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대회 둘째 날, 풍의 이름은 이미 연무장 곳곳에서 회자되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참가패를 확인하던 집법관조차 이름을 되물었으나, 이제는 풍이 관중석 아래를 지날 때마다 수군거림이 먼저 따라붙었다. 청성의 쾌검을 맨손으로 꺾었다는 말은 그나마 사실에 가까웠고, 비무대 끝까지 일부러 물러나 상대를 농락했다거나 검이 닿기 전에 검로를 알아맞힌다는 이야기도 들려왔다. 누군가는 깊은 산에 숨어 살던 기인의 제자라 했으며, 이름을 숨긴 세가의 자식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풍에게는 어느 것도 제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았고 전날 그는 비무대 밖으로 떨어지기 직전까지 몰렸으며, 청성 제자의 유도를 알아챈 것도 늦어서였다. 그런데 하룻밤이 지나자 강호의 입은 그 위태로웠던 시간을 모조리 지우고 마지막 한 수만 남겨 놓았다.
“형씨, 북문 쪽 객잔에서는 청성 검객이 열두 번이나 검을 휘둘렀는데 옷깃 하나 못 건드렸다고 합디다.”
막동이 아침부터 주워 온 소문을 풀어놓자 아영이 눈을 흘겼다.
“그걸 세어 본 사람이 있대?”
“세어 본 자는 없지. 그러니 열두 번이 열여덟 번 되기 전에 내가 먼저 알려 주는 것 아니오.”
“네가 옮기면 스무 번이 되겠네.”
막동은 억울하다는 듯 입을 다물었지만, 풍을 바라보는 눈에는 웃음기가 가득했고 풍도 피식 웃으려다가 관중석 윗줄에서 자신을 살피는 몇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무복의 문양은 서로 달랐으나 하나같이 비무대보다 풍 쪽을 오래 보고 있었다.
이름이 퍼지면 감추고 싶은 것까지 주목받는다는 현허의 경고가 떠올랐고 풍은 왼쪽 옷깃으로 향하려던 손을 자연스럽게 내렸다. 베낀 장부 조각은 아영이 새벽에 다시 꿰매 두어 실밥조차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문제는 물건이 아니라 그것을 지키려는 제 몸의 버릇이었다.
현허가 곁눈질하며 말했다.
“오늘 상대는 어제의 승부를 보고 올라올 게다.”
“제가 물러난 길도 보았겠지요?”
“보았다면 이용할 테고, 보지 못했다면 소문을 믿겠지. 어느 쪽이든 어제와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한 번 보여 준 수는 더는 풍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그가 청성 제자의 검을 어떻게 피했고 어느 순간 안으로 파고들었는지, 눈 밝은 이들은 밤새 되짚었을 터였다.
둘째 날 대진이 붙자 연무장 앞이 크게 술렁였고 풍의 이름 맞은편에는 점창파 일대제자 유상백이 적혀 있었다. 전날 세 번의 비무에서 한 번도 상대에게 가까운 거리를 허락하지 않은 검수로, 검영을 겹쳐 퇴로를 흐리는 변초에 능하다는 평이 뒤따랐다.
막동이 대진표를 올려다보며 입맛을 다셨다.
“점창의 사일검법이라. 저쪽도 형씨를 편히 두지는 않겠구려.”
유상백은 대진표 앞에서도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사제 하나와 비무대의 폭을 손짓으로 재면서 간간이 풍의 발을 바라보았고, 사제가 바닥에 그리는 선에는 전날 풍이 물러난 방향과 마지막에 파고든 자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영이 낮게 말했다.
“소문만 들은 게 아니야. 어제 승부를 통째로 외웠나 봐.”
풍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산에서는 같은 비탈과 바위도 계절에 따라 다른 길을 냈듯, 강호의 무인도 한 번 본 것을 기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다음 싸움에 맞게 바꾸고 있었다.
풍의 차례는 정오를 조금 넘겨 돌아왔다.
두 사람이 비무대에 오르자 관중석의 소리가 한층 높아졌다. 유상백은 마른 체격에 팔이 길었으며, 검을 세워 예를 갖춘 뒤에도 시선은 풍의 얼굴보다 양발 사이에 머물렀다.
