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

제11화 흔적도 없이

제11화 흔적도 없이

그날 밤은 일찍 객잔에 들어가 쉬기로 했다.

“오늘은 여기서 묵고, 날이 밝으면 사라진 이들의 집부터 돌아보자꾸나. 실마리는 대개 사람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법이니.”

현허가 주점 문 쪽을 한 번 돌아본 뒤 먼저 계단을 올랐고, 아영도 풍의 소매를 놓지 않은 채 바짝 따라붙었다. 풍은 두 사람의 뒤를 따르면서도 몇 번이나 고개를 돌렸지만, 검붉은 기운을 두른 사내의 모습은 이미 어둠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객잔의 방은 비좁고 눅눅했다. 낡은 창호 사이로 찬바람이 스며들었으며, 벽 너머에서는 주인이 문과 창을 걸어 잠그는 소리가 연달아 들려왔다. 빗장이 내려갈 때마다 객잔 전체가 커다란 나무 궤짝으로 변하는 듯했다.

현허는 두 방 가운데 바깥쪽 방을 자신이 쓰겠다며 풍과 아영을 안쪽으로 들여보냈고 풍이 이유를 묻자 그는 문고리를 두어 번 당겨 보고는 담담히 대답했다.

“이 마을에서는 밤에 사람이 사라진다지 않더냐. 조심해서 손해 볼 것은 없느니라.”

“하지만 저는 반지도 있고…….”

“그 반지 때문에 더 조심해야 한다.”

낮게 가라앉은 말에 풍은 더 고집을 부리지 못했고 반지는 풍을 지켜 주었지만 그 힘이 언제, 어떤 식으로 튀어나올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잠든 사이 누군가 침입한다면 객잔 하나쯤 통째로 무너뜨릴지도 몰랐고, 그 안에는 아무 죄 없는 사람들도 함께 있었다.

아영은 침상에 걸터앉아 창밖을 힐끔거렸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들리자 어깨를 움찔하더니,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신발 끈만 만지작거렸다.

“무서우면 안쪽에서 자.”

풍이 말하자 아영은 곧장 고개를 들었다.

“누가 무섭대? 나는 네가 겁먹을까 봐 같이 있어 주는 거야.”

“아까 주점에서는 네가 먼저 무섭다고 했잖아.”

“그때는…… 분위기가 좀 그랬던 거고.”

아영은 입술을 삐죽였지만 창가에서는 슬그머니 멀어졌고 풍은 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으며 창호의 틈을 옷가지로 막았다. 사라진 사람들의 가족은 이런 밤을 얼마나 견뎌 왔을까 생각하니, 잠깐 가벼워졌던 마음도 금세 가라앉았다.

불을 끈 뒤에도 풍은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주점에서 마주친 젊은 사내의 서늘한 눈빛이 떠올랐고, 그 뒤를 따라 끝을 헤아릴 수 없던 검붉은 마기가 어른거렸다. 기맥을 보는 눈으로 들여다볼수록 오히려 자신이 들여다보이는 듯했던 상대는 현허를 제외하면 처음이었다.

더 이상한 것은 사내가 풍의 시선을 알아챘다는 점이었고 기운을 본다는 말을 입 밖에 내지도 않았는데 그는 곁을 스치며 정확히 경고했다. 단순히 감각이 예민한 것인지, 아니면 풍이 모르는 다른 수법이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충고라고 했지.’

정말 해칠 생각이었다면 주점에서 곧바로 칼을 뽑았을 터였고 그렇다고 호의로 받아들이기에는 목소리와 눈빛이 지나치게 차가웠다. 풍은 그의 행동을 몇 번이나 되짚어 보았으나 답을 찾지 못한 채 뒤척였다.

“단풍아.”

건너편 침상에서 아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응?”

“안 자지?”

“이제 자려고.”

잠시 침묵이 흘렀고 아영은 이불 끝을 턱밑까지 끌어올린 채 어둠 속에서 풍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일 그 집들을 돌아보면…… 사라진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까?”

“찾아야지.”

“그게 아니라, 정말 살아 있을까?”

풍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고 열 명이 넘는 사람이 비명도, 핏자국도 없이 사라졌다. 죽일 생각뿐이었다면 굳이 흔적까지 지우며 데려갈 까닭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만으로 살아 있다고 장담할 수는 없었다.

