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스템 대표님

마지막 야근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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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재가 마지막으로 고친 오류는 자기 해고 통지서에 있었다.

퇴직 정산 내역의 야간 근무 시간이 열여덟 시간 빠져 있었다. 그는 인사팀 직원에게 화면을 돌려 보였다.

“지난달 마지막 주 배포 대응이요. 출입 기록에도 남아 있을 텐데요.”

직원은 입술을 조금 벌렸다가 다물었다. 모니터 옆에서 회사의 인사 지원 AI가 푸른 원을 그리며 대기 중이었다.

“확인해서 반영하겠습니다.”

“네. 마지막까지 오류 수정이네요.”

웃으라고 한 말은 아니었다. 직원도 웃지 않았다.

회의실 유리벽 너머에서는 사람들이 박수를 치고 있었다. 사내 개발 자동화 전환을 기념하는 간담회였다. 천장 화면에 적힌 문장이 유리벽에 거꾸로 비쳤다.

사람은 더 창의적인 일에 집중합니다.

민재는 그 문장을 바로 읽을 수 있었다. 지난주에도, 지지난주에도 봤기 때문이었다. 창의적인 일에 집중할 사람들의 명단에는 그의 이름이 없었다.

팀장이 회의실 앞까지 따라 나왔다.

“민재 씨 실력 때문은 아니에요.”

“알죠.”

“이번에 도입한 모델이 생각보다 성능이 많이 올라와서. 운영 쪽까지 통합되고 나니까 본사에서도 인원을…….”

“팀장님.”

민재가 사원증을 내밀었다.

“그 모델, 새벽에 결제 중복 터지면 누구한테 전화해요?”

팀장의 시선이 사원증에 멎었다.

지난달 새벽 세 시, 둘은 같은 사무실에서 식은 김밥을 먹었다. 민재는 중복 결제의 원인을 찾았고 팀장은 고객사 전화를 받았다. 자동화 시스템이 놓친 거래 예외를 사람이 수습한 밤이었다.

“이제 그 정도는 처리한답니다.”

“그럼 됐네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자기 자리까지 가져간 녀석이 일도 못하면 억울함만 두 배였다.

그는 책상에서 가져온 작은 상자를 고쳐 들었다. 머그잔 하나, 충전선 두 개, 어디에 쓰는지 잊은 변환 젠더. 오 년 동안 하루의 절반을 보낸 자리가 그만큼이었다.

출입 게이트는 사원증 없이도 얼굴을 알아봤다.

퇴직자 임시 출입 권한이 종료되었습니다.

“일 빠르네.”

민재는 뒤돌아보지 않고 회전문을 밀었다.

그날부터 여섯 주가 지났다.

처음 사흘은 늦잠이 좋았다. 넷째 날에는 늦잠을 잘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 싫어졌다. 이력서 열아홉 통을 보내고 자동 회신 열일곱 통을 받았다. 나머지 두 곳에서는 지원서를 열어보았다는 알림만 왔다.

채용 사이트는 그에게 AI 운영 관리자 자격 과정을 추천했다. 수강료는 백팔십만 원이었다.

민재는 추천 창을 닫았다.

“나 자른 애 관리하려면 돈도 내야 하네.”

휴대전화가 책상에서 짧게 떨렸다.

강태오였다.

—오늘 좀 남는다. 와서 닭 가져가라.

민재는 메시지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전 회사에서 함께 일하던 태오는 먼저 퇴사한 뒤 치킨집을 열었다. 처음에는 개발자보다 몸은 힘들어도 속은 편하다고 했고, 최근에는 속도 튀기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남냐.

—니 먹을 건 따로 빼놨다. 말귀를 못 알아듣노.

민재는 웃었다. 그러고는 창밖을 봤다. 골목 끝 간판이 비에 번져 있었다. 태오의 가게까지 가려면 버스를 타고 이십 분이었다.

—오늘은 작업 좀 끝내고. 다음에 비싼 거 사준다.

—니 게임 대박 나면 닭집부터 인수해라. 나 튀김기랑 헤어지고 싶다.

—튀김기 의사도 들어봐야지.

휴대전화를 내려놓자 방이 다시 조용해졌다.

창틀 아래 반찬통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천장등은 켜지는 데 두 번의 깜박임이 필요했다. 의자 등받이는 나사가 풀려 있었지만 등을 기대지 않으면 버틸 만했다.

불편한 것마다 사용법을 익히고 있다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민재는 의자 아래에 굴러다니던 육각렌치를 집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등받이를 붙들고 나사를 조였다. 손바닥에 금속 냄새가 배었다. 다시 앉아 힘을 주자 이번에는 버텼다.

“하나 고쳤다.”

