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로 안은 축축하고 비릿했다. 벽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작은 등잔이 걸려 있었으며, 바닥에는 사람을 끌고 간 흔적과 수레바퀴 자국이 겹겹이 남아 있었다. 일시적으로 쓰는 샛길이 아니었고 오랜 세월 사람과 물건을 은밀히 나르려고 다져 놓은 길이었다.
풍은 앞서가는 사내들의 기맥을 놓치지 않으려 두 눈에 기를 모았다. 돌벽 너머로 네 줄기의 기운이 흔들렸고, 그 가운데 둘은 등에 업힌 사람들의 희미한 맥동과 포개져 있었다. 풍은 꺼져 가는 그 빛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조금만 더 견뎌 주십시오.’
통로가 왼쪽으로 꺾이자 앞쪽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데려온 자들까지 합치면 수가 맞나?”
“둘이 모자라. 장로께서 동트기 전까지 채우라 하셨다.”
“그 붉은 도를 찬 마교 놈은 떠났으니, 이제 우리만 고생이군.”
풍의 발끝이 잠시 굳었고 어둠 속에서도 현허가 돌아보는 기척이 느껴졌고, 아영 역시 숨을 삼켰다. 붉은 도를 찬 마교인이라면 전날 마주친 검붉은 도를 찬 사내일 가능성이 컸다. 아직 같은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으나, 장원에 마교인이 드나든다는 사실만큼은 납치자들의 입으로 확인된 셈이었다.
앞선 자가 혀를 찼다.
“입조심해라. 그자가 장로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든 우리가 알 바 아니다. 마교로 넘길 물건이나 제대로 관리해. 어젯밤 소란 때문에 경비가 두 배로 늘었다.”
“원로라는 늙은이가 그렇게 대단한 자였나?”
“그 이름까지 캐려 들지 마라. 장로께서 직접 처리하신다 했으니.”
풍은 손가락에 낀 금빛 반지를 엄지로 눌렀고 검붉은 도를 찬 사내가 현허를 공격한 일과 장원 사이에 아무런 연관도 없다고 보기는 어려워졌다. 다만 그가 납치에 가담했는지, 장원의 비밀을 지키려고 칼을 휘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 떠나기 전 풍이 무엇을 지키는지 확인하겠다고 했던 말까지 떠올리자 의문은 도리어 더 깊어졌다.
현허가 손가락 두 개를 들어 보인 뒤 갈림길의 어둠을 가리켰고 풍은 앞선 자들의 기운을 좇다가 고개를 저었다. 오른쪽은 막혀 있었고, 왼쪽으로만 기맥이 이어졌다.
세 사람은 납치자들과 거리를 벌린 채 뒤를 밟았다. 풍은 기운을 종이 한 장보다 얇게 펼쳐 앞쪽의 움직임을 더듬었으며, 현허는 벽과 바닥에 숨겨진 장치를 살폈다. 아영은 지나온 길목마다 눈에 잘 띄지 않는 흰 약가루를 조금씩 뿌렸고 사람들을 데리고 나올 때 길을 잃지 않기 위한 표식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풍의 시야에 가느다란 기의 선들이 나타났다. 돌바닥 아래 매설된 쇠줄이 벽 속의 방울과 이어져 있었고, 그 옆에는 발을 디디면 독침이 쏟아질 만한 작은 구멍들이 촘촘히 나 있었다. 납치자들은 정확히 세 번째 돌만 밟고 지나갔다.
풍은 현허의 소매를 잡아 세운 뒤 바닥을 가리켰다.
“저 돌 아래에 줄이 있습니다. 양옆 벽에도 독기가 엉겨 있어요.”
현허가 바닥을 살피더니 나직이 말했다.
“알고 들어오지 않았다면 첫걸음에 들켰겠구나.”
