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

제24화 검재(劍才)

마침내 풍과 남궁휘의 이름이 나란히 호명되었다.

웅성거리던 연무장이 삽시간에 뜨겁게 달아올랐고 명문 남궁세가가 자랑하는 검재와 사문패조차 없이 예비 심사를 거쳐 올라온 소년. 한쪽에서는 남궁휘의 승리를 당연하게 여겼고, 다른 쪽에서는 두 번이나 예상을 뒤엎은 풍이 이번에도 무언가를 보여 주리라 기대했다. 서로 다른 목소리가 비무대를 사이에 두고 맞부딪치자, 그 울림이 발밑의 돌판을 타고 올라오는 듯했다.

풍은 비무대에 오르며 왼쪽 옷깃을 한 번 눌렀고 안쪽에 꿰매 둔 장부 조각은 그대로였다. 오늘은 그것을 지키려는 움직임마저 감춰야 했다. 남궁휘는 이미 풍이 회피할 때 남겨 두는 거리와 보폭의 변화를 알아차렸고, 눈 밝은 자들이 옷깃까지 살폈을 수 있다는 현허의 경고도 잊을 수 없었다.

맞은편에 선 남궁휘는 흰 무복 차림이었고 허리에는 장식이 거의 없는 장검이 걸려 있었고, 어제처럼 그 뒤를 따르는 세가 자제들은 보이지 않았다. 혼자 비무대에 오른 그는 풍을 위아래로 훑는 대신 곧장 눈을 마주 보았다.

“어젯밤에 답을 찾았나?”

풍은 솔직하게 고개를 저었다.

“확실한 답은 못 찾았습니다.”

“그런데도 올라왔군.”

“올라와야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남궁휘의 입가가 아주 조금 움직였고 비웃음이라기보다는 마음에 드는 대답을 들은 사람의 표정에 가까웠으나, 그는 더 말하지 않고 검을 뽑았다. 매끈한 검신이 햇빛을 받아 희게 번뜩였고, 그 순간 비무대 바깥의 소란이 한 겹 멀어졌다.

풍은 두 손을 자연스럽게 내린 채 숨을 골랐고 남궁휘의 검을 보면서도 머릿속에는 전날 점창 제자가 펼쳤던 연속 변초가 떠올랐다. 검끝 바깥에서 먼저 달라지던 무엇. 알아보려 할수록 희미해졌고, 억지로 이름을 붙이면 엉뚱한 답이 될 것만 같았던 흔적이었다.

심판이 두 사람을 번갈아 확인한 뒤 손을 내렸다.

“시작!”

남궁휘가 첫발을 내디뎠다.

검이 뽑혀 나온 순간과 찔러 드는 순간 사이에 틈이 없었고 창궁검법의 첫 수는 하늘을 가르는 듯 곧았으며, 빠르면서도 가볍지 않았다. 검풍이 풍의 뺨을 누르는 가운데 검끝은 목과 어깨 사이를 정확히 노렸다.

풍은 반걸음 비켜섰고 너무 멀리 물러나면 다음 수에 쫓기고, 가까이 남으면 검이 꺾이는 순간 대응하기 어려웠다. 검끝이 옷깃 앞을 스쳐 지나가자 그는 오른발을 돌려 남궁휘의 바깥쪽으로 빠지려 했다.

하지만 남궁휘의 검이 먼저 길을 막았다.

첫 찌르기의 힘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검신이 옆으로 누우며 풍의 가슴 앞을 쓸었다. 풍은 허리를 젖혀 피했으나 세 번째 검이 아래에서 솟구쳤고, 뒤이어 떨어진 검광은 물러날 자리까지 덮었다. 각각의 초식은 분명 이어져 있었지만 어느 하나도 앞선 수에 끌려가지 않았고 끊을 수도, 끝났다고 단정할 수도 없는 변화였다.

풍은 세 걸음을 물러난 뒤 옆으로 움직였고 그러자 남궁휘도 보폭을 줄였다. 검이 짧아진 대신 간격이 좁혀졌고, 풍이 다시 반걸음을 빼자 이번에는 검끝이 길게 뻗었다.

어제 회랑에서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안전하다고 여기는 간격부터 지우겠다.

남궁휘는 말한 대로 하고 있었으며 풍이 넓게 피하면 길게 찔렀고, 보폭을 줄이면 검을 거두어 가까운 변화를 겹쳤다. 같은 거리에서도 검은 짧아졌다가 길어졌으며, 공격이 끝난 듯 멎는 순간조차 다음 검을 위한 시작으로 바뀌었다. 풍은 남궁휘의 검로를 놓치지 않았는데도 발을 둘 곳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느꼈다.

