졌다.
“어떻게 알았지?”
“쇠는 숨지 못합니다.”
강무진은 몸을 일으켰다.
“움직일 수 있으면 다른 사람들을 모아 주십시오. 싸울 수 있는 이가 몇인지도 확인하고.”
라칸도 벽을 짚고 일어섰다. 오랫동안 사슬에 묶여 있던 다리가 한 차례 꺾였지만, 그는 쓰러진 마족에게서 창자루를 빼앗아 지팡이처럼 짚었다.
“명령하는 말투군.”
“부탁입니다.”
“그거나 그거나.”
라칸은 투덜거리면서도 곧바로 옆 갱도로 향했고 몇 걸음 뒤, 그가 돌아보지 않은 채 물었다.
“도망치다 잡히면?”
“잡히지 않게 하겠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어?”
강무진은 쓰러진 마족의 무기를 모아 손으로 눌렀고 창날과 곡도가 휘어지며 한 덩어리로 엉겨 붙었다.
“보고 정하십시오.”
라칸은 잠시 귀를 세웠다가 다시 걸었다.
강무진은 공동 바깥으로 나와 갱도의 쇠를 훑었다. 처음 쓰러뜨린 경비들이 아직 궤도에 묶여 있었고 지상의 병력은 움직임이 없었지만, 교대 시간이 다가오는지 멀리서 열쇠 뭉치 둘이 같은 방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그는 가장 가까운 쇠고리부터 찾아갔다. 갱도마다 인간과 수인, 뿔 달린 아인종들이 광벽 앞에 쓰러지거나 곡괭이를 든 채 서 있었는데, 강무진이 나타나자 어떤 이는 뒷걸음질 쳤고 어떤 이는 마족의 함정이라며 쇠고리를 감췄다. 강무진은 길게 설명하지 않았고 무릎을 굽히고 상처를 살핀 뒤 쇠를 열었다.
손목이 부은 아이에게서는 고리를 절반으로 갈라 옆으로 빼냈으며, 피부와 녹이 엉겨 붙은 노인의 쇠고리는 물을 부어 굳은 피부터 씻은 뒤 풀었다. 잠금 구조는 제각각이었으나 만든 솜씨는 모두 거칠어서, 열쇠가 없어도 풀 수 있었지만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고 열려면 매번 힘의 방향을 달리해야 했다.
스무 번째쯤에 이르자 강무진의 관자놀이에 땀이 흘렀다. 철의 축복은 쇠의 상태를 알려 주었으나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는 그가 판단해야 했고, 고리 하나마다 살의 두께와 상처의 위치가 달라서 힘을 조금만 잘못 주면 이미 약해진 뼈까지 상할 수 있었다. 그는 서두르되 손을 재촉하지 않았다.
“다음.”
라칸이 사람들을 데리고 돌아왔을 때, 목소리에는 처음보다 힘이 붙어 있었다.
“걸을 수 있는 자 스물셋. 부축하면 움직일 자 열하나. 나머지는 업어야 해. 싸울 만한 건…… 나까지 일곱.”
그의 뒤에는 인간 광부와 멧돼지수인, 작은 뿔이 난 아인종 여인들이 서 있었으며 대부분 곡괭이나 부러진 자루를 들었지만 무기를 쥔 자세는 제각각이었다.
강무진은 마지막 쇠고리를 풀며 말했다.
“싸우지 않는 게 먼저입니다. 부상자부터 입구 쪽 갈림길로 보내십시오.”
“경비를 두고?”
“교대 병력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막아야지.”
“여기서 부딪치면 퇴로가 막힙니다.”
라칸은 입술을 걷어 이를 보였으나 반박하지 않았고 갱도 구조를 모르는 자신보다 강무진이 낫다고 판단한 듯했다.
“그럼 뭘 할 건데?”
강무진은 바닥의 철로를 내려다보았다. 광석을 실은 광차들이 상층 선별장까지 이어지는 경사로에 세워져 있었고, 제동 장치는 녹이 슬었어도 축 자체는 쓸 만했다. 갱도 안의 경비가 한곳에 모이면 길을 막을 수 있었다.