“청성의 사형과 겨룬 승부를 보았소.”
“저도 소협의 비무를 보았습니다.”
“그러면 서로 아는 만큼 속이기 어렵겠군.”
말투에는 적의도 허세도 없었고 그 담담함 때문에 풍은 오히려 긴장했다. 유상백은 자신이 무엇을 보았는지 숨기지 않았고, 알면서도 막을 수 있다고 여기는 듯했다.
심판의 손이 내려갔다.
유상백의 첫 검은 예상보다 느렸다. 검끝이 목을 겨누는 동안 왼쪽으로 반걸음 움직여 비무대 중앙을 비워 주었고, 풍이 오른쪽으로 빠지자 따라붙지 않은 채 검을 되감았다. 두 번째 검도 깊지 않았으며 세 번째에는 검영이 둘로 갈렸지만 어느 쪽에도 힘이 온전히 실리지 않았다.
세 차례를 피한 뒤에야 풍은 상대가 공격보다 거리를 재고 있음을 깨달았고 유상백은 풍이 검끝에서 얼마나 떨어져 움직이는지, 찌르기와 베기에 어느 발부터 빼는지를 확인하고 있었다.
네 번째 검부터 간격이 달라졌다.
검영이 얼굴 앞에서 세 갈래로 흩어졌고, 풍이 왼쪽으로 비키려는 순간 유상백의 발이 미리 그 자리를 밟았다. 어깨를 낮추고 안으로 파고들 길에는 검자루가 놓였으며, 뒤로 물러날 만한 곳에는 반 박자 늦은 검끝이 따라왔다. 어느 하나가 치명적인 수는 아니었으나 모든 길이 조금씩 좁아졌다.
풍은 억지로 안쪽을 뚫지 않았고 전날의 마지막 수를 기다리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실제로 몸을 한 번 낮추자 유상백의 팔꿈치가 즉시 붙으며 검자루 끝이 쇄골을 겨눴고, 조금만 깊이 들어갔다면 검보다 먼저 그 일격에 막혔을 터였다.
몸을 틀어 검자루를 피한 풍은 두 걸음 물러났고 발뒤꿈치에 비무대의 거친 돌가루가 밟히자 관중석에서는 탄식과 환호가 한꺼번에 터졌다. 어제처럼 끝으로 몰린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유상백은 안전해 보이는 한 길로 풍을 몰지 않았고 오른쪽을 열었다가 닫고, 왼쪽을 막았다가 반걸음 내주면서 익숙한 간격을 유지하지 못하게 했다. 한 자루의 검이 여러 갈래로 보이는 까닭도 검끝이 빠르기 때문만은 아니었고 앞선 검이 시선을 붙드는 사이 다음 변화가 이미 다른 거리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풍은 눈에 기를 끌어올리고 싶은 충동을 눌렀다. 기맥시를 깊이 열면 검영 속 흐름을 더 빨리 찾을 수 있겠지만, 수많은 시선이 몰린 자리에서 드러낼 수는 없었다. 무엇보다 보인다고 해서 곧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제는 상대의 의도를 늦게 알아챘고, 오늘은 상대가 풍의 반응을 먼저 헤아리는 중이었다.
사일검법의 연속 변초가 거듭 밀려왔다. 위에서 떨어지는 검을 피해 옆으로 빠지자 허리를 노리는 횡베기가 이어졌으며, 거리를 벌리면 검끝이 둥글게 돌아 발목 앞을 가로막았다. 유상백은 한 번에 제압하려는 욕심 없이 쉴 틈을 주지 않았고, 그 침착함 때문에 검은 더욱 끈질겼다.
풍은 반격할 기회가 보여도 손을 내밀지 않았고 일부러 남겨 둔 거리인지 판단할 수 없었고, 섣불리 잡으려다 왼쪽 옷깃이 검로에 걸릴 위험도 있었다. 대신 비무대 네 모서리와 상대의 보폭을 머릿속에 담으며 호흡이 흐트러지지 않을 만큼만 움직였다.