“아직 모르는 거잖아. 그러니까 살아 있다고 생각하고 찾자.”

아영은 대답 대신 이불 속에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른 숨소리가 들려왔지만, 풍은 자정이 가까워질 때까지 창밖의 기척에 귀를 기울였다. 마을은 죽은 듯 조용했으며 바람에 문풍지가 떨릴 때마다, 누군가 손톱으로 창을 긁는 소리처럼 들렸다.

밤이 깊어졌을 무렵, 객잔 뒤편에서 희미한 소리가 났다.

사박.

풍은 즉시 몸을 일으켰고 손가락의 금빛 반지는 잠잠했으나 은빛 반지의 표면을 낯선 기운이 희미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침상에서 내려온 풍은 문을 열기에 앞서 잠깐 멈췄고 홀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들었지만, 현허가 주점에서 했던 경고가 곧바로 떠올랐다.

미끼일 수 있었다.

풍은 아영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어 깨운 뒤, 입술에 손가락을 대고 맞은편 방을 가리켰고 아영은 잠기운이 남은 눈을 두어 번 깜빡였으나 풍의 굳은 표정을 보자 소리 없이 일어났다.

풍이 방문을 조심스레 두드리기도 전에 맞은편 문이 열렸고 현허는 겉옷을 갖춰 입은 채 서 있었으며, 잠에서 막 깬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눈빛이 맑았다.

“뒤뜰에서 기척이 났습니다. 은빛 반지도 잠깐 반응했고요.”

현허는 곧바로 두 사람을 계단 아래로 이끌었다. 객잔의 주인을 깨우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인 세 사람은 뒷문 곁에서 멈췄고, 문틈 너머로는 마른 풀잎이 스치는 소리만 희미하게 들려왔다.

“아영은 계단을 지켜라. 객잔 안에서 다른 기척이 나면 새 우는 소리를 두 번 내고.”

“예.”

“단풍이는 내 뒤에 붙되, 반지가 다시 움직이면 즉시 말하거라. 쫓는 것은 그다음이다.”

풍이 고개를 끄덕이자 현허가 빗장을 아주 조금 밀었고 바로 그 순간 지붕 위에서 기왓장이 달각 울렸고, 검은 그림자 하나가 맞은편 담장을 훌쩍 넘어갔다. 너무 빨라 얼굴은커녕 옷자락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지만 기맥시를 돋우자 어둠 너머로 가느다란 잔흔이 희미하게 번졌다.

검붉은빛은 아니었다.

풍은 반사적으로 발에 힘을 주었다가 멈췄고 뒤뜰을 노리는 자가 따로 있을지도 몰랐고, 계단에는 아영이 홀로 남아 있었다. 무엇보다 은빛 반지는 이미 잠잠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반응이 끊겼습니다.”

그 말에 현허도 담장으로 향하려던 몸을 돌렸다.

“따라붙기 어렵겠느냐?”

“예. 기운까지 감춘 것 같습니다.”

현허는 담장 너머를 잠시 응시하다 마당 한쪽으로 걸어갔다. 반쯤 썩은 짚단 위에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얹혀 있었고, 그것을 집으려던 현허의 손을 풍이 다급히 막았다.

“만지시면 안 됩니다.”

풍의 눈에는 검누런 기운이 돌 표면과 짚단 사이에 얇게 들러붙은 모습이 보였고 현허가 손을 거두며 물었다.

“독이냐?”

“아주 옅습니다. 돌보다 짚에 더 많이 묻어 있어요.”

현허는 소매 안에서 천 조각을 꺼내 돌을 감싸 올렸다. 이어 짚단 둘레를 살피자 마른 흙 위로 누군가 밟고 간 흔적이 드러났지만, 발자국의 앞뒤는 일부러 뭉개져 어느 방향에서 왔는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허투루 움직인 자가 아니로구나.”

현허는 천에 싼 돌을 품에 넣은 뒤 뒷문을 다시 잠갔고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지만 빗장을 확인하는 손길은 평소보다 느리고 꼼꼼했다.

계단을 지키던 아영은 두 사람이 돌아오자 짧게 숨을 내쉬었다.