“소리를 내야겠습니다.”
강무진은 풀어낸 사슬들을 모았다. 길이가 다른 사슬이 바닥을 기어오르듯 움직이더니 광차의 차축과 지지대 사이를 꿰어 단단히 감겼고, 그는 제동쇠 두 개를 손으로 펴고 마지막 하나만 걸어 두었다.
“사람들을 옮기십시오. 위에서 큰 소리가 나면 벽에 붙고.”
“당신은?”
“남은 경비를 부르겠습니다.”
라칸이 그의 앞을 막았다.
“혼자 다 하겠다고?”
“통로가 좁습니다.”
“나도 좁아.”
라칸은 상처 입은 어깨로 창자루를 고쳐 잡았고 서 있는 것만으로도 다리가 떨리고 있었으나 물러날 기색은 없었다.
강무진은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쓰러진 마족의 짧은 곡도를 집어 들었고 날의 균형은 나빴고 손잡이는 라칸의 손에 비해 작았지만, 지금 가진 것 가운데 그나마 나았다. 그는 칼등을 손가락으로 훑어 미세한 균열을 눌러 붙인 뒤 라칸에게 건넸다.
“뒤에서 오는 자만 막으십시오.”
라칸이 곡도를 받아 들었다.
“명령 아니고 부탁이지?”
“그렇습니다.”
“그럼 빚으로 쳐 두지.”
멀리서 철판 밟는 소리가 다가왔다.
강무진은 빈 광차 하나를 밀어 갱도 한복판에 세웠다. 잠시 뒤 굽은 통로 너머로 마족 경비 넷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 뒤에는 쇠뇌를 든 병사 둘이 따라오고 있었다.
선두의 마족이 열린 쇠고리들을 발견했다.
“경보를—”
강무진이 광차 옆면을 망치로 쳤다.
깊고 둔한 울림이 갱도 전체로 번지는 동시에 천장에 걸린 광석등의 철고리가 풀리며 아래로 떨어졌고, 불빛이 꺼지자 공동은 순식간에 어둠에 잠겼다.
쇠뇌의 시위가 튕겼다.
강무진은 화살촉 두 개를 느끼고 손을 뻗었다. 하나는 광차 옆판에 처박혔지만 다른 하나는 방향이 완전히 꺾이지 않은 채 그의 팔을 스쳤고, 뜨거운 통증이 번졌으나 그는 물러서지 않고 광차를 앞으로 밀었다.
경비들이 창을 세워 바퀴를 막으려 했다.
강무진은 차축에 감아 둔 사슬을 풀었고 무게를 이기지 못한 광차가 경사로를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고, 바퀴가 철로에 부딪칠 때마다 속도가 붙었다.
“피해!”
마족들이 옆 갱도로 몸을 던졌으나 선두 둘은 빠져나가지 못하고 광차 앞판에 떠밀려 궤도 끝의 적재함과 충돌했다.
쾅!
바위가 울리며 먼지가 천장에서 쏟아졌고, 바깥까지 닿았을 굉음이 갱도를 길게 타고 나갔다. 그 진동 속에서 강무진은 남쪽 능선 너머 감돌던 홀로 선 창의 신호가 갑자기 흔들리다 그대로 멎는 것을 어렴풋이 느꼈다. 쥐고 있던 손을 놓아 버린 것처럼, 창은 그 자리에 선 채 더는 움직이지 않았고 낯선 감각이었지만 지금 눈앞의 통로가 먼저였으므로 강무진은 그 여운을 붙잡지 않고 먼지 속으로 뛰어들었다.
쓰러진 마족 하나가 허리의 검을 뽑으려 했으나 칼집이 갑옷에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았고, 망치가 손목을 내리치자 비명이 터졌다.
옆 갱도로 피했던 병사가 창을 찔러 왔다.