검을 미리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했고 알맞은 자리에 먼저 가 있어야 피할 수 있는데, 남궁휘는 그 알맞은 자리를 계속 바꾸고 있었다.

풍은 비무대 가장자리를 의식하며 왼쪽으로 몸을 틀었고 관중의 함성이 한꺼번에 높아졌고, 남궁휘의 검이 그 소리를 가르며 쇄도했다. 가슴을 찌르는 일검이었고 곧고 빨랐지만 앞선 공격보다 단순해 보였기에, 오히려 뒤의 변화가 숨겨져 있을 터였다.

풍은 검끝을 바라보며 오른쪽으로 빠졌다.

그 순간 찌르기가 멈췄다.

남궁휘의 손목이 꺾이며 검이 옆으로 흘렀고, 곧장 풍의 옆구리를 베어 왔고 처음부터 그곳을 노렸다고 하기에는 너무 자연스러운 변화였다. 풍이 피할 방향을 확인한 뒤에도 충분히 바꿀 수 있을 만큼 출발이 같았다.

풍은 다급히 허리를 비틀었다.

스윽.

얇은 소리와 함께 옷자락이 길게 갈라졌고 잘린 천 조각이 바람에 흔들리다 돌판 위로 떨어졌고, 서늘한 검풍이 옆구리의 살갗을 훑고 지나갔다. 조금만 늦었으면 천이 아니라 몸이 베였을 터였다.

대회에 출전한 뒤 처음으로 검이 몸에 닿을 뻔했다.

풍은 두 걸음 물러나 자세를 바로잡았고 다친 곳은 없었다. 장부 조각이 숨겨진 왼쪽 옷깃도 무사했지만, 등 뒤로 식은땀이 흘렀다. 관중석의 소리는 더욱 커졌고 그 안에서 누군가 남궁세가의 이름을 외쳤으나, 풍에게는 먼 파도처럼 들릴 뿐이었다.

남궁휘가 검끝을 내린 채 말했다.

“네가 피할 곳을 보고 검을 바꾼 게 아니다.”

숨을 고르던 풍이 그를 바라보았다.

“허초와 진초를 나누지 않았다. 네가 움직이기 전까지는 어느 쪽도 될 수 있게 만든 거지. 그러니 검끝을 아무리 오래 본들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 말에는 승기를 잡았다는 들뜸이 없었고 남궁휘는 자신이 준비한 시험이 통했다는 사실만 확인하듯 차분했다. 풍은 오히려 그 태도에서 더 큰 압박을 느꼈고 한 번 속인 수로 뽐낼 생각이 없는 자라면, 같은 원리를 다른 변화에도 겹쳐 놓았을 것이다.

“그래도 계속 볼 셈인가?”

풍은 잘린 옷자락을 한 번 내려다본 뒤 대답했다.

“예. 아직 못 본 게 있으니까요.”

남궁휘가 다시 움직였다.

이번에는 검광이 셋으로 갈라지는 듯했고 위에서 떨어지는 검과 옆구리를 가르는 검, 곧장 가슴을 찌르는 검이 거의 같은 순간에 겹쳤다. 풍은 첫 수를 비껴 내고 둘째를 숙여 피했지만, 셋째를 피해 물러나는 순간 처음의 검이 되살아나 퇴로를 가로막았다.

남궁휘는 허초와 진초를 번갈아 쓰지 않았다. 진초가 빗나가면 그것을 다음 허초로 삼았고, 허초에 풍이 반응하지 않으면 그대로 살을 벨 진초로 바꾸었다. 어느 쪽을 고르더라도 틀리지 않게 검을 운용하고 있었으니, 풍이 검끝에서 진위를 가리려 할수록 판단은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풍은 팔을 들어 검등을 밀어 보려다가 멈췄고 부딪치는 순간 뒤따를 변화가 보였다. 손을 뻗으면 손목이 베이고, 몸 안쪽으로 파고들면 검자루가 돌아와 어깨를 찍을 터였다. 결국 그는 몸을 낮춰 간신히 검 아래를 빠져나왔으나 남궁휘의 발이 이미 앞길을 점하고 있었다.

선택할 때마다 위험이 커졌다.

그런데도 풍은 섣불리 손끝에 힘을 싣지 않았다. 위협이 더 다가와 무심코 힘을 냈다가는 아직 실오라기처럼 가늘게 줄지 않은 그 힘이 남궁휘뿐 아니라 비무대 가까이에 선 심판까지 휘말리게 할지 몰랐고, 기맥시 또한 사람들의 눈이 집중된 자리에서 함부로 끌어올릴 수 없었다.

