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은편 이름패에는 문파와 항렬만 적혀 있었다.
“청성파 일대제자.”
관중석 한쪽에서 낮은 탄성이 번졌고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으나 청성의 푸른 도복을 알아본 이들은 서로 귓속말을 나누었다. 예선에서 쾌검으로 세 사람을 연달아 물리친 제자라는 말도 들려왔다.
풍은 추첨함에서 시선을 거두며 상대를 찾았고 비무대 아래에 서 있던 청성 제자는 소란에 흔들리지 않고 검의 끈부터 살폈다. 체구는 풍보다 반 뼘쯤 컸고, 손등에는 오래 검을 쥔 흔적이 단단히 박혀 있었으며 기세를 과장하지도, 일부러 감추지도 않았다.
눈이 마주치자 청성 제자가 먼저 포권했다.
“좋은 승부를 바라오.”
짧은 인사에는 업신여기는 기색이 없었고 풍도 마주 포권하며 대답했다.
“많이 배우겠습니다.”
상대의 눈매가 아주 조금 누그러졌다. 그러나 비무대로 향하는 발걸음은 빈틈없이 고르고 조용했다.
풍은 그 뒤를 따라 계단을 오르면서 옷깃 안쪽의 감촉을 의식했고 아영이 꿰매 둔 장부 조각은 왼쪽 가슴 가까이에 붙어 있었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으나 검끝이 스치기라도 하면 천이 갈라지고 종이가 모습을 보일 수 있었다. 비무에서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 것과 장부를 지키는 것, 반지와 기맥시를 숨기는 것까지 모두 해내야 했다.
하나라도 놓치면 이곳에 온 까닭이 흔들렸다.
비무대에 오른 청성 제자는 검을 뽑은 뒤 두어 차례 손목을 풀었고 검명은 짧고 맑았으며, 날은 햇빛 아래에서도 번쩍거림이 심하지 않았다. 실전에서 눈을 현혹하려는 장식보다 손에 익은 균형을 택한 검이었다.
풍은 맨손으로 서서 호흡을 고르며 연무장을 둘러보았다. 남궁휘는 다른 참가자들 사이에 팔짱을 낀 채 이쪽을 보고 있었고, 조금 떨어진 곳에는 부채를 접어 든 제갈소소가 자리했다. 일반 관중석의 현허는 잿빛 장포 차림으로 눈에 띄지 않았지만, 그 시선만큼은 풍의 발끝과 어깨를 오가고 있었다.
아영은 풍과 눈이 마주치자 소리 없이 왼쪽 옷깃을 가리켰고 조심하라는 뜻이었다. 그 옆의 막동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는데, 평소답지 않은 침묵이 오히려 긴장을 고스란히 드러냈고 송진은 단상 아래 집법관들 사이에 서서 비무대가 아니라 주변 좌석을 살피고 있었다. 누가 풍에게 관심을 보이는지 확인하려는 듯했다.
심판이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항복하거나 비무대 밖으로 나가면 패배다. 살수와 치명적인 독은 금한다.”
청성 제자는 검끝을 낮추었고 풍도 두 손을 느슨하게 펼치며 무게를 앞발과 뒷발에 고르게 나누었다.
“시작!”
외침이 떨어졌으나 청성 제자는 곧장 달려들지 않았고 왼발을 반 보 내딛고 풍의 반응부터 살핀 뒤, 검을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렸다. 검끝이 풍의 목을 향했다가 가슴으로 내려왔고, 다시 손목으로 옮겨 갔고 어느 곳이 진짜 목표인지 드러내지 않은 채 거리를 재는 움직임이었다.
풍은 기맥시를 열지 않고 평범한 보법으로 옆걸음질했고 현허에게 배운 힘의 흐름도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어깨와 허리를 최소한으로 움직였다. 상대는 그 선택을 보고서야 첫 검을 뻗었다.
빨랐다.
곧은 찌르기로 보였던 검이 중간에서 비스듬히 꺾이며 풍의 오른쪽 퇴로를 막았고 풍은 상체를 물리지 않고 왼발만 뒤로 빼 검로를 벗어났고, 검끝은 넉넉한 간격을 남긴 채 허공을 갈랐다. 청성 제자는 쫓아오지 않고 곧바로 검을 거두었다.