다섯 번.
유상백이 검영을 겹쳐 몰아붙일 때마다 다섯 번째 변화 뒤에는 아주 짧은 틈이 생겼고 다만 처음의 틈에서는 검이 낮게 되돌아왔고, 두 번째에는 검자루가 풍의 손등을 노렸다. 같은 다섯 번째라도 끝은 달랐다.
풍은 세 번째 연속 변초까지 기다렸다.
팔이 아파 오고 숨도 전보다 거칠어졌지만 유상백 역시 처음과 같지는 않았고 검영의 수는 줄지 않았어도 네 번째에서 다섯 번째로 넘어가는 순간마다 소매가 아주 조금 늦게 따라왔다. 손목 때문인지, 어깨 때문인지, 아니면 길어진 호흡 탓인지는 알 수 없었고 다만 화려한 검끝 바깥 어딘가에서 다음 변화의 빠르기를 정하는 흔적이 있다는 느낌만 희미하게 남았다.
짐작만으로 파고들 수는 없었다.
풍은 유상백의 변화를 앞서 읽는 대신 마지막 검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버티기로 했고 그러려면 비무대 끝까지 몰리지 않을 만큼 거리를 남기고, 눈앞의 검영에 끌려 보폭을 키우지 않아야 했다.
네 번째 연속 변초가 시작됐다.
첫 검이 관자놀이 위를 스쳤고 두 번째가 가슴 앞을 갈랐고 풍은 상체만 젖혀 검끝을 흘리며 발을 반 뼘 옮겼다. 세 번째 검에 소매가 크게 부풀었지만 허상을 쫓지 않았고, 네 번째 찌르기가 들어오자 비로소 오른발을 비스듬히 뺐다.
다섯 번째.
유상백의 검이 낮게 돌아 퇴로를 끊었고 전날 풍이 안으로 파고들었던 바로 그 모양을 기다린 수였다. 검자루가 붙고 팔꿈치가 닫히면서 가까이 들어오는 상대를 밀어낼 준비까지 갖춰졌다.
풍은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발끝을 세워 검이 돌아오는 거리만큼 뒤로 물러났다. 유상백의 검끝이 옷자락 앞에서 멎었으나, 이미 다섯 변화에 힘을 나누어 쓴 검은 여섯 번째를 곧장 만들지 못했다.
아주 짧은 정지였다.
풍은 그 순간 검의 안쪽이 아니라 바깥쪽을 돌아 유상백의 옆으로 붙었고 상대가 급히 검을 되감으려 했지만 풍은 검을 잡지 않고 어깨로 팔을 가볍게 밀며 발을 걸었다. 한창 검을 거두던 유상백의 무게가 옆으로 쏠렸다.
유상백은 비무대 밖으로 떨어지기 직전 허리를 비틀어 버텼고 하지만 균형을 되찾으려면 검을 놓거나 풍에게 등을 보여야 했다. 풍은 그의 등이 돌아가기 전에 견갑 가까이에 손바닥을 댄 채 멈췄다.
잠깐의 침묵이 내려앉았다.
유상백은 발끝 아래의 경계선과 풍의 손을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검을 내렸다.
“졌소.”
심판이 풍의 승리를 선언하자 연무장이 뒤늦게 들끓었고 전날처럼 극적인 제압은 아니었으나 누구도 우연이라 말하기 어려운 승부였다. 풍은 점창의 검영을 견디며 거리를 내주지 않았고, 상대가 준비한 함정을 피해 연속 변초가 끝나는 순간을 골라냈다.
풍은 환호보다 먼저 제 호흡을 살폈고 팔과 종아리가 묵직하고 등에는 식은땀이 흘렀으나 상처는 없었으며, 왼쪽 옷깃도 온전했다.
유상백이 검을 거두며 말했다.
“그대가 어제와 같은 길로 들어올 거라 생각했소.”
“저도 그럴 뻔했습니다.”
“내 검을 모두 읽은 것은 아니었군.”
풍은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몇 번은 어디로 가는지 끝까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끝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유상백의 입가에 엷은 웃음이 번졌다.
