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밝기 전, 치료소의 화로가 먼저 달아올랐다.
의식을 잃었던 세 사람은 밤을 넘겼다. 인간 자경대원 둘과 엘프 궁수 하나가 나란히 누워 있었는데, 숨은 여전히 얕았지만 끊어지지 않았다.
실바나가 상처에 붙은 천을 떼어 내자 쇠뇌 화살이 관통한 엘프 궁수의 어깨 안쪽에서 말려 들어간 갑옷 조각이 피와 함께 드러났다. 강무진은 집게 끝을 손가락으로 짚었고, 금속의 위치와 기울기가 살갗 너머로 전해졌다.
“움직이지 마십시오.”
그는 조각을 곧장 당기지 않았다. 비틀린 결을 먼저 펴면서 살을 더 찢지 않도록 들어온 각도 그대로 밀어내자, 손끝에 걸리던 저항이 사라졌다. 그 순간 집게를 당기니 검붉은 쇳조각이 빠져나왔다.
실바나가 곧바로 상처를 눌렀고 정령술의 옅은 빛이 손가락 사이로 번졌다. 잠시 뒤 엘프 궁수의 가쁜 숨이 조금 길어지자, 강무진은 꺼낸 조각을 물통에 떨어뜨렸다.
치익.
아이샤는 옆에서 피 묻은 가위와 집게를 닦고 있었다.
“이것도 다시 써요?”
“삶아서 쓴다.”
“부러진 건?”
아이가 침상 아래 놓인 화살촉 제거용 집게를 가리켰다. 손잡이 한쪽에 금이 가 있었다.
“녹이면 다시 쓸 수 있다.”
아이샤는 그것을 버리는 통이 아니라 쇳조각 통에 넣었다.
해가 떠오르자 강철보루는 승리의 흔적부터 해체했다. 적의 공성추는 방벽 보강재로, 갑옷 조각은 무기와 쇠사슬 고정쇠와 못으로 갈렸다. 불순물이 많은 쇠는 따로 밀어냈고, 붉은 합금만 분석용으로 남겼다.
밤새 돌린 화로 안벽에는 균열이 번져 있었다. 도리아가 사흘 안에 내려앉는다고 경고하자 강무진은 불을 끄는 대신 보조벽과 여섯 줄 죔쇠로 압력을 나눴다. 그들이 첫 죔쇠를 달굴 때 로젠이 부상당한 팔로 거주자 명부를 가져왔다.
“어제 백일흔여섯, 오늘 새벽 피난민 열둘이 더 들어왔습니다. 다음 공격 전에 누가 싸우고, 누가 물과 식량을 맡으며, 다치면 어느 가족을 찾아야 하는지 정해야 합니다.”
북쪽 정찰조가 발견한 빈 야영지에는 수레 자국이 적었다. 가까운 보급지가 있다는 뜻이었고, 로젠은 해가 지기 전 명부와 거주 구획, 화재 순환로를 함께 확정하겠다고 했다.
강무진은 화로와 집 사이를 벌리고 수레 두 대가 지날 길을 내게 했다. 정오 전 주민들이 긴 탁자에 줄을 섰고, 아이샤도 이름을 올렸다. 종족을 묻는 칸에서 아이가 멈추자 로젠은 빈칸으로 남겨도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아이샤는 검댕 묻은 엄지로 자기 이름 아래를 눌렀다. 작은 지문을 로젠은 닦지 않았다.
해 질 무렵 북동 방벽은 한 자 높아졌고 화로 보조벽도 닫혔다. 적 방패의 철띠가 흙벽 안쪽 충격을 나눴으며, 명부를 넣은 상자에는 강무진의 자물쇠가 걸렸다.
딸깍.
그날 밤, 황무지 북쪽에서 금속 하나가 다가왔다.
말 한 필과 기수 하나였다. 검 한 자루와 갑옷의 버클, 말 재갈이 느껴졌는데 무장은 가벼웠고 속도도 빠르지 않았다.
잠시 뒤 어둠 속에서 흰 천을 묶은 창이 나타났다.
기수는 화살 한 사거리 밖에 멈춰 봉인된 두루마리를 땅에 놓았다.
“남부 대상단에서 전하는 물건이다.”
“누가 보냈지?”
로젠이 물었다.
“모른다. 북쪽 길에서 돈을 받고 받아 왔다.”
기수는 곧바로 말을 돌렸고, 두루마리는 긴 갈고리로 끌어왔다.