관중석에서는 별다른 반응이 나오지 않았고 서로 한 수씩 떠본 것으로 보였을 터였다.
풍은 생각이 달랐고 첫 검은 속도를 자랑하려는 공격이 아니었다. 상대는 풍이 어느 발부터 빼는지, 상체와 시선이 어느 쪽으로 향하는지를 보았고 두 번째부터는 그 습관을 노릴 가능성이 컸다.
청성 제자가 다시 들어왔고 이번에는 검끝이 셋으로 갈라진 듯 흔들렸지만, 풍은 잔상을 좇지 않고 손목과 어깨를 보았다. 중심의 한 줄만 피하면 된다고 여겨 오른쪽으로 몸을 틀던 순간, 검의 기세가 갑자기 죽었다.
공격이 아니었다.
청성 제자의 앞발이 바닥을 쓸며 풍의 바깥쪽을 차지했다. 속도를 일부러 줄인 검은 풍을 물러서게 하기 위한 미끼였고, 진짜 목적은 비무대의 공간을 빼앗는 데 있었다.
풍은 뒤늦게 알아차렸으나 이미 반 보를 내준 뒤였고 왼쪽에는 아직 여유가 있었지만, 그쪽으로만 움직이면 옷깃 속 장부가 상대의 검과 가까워졌다. 풍은 망설임을 보이지 않으려 호흡을 짧게 삼킨 뒤 오른쪽으로 돌았다.
검광이 다시 피어났다.
청성 제자의 검은 빠르면서도 서두르지 않았다. 한 차례 크게 베어 풍을 몰아세우다가도 닿기 직전에는 검세를 거두었고, 풍이 빈 곳으로 빠져나가려 하면 기다렸다는 듯 짧은 찌르기를 이어 붙였다. 규칙 안에서 상대를 몰아내는 데 익숙한 검이었다.
풍은 검에 닿지 않았으나 여유롭게 피하지도 못했다. 기맥시를 쓰지 않으니 검끝의 변화가 온전히 보이는 것은 마지막 한순간뿐이었고, 평범한 보법을 고집할수록 선택지는 줄어들었다. 세 번, 네 번, 연달아 물러서는 사이 비무대 가장자리의 흰 선이 발뒤꿈치 가까이 다가왔다.
막동이 저도 모르게 무릎을 짚고 일어서려다 아영에게 소매를 붙들렸다. 아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 있었으며, 현허는 수염을 쓸어내리지도 않은 채 풍의 왼발만 바라보았다.
풍은 억지로 앞으로 파고들지 않았고 상대는 그것까지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청성 제자의 검은 늘 반쯤 길을 열어 두었고, 풍이 그 틈을 택할 때마다 다음 변화가 이어졌고 처음 두 번은 우연처럼 보였지만 같은 유인이 세 번째 다른 모양으로 반복되자 비로소 이치가 잡혔다.
검의 빠름은 겉껍질이었다.
이자는 상대가 스스로 안전하다고 믿는 곳을 만들고, 그곳으로 발을 옮기는 순간 다음 검을 내고 있었으며 한 초식씩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풍의 선택을 끼워 넣어 완성하는 연속 변초였다. 산속에서 짐승을 몰 때 달아날 길 하나를 일부러 남겨 두는 것과 닮았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는 발뒤꿈치 뒤로 남은 자리가 한 뼘도 되지 않았다.
청성 제자가 검을 세웠고 숨은 흐트러지지 않았고 눈빛에도 방심이 없었다.
“물러나면 끝이오.”
승리를 재촉하는 말이 아니라 경고였고 실수로 다치지 않게 항복할 기회를 주는 듯했다.
풍은 대답 대신 발끝으로 바닥을 눌렀고 옷깃 속 종이가 땀에 눅눅해지는 감각이 유난히 선명했다. 여기서 기맥시를 온전히 열면 상대의 변초를 쉽게 꿰뚫을 수 있을지 몰랐고 금빛 반지의 힘을 빌린다면 검째로 밀어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터였다.