“그게 더 고약하군. 모르는 걸 아는 척하지 않는 자는 꾀어 내기가 어려우니.”
두 사람은 포권을 나눴다. 풍은 비무대를 내려오면서도 조금 전의 다섯 번째 변화를 떠올렸지만, 검끝 바깥에서 느낀 미세한 늦음은 붙잡으려 할수록 흐려졌다.
아영이 물병을 건넸다.
“다친 데는?”
“없어. 조금 지쳤을 뿐이야.”
막동은 감탄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보는 나까지 안으로 들어가라 외칠 뻔했소. 형씨는 대체 어찌 참았소?”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았어.”
“그게 이유의 전부요?”
“응.”
막동이 허탈하게 웃자 현허가 풍의 호흡을 살피며 말했다.
“끝까지 보지 못했기에 끝날 때를 기다린 판단은 옳았다. 다만 오늘 느낀 것을 억지로 답이라 여기지는 마라.”
풍은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그때 접힌 부채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제갈소소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서 있었으며 풍과 눈이 마주치자 사람들이 덜 지나는 회랑 쪽을 부채 끝으로 가리켰다.
“잠시 이야기해도 될까요?”
아영이 풍보다 먼저 물었다.
“무슨 일로요?”
“대회 집법관의 조사는 아닙니다. 단 공자에게 알려 드릴 것이 있어요.”
풍이 고개를 끄덕이자 아영도 함께 회랑으로 따라왔고 제갈소소는 이를 문제 삼지 않은 채 주변을 한 차례 살핀 뒤 목소리를 낮췄다.
“등록 심사 때 소지품 이야기가 나오자 단 공자는 왼쪽을 반걸음 뒤로 뺐어요. 어제는 청성 제자의 검이 왼쪽 옷깃으로 향할 때마다 보폭이 커졌고, 오늘은 그쪽에 검이 닿을 만하면 반격을 포기했고요.”
풍의 가슴이 서늘해졌고 장부의 존재까지 안다는 말은 아니었으나, 지키는 물건이 있다는 데까지는 닿은 셈이었다.
아영이 차갑게 물었다.
“그래서 풍이 뭘 숨겼다고 생각하나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것도 없고, 단 공자가 손으로 확인한 적도 없으니까요.”
제갈소소는 추측을 사실처럼 말하지 않았다. 그래서 풍은 더욱 경계할 수밖에 없었고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사람은 엉뚱한 단서에 쉽게 매달리지 않을 터였다.
“왜 그 이야기를 저희에게 알려 주는 겁니까?”
“제가 알아차렸다면 다른 사람도 알아차렸을 수 있으니까요.”
제갈소소가 부채를 접으며 원로석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제 단 공자의 승부가 끝난 뒤, 비무대가 아니라 당신만 따라간 시선이 셋 있었습니다. 하나는 동쪽 문파석, 다른 하나는 집법관 통로 가까이였고, 마지막 하나는 원로석 뒤편이었어요. 앞의 둘은 배정석을 확인할 수 있지만 원로석 뒤편은 좌석의 주인을 아직 알지 못했습니다.”
송진이 전날 훑어보던 자리들이 떠올랐다. 우연히 유명해진 참가자를 지켜본 것일 수도 있었으나, 셋 모두 승부가 끝난 뒤까지 풍만 따라갔다면 그냥 넘길 수 없었다.
“그 사람들을 알아봐 주실 수 있습니까?”
“확인된 것까지만 알려 드리지요. 대신 단 공자도 대회 중 수상한 움직임을 발견하면 제게 전해 주세요. 무엇을 찾는지 밝힐 필요는 없습니다.”
아영이 물었다.
“우리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는다는 보장은요?”
“지금은 드릴 수 없어요. 저도 두 분을 아직 믿지 못하니까.”
뜻밖에도 솔직한 대답이었고 아영은 마음에 들지 않는 듯 입술을 다물었으나 더 몰아세우지는 않았다.
풍은 잠시 생각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확인된 사실만 주고받겠습니다. 추측은 추측이라고 밝혀 주시고요.”