세 사람은 납치자들이 밟은 돌을 따라 함정을 넘었고 풍은 마지막으로 건너며 은빛 반지가 희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반지는 통로 깊은 곳을 향해 당겨지듯 미세한 기운을 흘렸고 북쪽을 가리키던 때와 닮은 반응이었지만, 지금은 방향보다 독기에 반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독을 좇는 건가? 아니면 독에 당한 사람을 찾는 건가?’
답을 구할 틈은 없었고 앞쪽의 기운들이 갑자기 아래로 꺼지며 돌벽 너머로 흐릿해졌다. 풍이 걸음을 재촉하자 통로 끝에 아래로 이어진 계단이 나타났고, 그 아래에서는 쇠문이 열리는 둔중한 소리가 울렸다.
“새 물건 둘입니다.”
납치자의 목소리에 누군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안쪽 우리에 처넣어. 오늘 약을 먹인 것들과 섞지 말고.”
잠시 후 쇠사슬이 부딪치고 문이 닫혔고 사내들의 기척은 반대편 통로로 멀어졌으며,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현허가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쇠문 옆에는 손바닥만 한 나무패가 걸려 있었으며 검은 이리가 이를 드러낸 문양 아래, 붉은 먹으로 열일곱 줄이 그어져 있었다. 풍은 장터 짐꾼들의 명단에서 보았던 표식과 닮았다고 느꼈으나, 그때는 멀리서 본 터라 확신하기 어려웠다.
아영이 나무패를 가리키며 속삭였다.
“이 문양, 전에 주운 패와 같지 않아요?”
“같은 무리일 가능성이 크다.”
현허는 짧게 답한 뒤 쇠문에 귀를 댔고 안쪽에서 경비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셋이 들어온 길과는 다른 방향에서 여러 기운이 얽혀 있었다.
풍은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검누런 독기를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는 검붉은 기운의 잔향도 가늘게 섞여 있었는데, 검붉은 도를 찬 사내가 휘두른 도에서 보았던 마기와 결은 비슷해도 훨씬 탁하고 끈적했다. 같은 뿌리에서 나왔을 수는 있어도 한 사람의 기운이라고 단정할 만한 흔적은 아니었다.
현허가 손바닥으로 쇠문의 경첩을 눌렀다. 내공이 실린 손끝이 천천히 움직이자 녹슨 쇠붙이가 소리 없이 밀려났고, 세 사람은 가까스로 한 사람이 통과할 틈을 만들었다.
문 너머에는 낮고 긴 복도가 뻗어 있었으며 양옆으로 작은 방이 여럿 붙어 있었으며, 문마다 약재 이름과 날짜가 적힌 쪽지가 매달려 있었다. 풍은 처음에 약재를 보관하는 창고인 줄 알았으나 가까이 다가간 순간, 방 안에서 사람의 숨결을 느끼고 얼굴이 굳었다.
첫 번째 문에는 ‘황정, 삼 일’이라 적혀 있었으며 그 안에는 중년 사내 하나가 손발이 묶인 채 누워 있었다. 두 번째 문에는 ‘백출, 닷새’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고, 창백한 여인이 벽에 기대 숨을 몰아쉬었고 사람을 약초 이름으로 분류한 것이다.
아영이 떨리는 손으로 입을 가렸다.
“사람한테… 어찌 이런 이름을 붙여요?”
풍도 대답할 수 없었고 한때는 저마다 이름과 가족이 있었을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몸에 먹인 약과 견딘 날짜만으로 불리고 있었으며 사람을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자들에게 납치된 이들은 그저 옮기고 시험하다 버리는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현허는 가까운 방의 잠금장치를 살핀 뒤 고개를 저었다.
“지금 열면 경보가 울린다. 먼저 장치를 끊어야 한다.”
풍은 눈에 기를 더 끌어올렸다. 문마다 이어진 가느다란 쇠줄이 복도 끝의 작은 방으로 모여들었으며, 그 주위에는 네 명의 기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정면으로 제압할 수도 있겠지만 한 사람이 경보를 건드리기만 해도 장원 전체가 깨어날 터였다.