강무진은 고개를 기울여 날을 피했다. 창끝이 뺨을 스치는 동안 자루 아래로 파고들어 어깨로 상대의 가슴을 밀고, 이어 망치 머리를 무릎 보호대에 걸어 당겼다. 마족이 균형을 잃자 라칸이 뒤에서 달려들었다.
곡도가 갑옷과 팔 사이를 파고들었고 라칸은 상처 때문에 끝까지 밀지 못했지만 몸을 부딪쳐 상대를 바닥에 눌렀다.
“뒤만 막으라며!”
“앞으로 왔군요.”
“길이 여기뿐이잖아!”
라칸이 으르렁거리는 사이, 남은 쇠뇌병이 재장전을 마쳤고 시위와 걸쇠가 맞물리는 소리가 어둠 속에서 작게 울렸다.
강무진은 방향을 읽었으나 사선 사이에는 라칸이 있었다.
그가 손을 움켜쥐자 쇠뇌의 방아쇠가 휘어 화살이 발사되지 않았다. 병사가 당황해 무기를 흔드는 순간, 갱도 입구 쪽에서 화살 한 발이 날아와 쇠뇌의 몸통을 꿰뚫어 벽에 박았다.
“모두 머리를 숙이십시오!”
실바나의 목소리가 먼지 너머로 울렸다. 이어 두 번째 화살이 날아와 달려들던 마족의 어깨를 꿰뚫었고, 도리아는 낮은 천장에 머리를 부딪칠 듯 달려오며 여행용 망치를 휘둘렀다.
“크흠! 신호가 아주 요란하군!”
그의 망치가 마지막 경비의 방패를 옆으로 쳐내자 강무진은 열린 틈으로 들어가 갑옷 가슴판을 올려쳤고 철편이 안으로 접히며 마족은 숨을 토하며 쓰러졌다.
강무진은 곧바로 주변의 금속을 확인했다.
가까운 통로 안에서는 움직이는 무기가 없었고 그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그는 아까 멎었던 남쪽의 창을 다시 떠올렸다. 창은 감시 자리에 버려졌지만, 그 곁을 떠난 파수병의 허리 단검과 군화 못이 남쪽 초소 방향으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그가 먼저 붙잡아야 할 것은 어둠 속에 남은 마흔 명이 넘는 사람들이었다.
“아래 갱도에 마흔둘이 있습니다. 부상자가 많습니다.”
실바나는 활시위를 늦추지 않은 채 어둠 속을 살폈고 광차 충돌음을 들은 뒤 곧장 들어온 것인지 호흡이 조금 빨랐지만 목소리는 흐트러지지 않았다.
“입구의 경비 셋은 제압했습니다. 해가 기울기 전이었으나, 그 소리를 신호로 판단했습니다.”
“잘하셨습니다.”
도리아는 부서진 광차와 휘어진 철로를 번갈아 보더니 수염을 거칠게 쓸었다.
“광차를 신호로 쓰는 장인은 처음 보는군. 차축이 아깝게시리.”
“고칠 수 있습니다.”
“당연히 고쳐야지.”
그는 투덜거리면서도 곧장 아래 갱도를 향했다. 부상자를 업고 올라오던 인간 노인을 발견하자 말없이 짐과 곡괭이를 대신 받아 들었고, 실바나는 엘프어와 대륙 공용어를 번갈아 사용해 사람들을 입구로 이끌었다.
라칸은 벽에 기대 숨을 골랐다. 손에 든 곡도 끝이 바닥에 닿아 있었고, 이마에서 흐른 식은땀이 턱을 타고 목의 오래된 쇠고리 흉터로 스며들었다.
강무진이 다가가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밖에도 경비가 있었나?”
“있었던 모양입니다.”
“저 엘프랑 드워프도 당신 편이고?”
“동료입니다.”
라칸은 실바나와 도리아가 부상자들을 옮기는 모습을 한동안 지켜보다가, 발치에 떨어진 자신의 쇠고리를 곡도 끝으로 뒤집었다.