지금 필요한 답은 반지가 아니었다.

남궁휘의 검이 다시 어깨를 향했고 앞서 옷자락을 벤 수와 같은 출발이었다. 풍은 일부러 같은 방향으로 반걸음 물러나며 검끝을 보았고 남궁휘의 손목은 마지막까지 어느 쪽으로도 틀어지지 않았고, 검신 역시 곧았다.

바뀌는 순간을 기다려서는 늦는다.

그 생각이 스치자 전날 붙잡지 못했던 감각이 되살아났고 점창 제자의 검영 바깥에서 어렴풋이 느껴졌던 지연은 검끝에 있지 않았다. 검이 변하기 직전, 다른 곳에서 먼저 무언가가 움직였고 그때는 연속 변초가 끝나는 순간만 기다리느라 더 깊이 들여다보지 못했다.

풍은 시선을 넓혔다.

검끝에서 손목으로, 손목에서 팔꿈치와 어깨로. 어깨 아래에는 허리가 있었고, 허리를 받치는 골반과 발이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움직임만 보아서는 남궁휘가 일부러 섞은 거짓에 다시 휘둘릴 뿐이었다.

풍은 두 눈에 아주 얇게 기를 끌어올렸다.

세상이 느려진 것은 아니었고 남궁휘의 검은 여전히 빨랐고, 관중의 움직임도 흐릿하게 번졌다. 다만 흰 무복 아래를 흐르는 기운이 희미한 물길처럼 이어져 보였고 단전에서 일어난 기운이 골반을 지나 허리를 틀고, 어깨를 거쳐 손목으로 흘렀다. 검끝은 아직 가슴을 향하고 있었지만 기운의 일부는 이미 옆으로 돌아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제야 풍은 알았다. 손끝은 거짓말할 수 있었으며 검끝도 진로를 감출 수 있었다.

하지만 힘이 생겨나는 곳에서 목적지까지 이어지는 모든 길을, 한순간에 속일 수는 없었다.

검을 바꾸려면 먼저 몸이 그 변화를 받아 내야 했고, 아무리 작은 움직임이라도 기운은 그보다 앞서 길을 열었다. 전날의 흐릿한 질문이 비로소 하나의 답이 되었다.

남궁휘의 검이 꺾였고 풍은 그제야 피하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남궁휘도 멈추지 않았다. 풍이 변화의 시작을 알아차렸음을 보자 손목의 힘을 풀어 검신을 아래로 떨어뜨렸고, 골반을 되돌리며 검자루로 풍의 가슴을 밀어냈다. 처음 준비한 변화마저 버리고 새로운 수를 만든 것이다.

풍은 팔뚝으로 검자루를 흘려 냈고 둔중한 충격이 뼈를 울렸고, 반걸음 밀려난 사이 남궁휘의 검이 다시 살아났다. 이번에는 단전에서 솟은 기운이 두 갈래로 나뉘는 듯했고 어깨로 향한 흐름과 허리 아래에 남은 흐름이 서로 다른 공격을 예고하고 있었다.

어느 쪽이 진짜인지 정해지지 않았다.

풍은 짧게 숨을 삼켰고 근원을 보게 되었다고 모든 답이 저절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었다. 남궁휘는 한 흐름을 끝까지 밀어붙일 수도, 중간에 버리고 다른 쪽을 택할 수도 있었으며 무엇을 고를지는 여전히 사람의 선택이었고, 풍이 볼 수 있는 것은 선택이 가능해지는 찰나까지였다.

검이 위에서 떨어졌다.

풍은 왼쪽으로 파고들 수 있었지만 그러면 장부가 든 옷깃이 검신 가까이 놓였고 오른쪽은 비무대 가장자리였고, 뒤로 물러나면 남궁휘가 간격을 다시 장악할 터였다. 머뭇거릴 시간은 없었다.

풍은 오른쪽을 택했다.

발뒤꿈치가 비무대 끝에 걸렸고 관중석에서 탄식이 터졌고 남궁휘가 그 길을 예상한 듯 검을 크게 휘둘렀다. 검풍만으로도 균형이 흔들릴 만큼 무거운 일격이었고 피하면 비무대 밖으로 떨어지고, 막으면 다음 수에 눌릴 자리였다.

풍은 피하지 않았다.