“제가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눈을 너무 오래 썼다.”
현허의 말대로 풍의 관자놀이에서는 뜨거운 통증이 뛰고 있었으며 수십 갈래 기운을 한꺼번에 좇느라 시야 가장자리가 흐릿해졌으며, 코끝에는 피 냄새까지 맴돌았다. 그래도 갇힌 사람들의 기맥은 그보다 더 약했고 머뭇거릴수록 독이 깊어질 것이 분명했다.
“아직 볼 수 있습니다. 저 방의 왼쪽 벽에 경보줄이 모여 있어요. 줄부터 끊으면 됩니다.”
현허는 풍의 얼굴을 잠시 살핀 뒤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고 아영은 품에서 해독환과 침통을 꺼내 쥐었다.
“경비를 처리하면 제가 사람들을 살필게요.”
세 사람은 복도 끝으로 다가갔다. 현허가 먼저 문틈에 손가락을 대고 안쪽의 숨소리를 헤아렸으며, 풍은 문 너머 네 사람의 기맥을 하나씩 짚었다. 둘은 탁자에 앉아 있었고 하나는 벽에 기대 졸았으며, 나머지 하나가 경보줄 가까이에 서 있었다.
현허가 손가락 셋을 접었다.
셋.
둘.
하나.
문이 소리 없이 열리자 현허의 소매가 어둠을 갈랐다. 경보줄 옆의 사내가 손을 뻗기도 전에 손목이 꺾였고, 풍은 가장 가까운 자의 기맥을 읽어 가슴과 어깨가 이어지는 혈도를 짚었다. 사내의 몸이 힘없이 무너지자 아영이 재빨리 다른 자의 목덜미에 침을 꽂았다.
마지막 경비가 입을 벌렸으나 현허의 손가락이 목 아래를 스쳤고 비명은 터지지 않았다. 네 사람이 거의 동시에 쓰러진 뒤에도 방 안에는 의자가 미세하게 흔들리는 소리만 남았다.
풍은 곧장 벽으로 달려가 경보줄을 살폈다. 하나를 잘못 건드리면 다른 줄이 당겨지는 구조였기에, 현허가 연결쇠를 붙잡아 움직임을 막는 동안 풍이 칼로 줄을 차례차례 끊었다. 마지막 쇠줄이 힘없이 늘어지자 복도에 달린 잠금장치들이 풀리는 소리가 연달아 울렸다.
철컥, 철컥.
문들을 열고 들어간 풍은 안쪽에서 마주한 광경에 숨이 막혔다.
지하 공동은 쇠창살로 잘게 나뉘어 있었고, 우리마다 사람들이 짐승처럼 갇혀 있었으며 하나같이 약기운에 취한 듯 눈은 흐리멍덩했으며, 살이 빠질 대로 빠져 뼈마디가 훤히 드러났다. 누군가는 벽에 기대 미동도 없었고, 누군가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쉼 없이 중얼거렸다.
공동 한쪽에는 높이가 사람 허리까지 오는 독항아리들이 줄지어 놓여 있었으며 항아리마다 검누런 기운이 꿈틀거렸으며, 바닥을 따라 이어진 홈은 각 우리 안으로 연결돼 있었다. 독을 먹이는 데 그치지 않고 연기까지 흘려보내 사람들의 몸을 서서히 망가뜨린 듯했다.
아영이 우리 하나를 붙잡고 안을 바라보았고 늘 당돌하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고, 눈가에는 금세 물기가 맺혔다.
“이게… 사람이 할 짓이에요?”
“짐승도 배가 부르면 사냥을 멈추느니라.”
현허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그 안에는 풍이 처음 듣는 분노가 서려 있었다.
풍의 시선은 작은 우리 앞에서 멎었고 아직 어린 사내아이가 무릎을 끌어안은 채 구석에 웅크리고 있었다. 아이의 얕은 숨결을 보는 순간, 사라진 손주의 신발을 품에 안고 흐느끼던 노파의 모습이 떠올랐다.