화면 안에는 아직 고칠 게 많았다.

《귀가등》.

검은 도시 한복판에서 작은 인물이 공구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 플레이어는 끊어진 전선을 잇고, 버려진 부품으로 가로등을 고쳐야 했다. 불빛이 이어지면 집을 잃은 주민들이 길을 찾았다.

시작은 단순했다. 야근하고 돌아오는 길에 자기 방 창문만 어두운 게 싫어서, 적어도 게임 속에서는 누군가 불을 켜놓고 기다리게 만들고 싶었다.

혼자 만든 첫 장면은 마음에 들었다.

비가 그친 골목. 노란 가로등 아래 놓인 의자. 젖은 발을 털며 앉는 노인과 그 옆으로 다가오는 개 한 마리.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노인은 플레이어가 등불을 고쳐줘도 다음 날이면 처음 만난 사람처럼 굴었다. 의자를 옮겨놓으면 그 자리에 앉지 못하고 허공에 걸터앉았다. 개를 따라 골목을 벗어나면 주민 세 명이 동시에 같은 인사를 했다.

민재는 시험 캐릭터를 노인에게 데려갔다.

“길이 어둡구먼. 누가 불 좀 켜줬으면.”

노인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바로 머리 위에 가로등이 켜져 있었다.

“어르신. 이 정도면 선글라스 쓰셔야 돼요.”

민재는 대화 조건을 열었다. 이미 완료된 수리 기록이 다른 구역의 상태로 덮여 있었다. 그 부분을 고치자 노인이 감사 인사를 했다. 대신 골목 건너 상인이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

오후 여섯 시에 닫아야 할 빵집이 게임 속 새벽 세 시까지 환했다.

민재는 마우스를 놓고 얼굴을 문질렀다.

회사에서 쓸 때는 훌륭했던 상용 AI도 여기서는 자꾸 답을 작게 만들었다. 주민의 기억을 제한하고, 선택지를 줄이고, 장면을 나누라고 권했다. 시키는 대로 하면 오류는 줄었다. 대신 처음 만들고 싶었던 게임도 함께 줄어들었다.

그는 노인의 기억 목록에 새 항목을 하나 적었다.

처음 불을 고쳐준 사람에게 차를 권한다.

고작 한 줄이었다. 그것이 실제로 이어지려면 찻잔도, 집도, 다음 만남도 필요했다. 노인이 그날 기분에 따라 차를 권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했다.

민재는 한동안 그 문장을 바라봤다.

그리고 지우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무언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유리병을 버리는 줄 알았다. 뒤이어 여자의 목소리가 올라왔다.

“그건 내려놓으세요. 제가 들게요.”

민재는 창문을 밀었다.

맞은편 빌라 현관에 이삿짐이 쌓여 있었다. 투명 비닐에 싸인 이불, 접이식 밥상, 바퀴 한쪽이 없는 여행 가방. 작은 화분 하나가 계단 아래에서 깨져 있었다.

화분 옆에 여자가 쪼그려 앉아 흙을 모았다.

이수진이었다.

편의점 앞에서 몇 번 마주친 이웃이었다. 민재가 분리수거 날짜를 잘못 알고 상자를 내놨을 때 대신 안쪽으로 옮겨준 적이 있었다. 늘 목에 사원증을 걸고 다녔는데 오늘은 손목에 검은 머리끈만 두르고 있었다.

현관 안에서는 작업 조끼를 입은 남자가 신발장을 밀고 나왔다.

민재는 슬리퍼를 끌고 내려갔다.

골목에 나오니 비가 아주 가늘게 내렸다. 계단 위에는 집주인 장만석이 우산을 펼친 채 서 있었다. 쉰을 넘긴 얼굴에 짜증이 가득했다.

“말 좋게 할 때 비워줘야지. 나도 새로 들어올 사람이 있어.”

수진이 몸을 일으켰다.

“제 돈을 주셔야 나가죠.”

“정산이 끝나야 준다니까.”

“계약 끝난 지 열흘이에요. 어제는 담보 때문에 은행이 가져가서 돈이 없다면서요. 오늘은 정산이고요?”

장만석은 골목 입구를 한번 봤다.

“사람들 듣는 데서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해.”

“들으시라고 하는 거예요.”

수진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도 작아지지는 않았다.

“집에 빚 없다고 하셨잖아요. 계약 전에 보여준 서류에도 없었고요. 그런데 제가 들어오기 전에 이미 돈을 빌리셨다면서요.”

“그건 중개사한테 물어봐. 나는 서류 모른다고.”

“중개사무소 전화 안 받아요.”

“그럼 나한테 화를 내면 돈이 생겨?”