“왜 깨웠느냐고 화내려 했는데, 이번에는 잘했네.”

“네가 깨우라고 했잖아.”

“앞으로도 잊지 마. 혼자 멋대로 나가면 내가 먼저 때릴 거야.”

낮게 속삭인 아영은 주먹까지 들어 보였고 현허는 두 사람을 차례로 바라보다가 목소리를 낮췄다.

“오늘 밤 저자는 우리를 살피러 왔을 가능성이 크다. 밖으로 시선을 끌고 다른 자가 객잔에 드는 수법도 있으니, 남은 밤에는 셋 모두 따로 움직이지 말거라.”

풍은 담장 너머로 사라진 그림자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는 세 사람이 노하촌에 도착한 첫날부터 움직였고, 그가 남긴 독의 잔흔은 검붉은 마기와 전혀 달랐다. 이 마을의 어둠 속에는 적어도 두 종류의 힘이 뒤얽혀 있었다.

새벽빛이 창호에 번질 무렵에야 풍은 잠깐 눈을 붙였다.

날이 완전히 밝자 세 사람은 객잔 식당 한쪽에 모여 지난밤의 일을 다시 정리했다. 현허는 짚단에 묻었던 독이 사람을 죽일 만큼 강하지는 않지만, 함부로 냄새를 맡거나 손으로 건드렸다면 잠시 몸이 굳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를 해치려 했다기보다 시험한 것 같군요.”

아영의 말에 현허가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럴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독을 알아보는지, 그림자를 보고 뒤쫓는지 확인하려 했겠지.”

풍은 손가락의 은빛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반지가 잠깐 반응한 건 독 때문이었을까요?”

“아직은 모른다. 돌에 묻은 독을 가리킨 것인지, 독을 다루는 자에게 반응한 것인지부터 밝혀야 하느니라. 다만 반응이 사라졌다는 것은 저자가 독기마저 숨길 줄 안다는 뜻일 수 있겠구나.”

현허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두 사람에게 눈짓했다.

“추측은 돌아온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우선 가장 최근에 사람이 사라진 집부터 찾아가 보자꾸나.”

객잔 밖으로 나오자 노하촌은 낮인데도 활기가 없었고 닫힌 문과 빈 골목이 이어졌고, 이따금 마주친 주민들은 낯선 세 사람을 보자 걸음을 재촉했다. 처마 밑에 앉은 노인조차 현허가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고개를 돌렸으며 장사꾼들은 물건을 늘어놓고도 손님을 부르지 않았다.

현허는 사라진 이들의 집을 하나씩 찾아다니며 남은 가족들에게 말을 붙였고 대부분은 문을 열어 주지 않았고, 틈새로 노인의 얼굴을 확인한 뒤에도 모른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밤마다 사람이 사라지는 마을에서 외지인을 믿으라고 할 수는 없었기에 세 사람은 억지로 캐묻지 않고 발길을 돌렸다.

세 번째로 찾은 집에서야 중년 사내 하나가 문을 열어 주었다. 그는 며칠째 잠을 이루지 못한 듯 눈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으며, 현허가 사라진 사람을 찾으러 왔다고 밝히자 문설주를 붙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내 아들이 없어졌소.”

사내가 안내한 방에는 펼쳐진 이불과 낡은 신발 한 켤레가 남아 있었으며 창문은 안에서 걸려 있었고 문에도 부서진 자국이 없었다. 사내는 빈 침상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갈라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녁까지 나와 밥을 먹었소. 몸이 고단하다기에 먼저 자라 했지. 한데 아침에 문을 열어 보니 이불만 남아 있더이다. 비명도 못 들었고, 개도 짖지 않았소.”

“평소 앓던 병이나 원한은 없었소?”

“그런 것 없소. 힘쓰는 일이라면 남들보다 잘했고 누구와 다툴 성미도 아니었지.”

현허가 방 안을 살피는 동안 풍도 기맥시를 끌어올렸다. 오래된 먼지와 사람의 체취 사이로 희미한 흔적들이 얽혀 있었지만, 납치자의 것이라 단정할 만한 기운은 남아 있지 않았다. 누군가 일부러 쓸어 낸 듯 지나치게 깨끗했다.