“이걸 정말 끝낸 건가?”
“여기서는 그렇습니다.”
“다른 광산도 있어.”
라칸의 목소리가 낮아지며, 그는 고개를 들어 어두운 갱도 안쪽을 바라보았다.
“나도 다른 데서 팔려 왔어. 여기 오기 전에도 우리에 사람이 가득했지. 마족들만 있는 게 아니야. 돈 받고 넘기는 놈들도 있고, 길을 봐주는 놈들도 있다.”
강무진은 그의 말을 끊지 않았다.
쇠고리 하나가 끝났다고 사슬 전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 광산의 철편 갑옷과 번호 매긴 무기, 정해진 교대와 생산량은 모두 더 큰 조직의 흔적이었으며, 조금 전 소리 없이 사라진 파수병 하나도 그 조직의 어딘가로 이 소식을 실어 나를 터였다.
강무진은 바닥의 쇠고리를 집었고 안쪽에는 라칸의 피와 털이 말라붙어 있었고, 잠금쇠 옆에는 뿔 달린 탑의 문장이 작게 새겨져 있었다.
“알고 있는 걸 나중에 말해 주십시오.”
라칸이 눈을 가늘게 떴다.
“나중?”
“먼저 나갑시다.”
강무진은 몸을 돌려 가장 가까운 부상자를 등에 업었고 몸집이 작은 뿔 달린 아이였는데, 너무 가벼워서 광석 자루보다 무게가 덜 나갔다. 아이의 손목에는 쇠고리가 벗겨진 자국이 붉게 남아 있었다.
사람들은 줄을 지어 갱도를 빠져나갔다. 오래 어둠 속에 있던 이들은 입구의 빛이 보이자 오히려 걸음을 늦췄고, 몇몇은 눈을 가리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나 누구도 크게 울거나 환호하지 않았고 바깥 공기를 들이마시고,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고, 풀려난 손목을 몇 번씩 매만질 뿐이었다.
강무진은 마지막까지 갱도에 남아 쇠의 움직임을 확인했고 쓰러진 마족들의 무기는 한곳에 모아 휘어 붙였고, 갑옷은 팔과 다리가 움직이지 않도록 궤도에 고정했다. 광산의 지지대 가운데 금속 보강재가 빠진 곳에는 부러진 철로를 잘라 덧대었는데, 해방했다고 해서 갱도가 무너져 사람들을 삼키게 둘 수는 없었다.
밖으로 나왔을 때 해는 서쪽 산등성이에 걸려 있었다.
실바나는 부상자의 상처를 묶다가 강무진을 보았고, 도리아는 입구 옆 바위에 앉아 망치의 먼지를 털었고 라칸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광산을 지켜보고 있었다. 목에는 쇠고리 자국이, 손목에는 거듭 찍힌 낙인이 남았지만, 적어도 이제 그의 몸에 걸린 쇠는 없었다.
강무진은 주머니에서 숲에서 주운 사슬 고리와 방금 광산에서 풀어낸 고리를 꺼냈고 서로 다른 크기의 쇠였으나 같은 문장이 찍혀 있었다.
도리아가 그것을 내려다보며 수염을 비틀었다.
“한 군데서 만든 물건이군.”
“그렇습니다.”
실바나가 붕대를 묶은 손을 멈췄다.
“광산 하나로 끝나지 않는다는 뜻입니까?”
강무진은 두 고리를 겹쳐 쥐었고 차가운 쇠가 손안에서 맞부딪치며 낮은 소리를 냈다.
“사슬은 이어져 있습니다.”
그가 광산을 돌아보자, 입구 위 바위에 새겨진 뿔 달린 탑의 문장이 저녁 그림자 속에서 검게 가라앉았다.
“끝까지 찾아가야겠습니다.”
남쪽으로 빠져나간 파수병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그자가 실어 나른 소식이 어디에 닿든, 오늘 밤 안에 누군가는 이 광산이 비었다는 것을 알게 될 터였다.
감상을 남겨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