풍은 창살을 붙잡았다.
“얘야.”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초점 없는 눈이 풍을 스쳤으나 알아본 기색은 없었다. 풍은 당장 창살을 뜯고 아이를 안아 들고 싶었지만, 공동 전체에 퍼진 독기와 사람들의 상태부터 살펴야 했다. 무턱대고 옮기다가는 기맥이 끊어진 이들이 숨을 거둘 수도 있었다.
풍은 두 눈에 남은 힘을 모아 우리들을 훑었고 수많은 기맥이 한꺼번에 시야로 밀려들자 머릿속이 쪼개지는 듯 아팠다. 누군가는 심맥이 약했고, 누군가는 단전 주위로 독기가 뭉쳐 있었다. 새로 끌려온 두 사람은 아직 독이 폐부까지 스미지 않았지만, 오래 갇힌 이들 가운데 몇은 당장 손을 쓰지 않으면 위험해 보였다.
아영이 풍의 떨리는 어깨를 붙들었다.
“한꺼번에 다 보려 하지 마. 위험한 사람부터 가리켜 줘.”
풍은 거친 숨을 고르며 하나씩 손가락으로 짚었고 아영은 현허에게서 받은 해독약을 나누어 먹였고, 현허는 혼자 움직일 수 있는 이들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하지만 갇힌 사람은 스무 명이 넘었으며 절반 가까이는 부축 없이는 일어서기조차 어려웠다.
가장 가까운 우리의 노인이 인기척을 느꼈는지 흐릿한 눈을 떴다.
“…누구요? 또… 데리러 왔소?”
풍이 무릎을 꿇고 노인과 눈높이를 맞췄다.
“아닙니다. 구하러 왔습니다.”
노인은 한동안 풍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소. 달이 차면… 그자들이 우리를 산 너머로 보내오. 한 번 간 사람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소.”
산 너머라면 마교의 영역이었고 앞서 납치자들이 사람들을 마교로 넘긴다고 말한 일과도 맞아떨어졌다. 이곳은 납치한 이들을 가둬 두는 감옥이자, 정체 모를 술법에 맞게 몸을 망가뜨리는 작업장이었다.
“무엇 때문에 사람들을 데려가는지 아십니까?”
“재료라 했소. 살아남은 자만… 쓸 수 있다고….”
노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렸고 풍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손바닥이 저릿해질 만큼 주먹을 세게 쥐었다. 넓은 세상을 보고 싶어 산을 내려왔건만, 정작 마주한 세상의 한구석은 산짐승의 굴보다 어둡고 잔혹했다.
그럼에도 외면할 수는 없었고 이들에게도 돌아갈 집이 있었으며, 누군가는 아직 그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힘이 있든 없든 사람은 누구나 제 발로 갈 곳을 정할 수 있어야 했고 풍은 그것이 자신이 바라던 자유와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반드시 나가게 해 드리겠습니다.”
노인의 입술이 희미하게 떨렸다.
“어서 피하시오. 오늘은… 장로가 오는 날이오.”
“장로라니요?”
“독고세가의….”
노인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공동 저편에서 느릿한 박수 소리가 울렸다.
짝. 짝. 짝.
풍은 즉시 몸을 돌려 아영과 우리 사이를 막아섰다. 현허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소매를 걷었고, 어둠에 잠겨 있던 반대편 회랑에서 수십 줄기의 기운이 일제히 모습을 드러냈다. 감춰져 있던 무사들이 독항아리와 우리 사이를 빽빽하게 에워싸고 있었다.
풍은 이를 악물었다. 지하에 들어온 순간부터 지켜보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경보줄 말고도 다른 장치가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한 것은 하나였다.
그들은 함정 한가운데 들어와 있었다.
박수 소리가 멎자 어둠 속에서 한 노인의 웃음이 흘러나왔다.
노하촌의 어둠을 뒤에서 조종하던 손이, 마침내 제 모습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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