그러나 그 순간 수백 명이 풍의 움직임을 볼 것이었고 남궁휘와 제갈소소뿐 아니라, 장부의 암호와 연결된 누군가도 이 연무장에 있을 수 있었다. 힘의 정체를 드러내면 우승보다 값비싼 것을 잃었다.
풍은 기를 눈으로 끌어 올리다가 멈추었고 대신 숨을 길게 내쉬며 지금껏 본 검을 떠올렸다. 상대가 풍을 어디로 유인했는지, 진짜 검을 내기 직전 어깨와 팔꿈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앞발이 어느 각도로 땅을 눌렀는지를 차례로 되짚었다.
전부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았고 청성 제자는 풍이 열어 둔 길을 택한다고 믿고 있었다.
풍은 왼쪽 어깨를 아주 조금 낮췄다. 장부가 있는 쪽을 감싸려는 듯한 움직임이었고, 지금까지 몇 차례 검을 피하며 무심코 보였던 습관과 같았다. 청성 제자의 시선이 풍의 발끝으로 내려갔다가 돌아왔다.
검이 움직였다.
가슴을 향한 찌르기였다. 풍이 왼쪽으로 틀면 옷깃 쪽으로 검로가 따라붙고, 오른쪽으로 빠지면 비무대 밖으로 발이 나가게 되어 있었다. 위로 뛰는 선택은 검을 올려 베는 후속 변화에 막힐 터였다.
평범한 보법으로는 길이 없었다.
풍은 마지막까지 기다렸고 검끝이 몸 가까이 이르기 전, 청성 제자의 기세가 찌르기에서 다음 변화로 넘어가려는 찰나가 찾아왔다. 짧은 순간이었으나 공격과 유인이 겹쳐 서로를 방해하는 틈이기도 했다.
그제야 풍이 발을 옮겼다.
뒤로도, 좌우로도 아니었다. 비무대 가장자리의 흰 선을 밟지 않은 채 앞발을 반달처럼 안쪽으로 감아 상대의 검 든 팔 아래로 파고들었다. 현허에게 배운 보법을 온전히 펼치지 않고, 산길의 좁은 바위 사이를 지나던 발놀림에 힘의 방향만 보탠 움직임이었다.
청성 제자의 눈이 커졌고 즉시 손목을 꺾어 검을 거두며 팔꿈치로 풍의 진입을 막으려 했지만, 풍은 그것마저 완전히 읽지 못했다. 예상보다 빠른 대응에 왼쪽 어깨가 막힐 듯하자 허리를 틀어 한 치 더 안으로 스며들었다.
검은 아무것도 건드리지 못했다.
풍은 상대의 팔꿈치와 몸 사이에서 몸을 세우며 오른손으로 검 든 손목을 받쳤다. 억지로 꺾으면 뼈를 상하게 할 수 있었기에 손가락으로 혈을 짚는 대신, 손목이 힘을 내지 못하는 방향으로 살짝 밀어 올렸다. 동시에 왼손은 상대의 어깨에 닿지 않은 채 옷깃 앞에서 멈추었다.
청성 제자의 무게중심이 뒤로 흔들렸고 풍이 한 걸음만 밀어도 비무대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자세였다.
그러나 풍은 밀지 않았다.
“멈추시오!”
심판의 외침이 떨어지기 전에 청성 제자가 먼저 검을 놓았다. 검은 비무대 바닥에 비스듬히 꽂혔다가 쓰러졌고, 그는 풍의 멈춘 손과 자신의 뒤쪽 흰 선을 번갈아 살폈다.
“졌소.”
연무장이 잠잠해졌다.
풍은 곧바로 두 손을 거두고 물러났고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지친 것은 아니었지만 호흡은 예상보다 거칠었다. 기맥시와 반지를 감추려는 데 정신을 쏟은 탓에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은 움직임을 견뎌야 했고, 마지막 진입도 반 걸음만 늦었다면 실패했을 터였다.
청성 제자는 바닥의 검을 집어 들었다. 얼굴에는 패배의 분함보다 납득하지 못한 의문이 먼저 떠올랐으나, 풍에게 검 자루를 내밀거나 따지지 않고 칼날을 닦아 검집에 넣었다.