민재는 계단 아래 떨어진 액자를 먼저 주웠다. 유리는 깨지지 않았다. 사진 속 수진은 졸업 가운을 입고 중년 여자와 나란히 서 있었다.

그가 액자를 밥상 위에 올려놓자 장만석이 쳐다봤다.

“누구세요?”

“옆 건물 삽니다.”

“그럼 남의 일에 끼지 말고.”

“짐을 왜 밖에 내놓으시는데요?”

“이사하는 거 안 보여요?”

“이사하는 분이 내려놓으라는데 계속 들고 나오니까요.”

작업 조끼를 입은 남자가 신발장을 붙든 채 장만석을 봤다.

“사장님, 자진 퇴거라고 하셔서 온 건데.”

“아, 맞다니까. 날짜 됐잖아.”

수진이 휴대전화를 꺼냈다.

“저 이사 동의한 적 없어요. 경찰에 전화할게요.”

장만석이 혀를 찼다.

“해. 와서 무슨 말을 하나 들어보자고.”

민재는 그 느긋한 표정을 봤다. 돈을 돌려주지 못한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상대가 전화를 걸어도 자기에게 별일은 생기지 않는다는 걸 아는 얼굴이었다.

짐을 나르던 남자는 신발장을 다시 안으로 밀었다. 동료에게 손짓하더니 빈 운반대를 접었다.

장만석은 그들에게 인건비 얘기를 하며 현관 안으로 들어갔다.

수진은 통화가 연결되기를 기다렸다. 휴대전화를 쥔 손등에 흙이 묻어 있었다.

민재는 비닐이 벗겨진 이불부터 처마 아래로 옮겼다.

“이것 좀 안으로 넣을게요.”

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밥상을 들어 옮길 때 서랍이 열렸다. 약봉지와 충전기, 흰 봉투 하나가 바닥에 쏟아졌다. 봉투 위에는 대학병원 이름이 찍혀 있었다.

수진이 급히 주웠다.

“죄송해요.”

“제가 덜 잡았어요.”

그녀는 봉투를 가슴 쪽으로 접어 안았다.

“엄마한테는 아직 말 안 했어요. 집 구했다고 좋아하셨는데.”

민재는 대답을 찾지 못했다.

수진이 젖은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겼다.

“칠천이백이에요. 칠 년 모았어요.”

골목 끝으로 음식 배달 로봇이 지나갔다. 보행자를 감지한 로봇이 속도를 줄이고, 물웅덩이를 피해 매끄럽게 방향을 바꿨다.

“회사 기숙사 나온 다음에 처음 얻은 집인데.”

수진은 거기까지만 말했다.

처마 아래로 옮겨놓은 짐은 생각보다 적었다. 칠 년을 모아 얻은 집에서 밀려나온 생활이 그만큼이었다.

경찰이 도착한 뒤에도 민재는 잠깐 남아 있었다.

경찰관은 신분을 확인하고 현관 안의 짐과 바깥의 짐을 번갈아 촬영했다. 장만석은 자기가 옮기라고 한 게 아니라 정리를 도와주던 중이라고 말했다. 운반대는 이미 트럭에 실려 있었다.

수진이 항의하자 그는 두 손을 폈다.

“봐요. 다시 다 넣었잖아요. 내가 뭘 어쨌다고.”

민재는 자신이 본 것을 말했다. 작업자가 들었다는 자진 퇴거 이야기도 전했다. 경찰관은 적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였다.

장만석이 경찰관과 이야기하다 말고 골목 밖에 세워둔 차를 열었다. 빗물 맺힌 검은 차 안에서 밝은 음악이 흘러나왔다. 조수석에는 선물용 과일 상자가 놓여 있었다.

민재는 차와 수진의 젖은 운동화를 번갈아 봤다.

주머니 속 휴대전화에는 사흘 뒤 월세가 빠져나간다는 알림이 남아 있었다. 자기 사정부터 해결하라는 말이 어딘가에서 들리는 것 같았다.

그래도 그는 자기 방으로 올라가 마른 수건 두 장과 큰 비닐봉지를 가져왔다.

수진은 수건을 받아 들고 한참 있다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민재는 그 말이 불편했다. 이 정도 일을 하고 듣기에는 너무 컸다.

방으로 돌아왔을 때 게임 속 빵집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노인은 밝은 가로등 밑에서 어둡다는 말을 반복했다.

민재는 헤드셋을 벗었다.

불과 삼십 분 전까지는 그게 제일 큰 문제였다는 사실이 어이없었다.

그는 검색창에 보증금 반환을 쳤다. 비슷한 사연이 끝도 없이 나왔다. 소송에 걸린 시간, 이미 넘어간 집, 돈이 없다며 버티는 임대인. 상담을 받으라는 답 아래에는 상담을 받고도 갈 곳이 없다는 댓글이 달려 있었다.