봉인은 검붉은 금속이었다.
세 갈래 뿔을 감싼 왕관.
강무진이 화로에 던졌던 붉은 쇠못과 같은 문양이었다.
그가 손가락을 가까이 대자 금속 안쪽의 미세한 홈이 감각에 걸렸다. 억지로 부수면 독침이 튀어나오는 구조였다.
“손대지 마십시오.”
강무진이 금속의 결을 잡자 봉인이 소리 없이 벌어졌고, 가느다란 침은 힘을 잃은 채 종이 위로 떨어졌다. 끝에는 푸른 액체가 묻어 있었다.
두루마리에는 짧은 명령이 적혀 있었다.
강철보루를 북부 정복 계획의 최우선 제거 대상으로 지정한다.
회수 가능한 노동력은 분류하고, 저항 자원은 폐기한다.
전면 동원령에 따라 집결하라.
아래에는 이름이 있었다.
마계 침공군 장군, 그리모어 바르가스.
라칸이 방패 가장자리를 움켜쥐자 금속이 짧게 삐걱거렸다.
실바나는 말하지 않았으나 활을 쥔 손가락이 아주 조금 떨렸다.
“사람을 자원이라 적어 놨군.”
도리아가 낮게 말했다.
로젠은 명령서를 다시 살폈다.
“일부러 흘렸을 가능성이 큽니다. 겁을 주거나 내부를 흔들려는 목적일 겁니다.”
“내용은 거짓인가?”
라칸이 물었다.
“거짓이라면 독침까지 넣을 이유가 적습니다.”
강무진은 붉은 봉인을 집었다.
금속 안에는 한 번에 수백 개를 찍어 낸 응력이 남아 있었다. 같은 틀과 같은 합금, 같은 두께로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명령은 이미 여러 부대로 퍼지고 있었다.
그날 밤부터 북쪽 봉화가 차례로 올랐다. 전진 정찰조가 보낸 목판에는 갑옷과 창을 실은 수레, 공성 장비용 쇠사슬이 같은 남쪽 길로 모인다는 표시가 겹쳐 있었다.
목적지는 강철보루였다.
강무진은 봉인을 손안에서 구겼다.
“명부를 완성하십시오.”
로젠이 자세를 바로 했다.
“방벽과 창고의 재배치안도 준비하겠습니다. 병력을 늘리는 방안과 현재 인원으로 버티는 방안, 둘 다 올리겠습니다.”
“둘 다 필요합니다.”
강무진은 도리아를 보았다.
“화로도 늘립니다.”
“지금 것도 밤낮없이 먹여 살리고 있네.”
“그래서 늘리는 겁니다.”
“몇 기나?”
“쓸 사람이 있는 만큼.”
도리아의 눈에서 피로가 걷혔다.
“크흠. 땅부터 다시 봐야겠군.”
라칸이 낮게 말했다.
“사람도 모자랍니다.”
“모으십시오.”
“싸울 줄 모르는 피난민들뿐이야.”
“가르치면 됩니다.”
“시간이 없으면?”
강무진은 북쪽을 바라보았다.
목소리를 높일 필요는 없었다. 화가 날수록 할 말은 줄었다.
“있는 시간 안에 끝낸다.”
그는 처음 터를 잡던 날 쇠못을 박은 주춧돌로 걸어갔다. 이제 그 못을 중심으로 길이 뻗었고 집이 들어섰으며, 이름을 적은 명부도 생겼다.
강무진은 작은 정을 꺼내 주춧돌 옆면에 한 글자씩 새겼다.
강철보루.
정 끝이 돌을 칠 때마다 진동이 손끝으로 올라왔다. 너무 세게 치면 돌결이 깨졌고 약하면 글자가 남지 않았는데, 검에 이름을 새길 때와 다르지 않았다.
마지막 획 아래에는 자신의 작은 각인을 남겼다.
도구는 망가지면 고치면 됐다. 집도 무너지면 다시 세우면 됐다.
그러나 그 안에 사는 사람은 그럴 수 없었다.
만드는 자가 재료만 살피고 쓰일 곳을 외면한다면, 그것은 완성한 물건이 아니었다.
강무진은 망치를 내려놓지 않았다.
“쇠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그리모어의 명령서가 화로 속에서 검게 오그라들었다.
“오는 놈들 수만큼 준비하십시오.”
북쪽의 쇠가 움직였다.
이번에는 강철보루의 둘레를 재는 움직임이 아니었다.
전쟁이 길을 나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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