다른 집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고 모두 밤사이 사라졌으며 비명이나 몸싸움 소리는 없었고, 문과 창은 안에서 잠겨 있었다. 남은 이들이 보여 주는 것은 빈 침상과 벗어 둔 신발, 주인을 잃은 밥그릇뿐이었다.

어느 집에서는 허리가 굽은 노파가 어린 손주의 신발을 품에 안고 있었으며 노파는 세 사람을 방으로 들이지도, 사연을 길게 풀어놓지도 않았다. 다만 닳아 해진 신발을 쓸어내리며 같은 말만 거듭했다.

“겁이 많은 아이요. 혼자서는 뒷간도 못 가던 애가 제 발로 나갔을 리가 없어.”

아영은 노파 앞에 쪼그려 앉았다가 입술을 몇 번 달싹였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집을 나선 뒤에도 한동안 뒤를 돌아보던 아영은 골목을 벗어날 무렵 풍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꼭 찾아야 해.”

풍은 아영의 굳은 입매를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응. 반드시.”

그 말은 아영에게 하는 약속이면서 자신에게 하는 다짐이기도 했고 소중한 이를 잃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심정이 어떠한지 풍은 알고 있었다. 노파의 품에 안긴 작은 신발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자, 누가 이 일을 벌였든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마음이 단단해졌다.

한낮이 지나서야 세 사람은 가장 최근에 사람이 사라진 집에 도착했고 집주인은 홀로 사는 젊은 약초꾼으로, 없어진 지는 사흘밖에 되지 않았다고 했다. 지금은 먼 친척이라는 사내가 집을 지키고 있었는데, 그는 현허의 설명을 듣고 마지못해 방문을 열어 주었다.

풍은 방에 들어서는 순간 걸음을 멈췄다.

다른 곳에서는 찾지 못했던 기운이 보였고 햇빛이 닿지 않는 방구석과 침상 머리맡을 따라 탁하고 비릿한 검누런 잔흔이 실오라기처럼 떠돌았다. 너무 옅어 기맥시를 집중하지 않았다면 지나쳤을 테지만, 간밤 짚단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빛이었다.

“어르신.”

풍의 부름에 현허가 곧바로 다가왔다.

“검누런 기운이 남아 있습니다. 침상 머리맡이 가장 짙어요. 어젯밤 돌과 짚에서 본 것과 같습니다.”

현허는 눈썹을 모은 채 풍이 가리킨 곳을 살폈고 바닥에 한쪽 무릎을 댄 그는 소매에서 은침 하나를 꺼내 흙바닥을 조심스레 긁었다. 잠시 뒤 침 끝이 잿빛으로 변하자 천을 덧대 그것을 거두었다.

“독이다.”

“사람을 죽이는 독입니까?”

“아니. 이 정도 양이라면 목숨을 끊기보다 정신과 몸을 함께 잠재우는 데 쓰였을 가능성이 크다. 비명도, 몸싸움도 없었던 까닭이 이것이겠지.”

풍은 침상과 문 사이에 이어진 검누런 잔흔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독에 당한 이를 업거나 들쳐 메고 나갔다면 흔적이 더 짙어야 했으나, 문턱을 넘는 순간 기운이 갑자기 끊겨 있었다. 납치자는 독을 쓰는 데 능숙했을 뿐 아니라 자신의 흔적을 감추는 방법도 알고 있었다.

“이런 독을 쓰는 자가 많습니까?”

풍의 물음에 현허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고 은침을 감싼 천을 여러 겹 접어 품에 넣은 그는 굳게 다문 입술을 손등으로 한 번 쓸었다.

“이처럼 냄새도 색도 거의 남기지 않으면서 사람만 깊이 잠재우는 배합은 흔치 않다. 더구나 기운의 잔흔마저 지우려 했다면, 용독술을 제대로 익힌 자가 분명하겠지.”

“혹시 아시는 곳이 있습니까?”

아영이 묻자 현허는 열린 창과 방문을 차례로 확인했고 창살에는 손댄 흔적이 없었으며 문고리 안쪽에도 억지로 연 자국은 보이지 않았다.