“좋아요.”
제갈소소는 더 캐묻지 않았고 돌아서기 직전 그녀의 시선이 풍의 왼쪽 옷깃에 한 번 닿았다가 떨어졌다. 그 짧은 움직임만으로도 장부 조각의 무게가 갑자기 몇 배는 무거워진 듯했다.
제갈소소가 사라지자 아영이 낮게 말했다.
“원로석 뒤편이라면 송진 아저씨가 살핀 자리와 겹치는지 확인해야 해.”
“응. 셋이 서로 같은 편인지도 알아봐야 하고.”
두 사람이 막동에게 돌아가려는 순간, 앞쪽에서 흰 무복을 입은 남궁휘가 다가왔고 그의 뒤를 따르던 세가 자제 둘은 손짓 하나에 멈췄고, 남궁휘는 풍의 앞에 홀로 섰다.
“오늘 승부는 보았다.”
풍이 포권했으나 남궁휘는 형식적인 인사보다 본론을 먼저 꺼냈다.
“점창의 검이 끝날 때까지 버텼더군. 네가 무엇을 기다리는지도 알겠다.”
그는 검집을 엄지로 밀었다가 놓았고 철컥, 짧은 소리가 회랑의 웅성거림을 갈랐다.
“다음에 만나면 네가 안전하다고 여기는 거리부터 지우겠다.”
풍의 시선이 검집으로 향했다.
“멀리 물러나도 검이 닿고, 가까이 들어와도 시작을 잡을 수 없게 만들지. 검이 어디서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네 눈으로 구분할 수 없도록.”
남궁휘의 목소리에는 허세가 없었다. 풍이 준비할 시간을 가진 뒤에도 꺾을 수 있다는 확신만이 선명했고, 그 때문에 위협은 더욱 무겁게 다가왔다.
“그럼 저도 다른 걸 봐야겠군요.”
“무엇을 볼 셈이지?”
풍은 잠시 생각했으나 꾸며 낼 답이 없었다.
“아직 모릅니다.”
남궁휘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고 비웃을 줄 알았지만 그는 오히려 풍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몸을 돌렸다.
“좋다. 모르는 채로 올라와라. 비무대에서 답을 찾을 시간이 있는지 보겠다.”
오후의 비무가 모두 끝날 무렵 남은 참가자는 여덟 명으로 줄었다. 화산파의 매화검수와 사천당가의 무인, 제갈소소를 비롯한 이름난 후기지수들 사이에 풍의 이름도 걸렸으며, 변변한 문파의 표식 하나 없는 이름은 그뿐이었다.
새 대진표가 붙자 사람들의 목소리가 담장을 울렸다.
단풍과 남궁휘.
막동이 두 이름을 손가락으로 짚으며 휘파람을 삼켰다.
“대회 쪽에서도 사람들이 원하는 승부를 미룰 생각은 없는 모양이오.”
풍은 대진표 앞에 모인 이들을 바라보았고 두 번의 승리로 커진 관심 속에는 단순한 호기심만 있지 않았다. 왼쪽 옷깃을 살핀 제갈소소, 승부가 끝난 뒤에도 뒤따랐다는 세 시선, 아직 주인을 알 수 없는 원로석 뒤편의 자리까지 떠올리자 비무대 바깥에서도 보이지 않는 겨룸이 시작된 듯했다.
그러나 내일 검을 맞댈 상대는 분명했다.
객잔으로 돌아온 뒤 풍은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눈을 감으면 청성 제자가 열어 놓았던 퇴로와 점창 제자의 겹친 검영이 지나갔고, 마지막에는 남궁휘가 세 수 동안 거의 아무것도 내보이지 않은 검이 떠올랐다.
빼어난 검이었다. 다만 검끝 바깥에서 한순간 어긋난 듯한 흔적이 있었고, 그것이 빈틈인지 다음 변화를 고르는 반응의 단서인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풍은 눈을 감은 채 그 짧은 흔적을 몇 번이고 되짚었고 답은 잡히지 않았으나, 내일 비무대에서 무엇을 더 보아야 하는지만은 선명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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