장만석의 이름으로 검색했지만 엉뚱한 동명이인만 나왔다.

민재는 노트북 뚜껑을 덮으려다가 멈췄다. 대신 새 문서를 열어 시간을 적었다. 누가 무엇을 들고 나왔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기억나는 대로 남겼다. 수진에게 필요하면 보내주겠다는 문자도 썼다.

답은 금방 왔다.

—네. 꼭 부탁드릴게요.

민재는 문서를 저장했다.

적어도 내일 기억이 흐려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저장 완료 표시가 뜬 뒤에도 손에 힘이 빠지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자기 권한이 아니어서 못 하는 일이 많았다. 이제는 회사도 없는데 못 하는 일이 그대로였다.

그는 책상 모서리를 잡았다가 놓았다.

누군가는 사람 몇십 명이 하던 일을 기계 하나로 없앴다. 누군가는 칠 년 치 돈을 가져가고도 우산 아래서 짜증을 냈다. 자기는 문장 몇 줄을 고쳐 적고 수건 두 장을 빌려줬다.

“참 알차게 무능하네.”

말하고 나니 더 화가 났다.

그는 덮으려던 노트북을 다시 당겼다. 게임으로 돌아가 노인 집의 현관등을 켰다. 낮은 지붕 아래 작은 불이 들어왔다.

화면 속 골목이 조금 달라졌다.

고칠 수 있는 것부터 고치는 수밖에 없었다. 그게 언제까지나 전부인 건 싫었다.

밤 열 시가 넘자 배에서 소리가 났다.

민재는 냉장고를 열었다. 생수와 고추장, 바닥이 보이는 반찬통이 있었다. 빈속에 고추장을 먹을 정도로 창의적이지는 않았다.

편의점에서 달걀과 우유, 할인 도시락을 샀다. 계산대 옆의 모니터에서는 새 가정용 로봇 광고가 나왔다. 로봇이 이불을 개고 아침상을 차렸다. 창가의 가족이 웃었다.

민재는 봉투를 받아 들었다.

“이불보다 보증금 좀 찾아주지.”

야간 직원이 못 들은 듯 눈을 들었다.

“네?”

“아닙니다. 수고하세요.”

편의점 자동문이 열리자 빗소리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들어올 때만 해도 견딜 만했던 비가 바닥을 튀기고 있었다. 우산을 펴자 바람이 안쪽으로 들이쳤다. 민재는 손잡이를 짧게 고쳐 잡았다.

길 건너 공사장 가림막이 울었다. 자율 택시 한 대가 물보라를 일으켰다. 젖은 신발 안에서 양말이 발가락에 달라붙었다.

집까지는 오 분이었다.

골목에 접어들자 수진의 방 창문에 불이 켜져 있었다. 짐은 전부 안으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처마 아래에는 깨진 화분에서 건져낸 식물이 비닐봉지에 담겨 있었다.

민재는 걸음을 잠깐 멈췄다.

내일 화분 하나를 사다 줄까.

아니, 먼저 물어보는 게 낫겠다. 살아 있는 뿌리를 어떻게 옮기는지 자기는 몰랐다.

그는 휴대전화를 꺼내려다 빗물 때문에 그만뒀다. 대신 식물이 넘어가지 않게 봉지 옆에 벽돌 한 장을 붙여놓았다.

바로 그때 하늘이 낮게 울었다.

민재는 고개를 들었다.

구름 속에서 빛이 움직였다. 천둥이 오기 전의 짧은 틈에 골목의 전등들이 흐려졌다. 멀리서 무슨 물건이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그는 봉투를 몸 안쪽으로 당겼다.

“달걀은 살려야지.”

두 걸음쯤 옮겼을 때 우산 끝에서 푸른 불꽃이 튀었다.

정전기가 튀는 것처럼 작았다.

민재가 손잡이를 놓으려는 순간, 머리카락이 이마에서 떠올랐다. 눈앞의 빗방울 하나하나가 하얗게 빛났다.

소리가 먼저 사라졌다.

차의 물소리도, 빗소리도, 펄럭이던 가림막 소리도 끊겼다.

그는 자기 손에서 떨어지는 봉투를 보았다. 얇은 비닐이 벌어지며 달걀 한 알이 허공으로 나왔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온 흰 선이 그와 골목을 꿰뚫었다.

발밑의 물이 터졌다.

몸 전체가 단단히 굳었다. 우산도, 봉투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눈을 감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세상이 온통 새하얀 가운데, 벼락이 뒤늦게 귀를 찢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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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끝 1

ReNovels · 한 회차씩, 이야기 속으로.

회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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