“이십 년 전 멸문한 정파 명가가 있다. 검과 독, 암기로 이름을 떨쳤던 칠대세가의 하나, 독고세가다.”

정파라는 말에 풍은 눈을 깜빡였다. 어제 주점에서 본 사내의 검붉은 마기는 분명 마교의 것이었고, 지금 발견한 독은 정파 명가의 수법과 닮아 있었다. 어느 한쪽만 쫓으면 될 줄 알았던 길이 눈앞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듯했다.

“그럼 독고세가의 생존자가 사람들을 데려갔다는 뜻입니까?”

“아직 단정해서는 안 된다.”

현허의 대답은 단호했고 그는 변색된 은침을 넣은 품을 손바닥으로 눌러 확인하며 말을 이었다.

“수법은 훔칠 수 있고 독은 거래될 수도 있다. 누군가 멸문한 세가의 이름을 빌렸을 가능성도 버려서는 안 되느니라. 다만 이 독을 만든 자가 그 잔당이나 옛 문인과 아무 관계도 없으리라고 보기는 어렵겠지.”

풍은 방 안을 다시 둘러보았고 기맥시로 보이는 잔흔은 말이 없었고, 정인지 마인지도 알려 주지 않았다. 사람을 해치는 힘은 어느 문파의 이름을 달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누가 무엇을 위해 썼느냐에 달린 듯했다.

“어제 본 마교의 사내와 이 독이 관계가 있을까요?”

“그 또한 확인해야 한다. 마교인이 이곳에 나타난 때와 실종이 시작된 때부터 맞춰 보자꾸나.”

현허는 차분히 말했으나 방을 나서기 전 문턱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았고 주름진 눈가가 깊게 좁혀졌으며, 허리 뒤로 모은 두 손은 한동안 풀리지 않았다.

집주인의 친척에게 실종된 약초꾼의 행적을 더 묻자 뜻밖의 이야기가 나왔고 사라지기 사흘 전, 그는 장터에서 품삯이 좋은 일을 구했다며 기뻐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는 말하지 않았지만 북쪽 산자락의 장원에 약초를 나르는 일인 듯했다고 했다.

“장원의 주인이 누구인지 아십니까?”

현허의 물음에 사내는 곧장 고개를 저었다.

“모르오. 이 근방 사람들은 그저 북쪽 장원이라 부를 뿐이오. 높은 담이 둘러쳐져 있고 무사들이 지킨다는 말만 들었지, 가까이 가 본 이는 드물 것이오.”

북쪽이라는 말에 풍은 저도 모르게 은빛 반지를 내려다보았고 지금은 아무런 빛도 내지 않았지만, 예전에 독침을 남긴 감시자가 달아났을 때도 반지는 북쪽을 가리켰다. 우연이라 넘기기에는 같은 방향이 자꾸 겹쳤다.

세 사람이 집을 나왔을 때 해는 이미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지붕들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자 거리의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서둘러 문을 닫기 시작했으며, 장터의 좌판이 황급히 걷히고 골목마다 빗장 거는 소리가 이어졌다.

풍은 마을 북쪽을 바라보았다. 낮은 지붕 너머로 검푸른 산등성이가 길게 누워 있었고, 그 아래 어디엔가 높은 담으로 둘러싸인 장원이 숨어 있었다. 간밤 객잔을 살핀 자와 검누런 독, 마교의 젊은 고수까지 흩어져 있던 흔적들이 모두 그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듯했다.

그때 은빛 반지가 아주 희미하게 떨렸다.

풍은 이번에는 망설이지 않았다.

“어르신, 아영아. 반지가 북쪽에 반응해.”

현허는 즉시 북쪽 골목과 객잔 방향을 번갈아 살폈다.

“반응이 사라지기 전에 움직인다. 단풍이는 길을 짚고, 아영은 뒤를 살펴라. 나는 너희 둘 사이에서 기척을 막으마. 누구든 이상을 느끼면 혼자 쫓지 말고 즉시 알리거라.”

세 사람이 나란히 움직이기 시작한 순간, 북쪽 골목 끝으로 검붉은 옷자락 하나가 소리 없이 스쳐 갔다.

노하촌의 두 번째 밤은 그자를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

회차 끝 11

ReNovels · 한 회차씩, 이야기 속으로.

회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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