검이 닿기 직전 몸을 낮추며 한 발을 남궁휘 쪽으로 내디뎠고 검끝을 벗어나는 대신 가장 위험한 검 안쪽으로 들어간 것이다. 날이 머리 위를 스치자 머리카락 몇 올이 끊어져 흩날렸고, 남궁휘는 즉시 검을 거두며 팔꿈치로 풍의 관자놀이를 노렸다.

풍의 눈에는 그 움직임보다 먼저 단전에서 어깨로 치솟는 기운이 보였다.

그는 고개를 숙여 팔꿈치를 흘린 뒤 남궁휘의 손목을 짚었다. 힘으로 붙잡지 않고 기운이 흘러갈 방향을 비스듬히 밀자, 검을 거두던 팔이 본래의 길에서 반 치 벗어났다. 남궁휘가 곧바로 손목을 뒤집어 풍의 손을 떨쳐 냈지만 풍은 이미 그 힘을 타고 더 안쪽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남궁휘의 왼손이 풍의 가슴을 노렸고 풍은 어깨로 받아 내며 손바닥을 뻗었고, 두 사람의 몸이 거의 맞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이 거리에서는 긴 검이 불리했으나 남궁휘는 검을 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검자루 끝을 돌려 풍의 옆구리를 찍으려 했다.

풍은 그것까지 완전히 피할 수 없었고 검자루가 옆구리를 스치며 묵직한 통증이 퍼졌지만, 그 순간 물러서면 다시 검의 거리에 갇힐 터였다. 이를 악문 그는 남궁휘의 팔을 따라 흐르듯 움직여 가슴 앞에 손끝을 세웠다.

동시에 남궁휘의 검자루도 풍의 갈비뼈 앞에 멈췄다.

두 사람 모두 움직이지 않았다.

남궁휘의 검자루와 풍의 몸 사이에는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간격이 남아 있었으며 반면 풍의 손끝은 남궁휘의 가슴팍에 닿기 직전, 한 치도 되지 않는 곳에 머물렀다. 먼저 힘을 뻗었다면 승부는 이미 끝났을 거리였다.

심판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손을 들었다.

“그만! 단풍의 승리다!”

연무장이 크게 흔들렸다. 누군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고, 누군가는 방금 벌어진 움직임을 이해하지 못한 듯 옆 사람에게 연신 물었다. 풍은 그 소리를 뒤늦게 들으며 천천히 손을 거두었고 옆구리가 욱신거렸고 다리는 힘이 빠질 듯 떨렸지만, 끝내 비무대 밖으로 밀려나지는 않았다.

남궁휘는 한동안 제 손목을 내려다보았고 풍이 짚었던 자리를 엄지로 눌러 본 그는 검을 완전히 거둔 뒤 물었다.

“마지막에 무엇을 본 거지?”

풍은 숨을 고르며 답했다.

“검이 움직이기 전에, 검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요.”

“내 어깨를 보았나?”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깨만 봤다면 두 번째 변화에 당했을 겁니다.”

남궁휘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풍은 자신이 깨달은 것을 어디까지 말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기맥시의 정체를 밝힐 수는 없었고, 남궁휘가 비무 전에 자신의 관찰을 드러내 실제 위험을 만들었던 일도 잊지 않았다. 다만 방금의 승부를 거짓말로 덮고 싶지도 않았다.

“단전에서 시작해 허리와 어깨, 손목으로 이어지는 힘을 보려 했습니다. 모두 보인 건 아닙니다. 마지막에도 어느 쪽을 고를지 몰랐고요.”

“그래서 비무대 끝으로 갔군.”

“그 길밖에 없었습니다. 틀렸으면 제가 떨어졌겠지요.”

남궁휘는 잘린 풍의 옷자락과 비무대 가장자리를 번갈아 보았고 잠시 뒤 그의 입에서 짧은 숨이 흘러나왔는데, 웃음인지 탄식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내 검을 다 읽은 게 아니라, 읽을 수 있는 순간에 몸을 걸었다는 뜻인가.”

“예.”

“그런데 이겼군.”

남궁휘는 눈을 감았다가 떴고 얼굴에는 패배의 쓰라림이 남아 있었으나 처음 만났을 때의 차가운 경멸은 보이지 않았다.

“졌다.”

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연무장의 소란이 다시 커졌고 남궁휘는 주변을 돌아보지 않은 채 풍에게 포권했다.

“오늘의 패배는 변명하지 않겠다. 하지만 다음에는 네가 힘의 시작을 보아도 고르지 못할 만큼 많은 검을 준비해 오마.”

풍도 마주 포권했다.

“그때는 저도 오늘보다 더 잘 보겠습니다.”

“그 대답은 마음에 들지 않는군. 내가 더 어려워지겠어.”

남궁휘의 입가에 이번에는 분명한 웃음이 스쳤고 아주 옅었지만 풍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비무대에서 내려오자 아영이 가장 먼저 달려왔고 아영은 갈라진 옷자락을 보고 얼굴을 굳혔다가 피가 묻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에야 길게 숨을 내쉬었다.

“다친 데는?”

“옆구리를 조금 부딪쳤어.”

“조금인지 아닌지는 내가 봐야 알아. 너는 뼈가 부러져도 금만 갔다고 할 사람이니까.”

아영은 핀잔을 주면서도 먼저 왼쪽 옷깃을 살폈고 장부 조각이 드러나지 않았음을 확인한 뒤 갈라진 부분을 겹쳐 눌렀고, 그제야 눈매가 누그러졌다. 막동은 두 사람 곁에서 연신 손을 흔들며 주변의 시선을 막는 척했지만, 입은 잠시도 쉬지 않았다.

“끝으로 몰렸을 때는 정말 떨어지는 줄 알았소. 내가 개방에 남길 이야기를 벌써 절반이나 고쳐 썼다니까. 그런데 그 안으로 파고들 줄이야!”

현허는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풍을 기다리고 있었으며 풍이 다가가자 현허는 옆구리보다 눈을 먼저 살폈다.

“찾았느냐?”

“예. 어제 느낀 건 검의 바깥에 있던 게 아니었습니다. 검이 나오기 전부터 몸 안에서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현허는 잠시 말이 없었고 칭찬을 기다린 것은 아니었으나 풍은 괜히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폈다. 현허의 시선은 그런 손끝을 지나 비무대 위의 남궁휘에게 향했다가 돌아왔다.

“오늘 네가 얻은 것은 답 하나가 아니다.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 것이지. 둘은 크게 다르다.”

풍은 방금 남궁휘가 중간에 변화를 버리고 새 수를 만들던 순간을 떠올렸고 근원을 읽었어도 마지막 선택까지 알 수는 없었다. 한 번 더 늦거나 다른 길을 골랐다면 승자는 바뀌었을 터였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네가 본 만큼, 너를 본 자도 많다.”

현허의 말에 풍은 관중석을 돌아보았고 제갈소소는 펼치지 않은 부채를 턱에 댄 채 비무대 끝과 풍의 발자국을 번갈아 살피고 있었다. 남궁휘와 풍이 마지막에 멈춘 위치를 재는 듯한 눈길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는 몇몇 참가자와 원로들이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눴고, 송진은 그들보다 더 뒤쪽의 좌석들을 훑고 있었다.

그중 가장 높은 자리의 한 노회한 원로가 풍을 바라보고 있었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풍은 목덜미를 스치는 서늘함을 느꼈고 노하촌의 지하에서 맡았던 독기와 같지는 않았으나, 어딘지 닮은 결이 있었다. 풍이 눈에 기를 모으기도 전에 원로는 옆 사람을 향해 고개를 돌렸고, 얼굴에는 아무 감정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부님, 저분은 누굽니까?”

현허는 곧바로 답하지 않았다.

“지금은 오래 보지 마라.”

짧은 경고였고 풍은 더 묻는 대신 시선을 거두었지만, 등 뒤에 남은 서늘함까지 지울 수는 없었다. 오늘 드러낸 것은 금빛 반지의 힘도, 현허의 절학 전부도 아니었고 그런데도 자신을 보는 눈은 어제보다 분명히 많아져 있었다.

그때 남궁휘가 비무대를 내려와 풍의 곁을 지나갔고 그는 몇 걸음 앞에서 멈추더니 돌아보지 않은 채 말했다.

“다음 비무에서 허무하게 지지 마라. 나를 꺾은 자가 운이 좋았다는 소리를 들으면 불쾌할 테니.”

아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응원도 참 거창하게 하네요.”

“응원이 아니다.”

“그럼요?”

남궁휘는 대답하지 않았고 다만 풍을 향해 한 번 고개를 기울인 뒤 기다리던 세가 자제들에게 걸어갔다. 풍은 멀어지는 흰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오만한 적 하나를 이겼다는 것보다, 다음에는 더 나은 검을 들고 찾아올 벗 하나를 얻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풍의 앞에는 마지막 넷만이 남아 있었다.

회차 끝 24

ReNovels · 한 회차씩, 이야기 속으로.

회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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