“내가 길을 막았다고 생각한 순간, 그대가 도리어 그 길을 지웠군.”
“늦게 알아챘습니다. 조금만 더 몰렸다면 제가 떨어졌을 겁니다.”
풍의 대답을 들은 청성 제자가 잠시 바라보다 포권했다.
“그 말을 위로로 듣지는 않겠소. 다음에는 늦게 알아챌 틈도 주지 않겠소이다.”
“다시 만나면 저도 더 빨리 알아보겠습니다.”
두 사람은 마주 예를 갖추었다.
심판이 풍의 팔을 들어 올렸다.
“승자, 단풍!”
그제야 관중석에서 술렁임이 번졌다. 처음에는 청성 제자가 무명의 소년을 비무대 끝으로 몰았다는 말이 많았으나, 마지막 한 수를 두고 의견이 갈렸다. 누군가는 우연히 검 안쪽으로 미끄러졌다고 했고, 누군가는 처음부터 그 순간을 노렸다고 주장했다.
풍은 어느 쪽도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알았다면 그토록 쫓기지 않았을 것이며, 우연이었다면 상대의 손목을 다치게 하지 않고 멈추지도 못했을 터였다. 늦게 이해했고, 마지막에 선택했을 뿐이었다.
비무대를 내려오자 아영이 가장 먼저 다가왔고 아영은 승리를 축하하기보다 풍의 왼쪽 옷깃을 눈으로 확인한 뒤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괜찮아?”
“응. 아무것도 안 닿았어.”
“끝까지 그쪽으로 검이 가서 조마조마했잖아.”
풍은 옷깃을 직접 만지고 싶은 마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사람들이 보고 있는 곳에서 장부의 위치를 확인할 수는 없었다.
막동은 두 사람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려다가 아영의 시선에 멈췄다.
“나는 형씨가 일부러 몰린 줄 알았소. 그런데 표정을 보니 정말 위험했던 모양이구려.”
“일부러 그러기엔 너무 힘들었어.”
“그 말을 다른 데서는 하지 마시오. 무명의 고수가 청성 쾌검을 가지고 놀았다고 벌써 절반쯤 퍼졌으니.”
막동이 턱으로 주변을 가리키자, 풍을 힐끗거리는 참가자들이 보였고 조금 전까지 그의 이름을 몰랐던 자들이 서로 ‘단풍’이라는 두 글자를 확인하고 있었다.
현허는 뒤늦게 가까이 와 풍의 호흡을 살폈다.
“보지 않고 버틴 것은 잘했다.”
칭찬은 거기까지였다.
“다만 감추는 데만 마음을 빼앗기면 몸이 거짓을 말한다. 네가 옷깃을 의식한 것을 저 청성 제자도 알아차렸을 게다.”
풍은 뜨끔해져 목소리를 낮추었다.
“종이 때문인 줄도 알았을까요?”
“그것까지는 모를 것이다. 하지만 눈 밝은 자라면 네가 왼쪽을 지키려 했다는 사실은 보았겠지.”
현허의 시선이 제갈소소 쪽으로 향했고 제갈소소는 다른 이들처럼 승부의 마지막 장면만 되짚지 않았다. 접은 부채 끝으로 제 손목을 두드리며, 풍이 비무대 가장자리에서 움직임을 바꾸기 전과 후를 번갈아 살피는 듯했다. 우연인지 판단하려는 얼굴이었다.
남궁휘는 더욱 단순한 곳을 보고 있었으며 그는 풍이 파고든 자리로 직접 시선을 옮긴 뒤 청성 제자가 서 있던 각도와 검의 길이를 가늠했다. 비웃음도 감탄도 없었고 잠시 후 남궁휘는 자기 차례가 호명되자 풍에게서 눈을 떼고 비무대로 올라갔다.
그의 검은 소문보다 빨랐지만 속도만으로 상대를 누르지 않았고 첫 합에서 반응을 확인하고, 두 번째에는 퇴로를 좁혔으며, 세 번째 검으로 무기를 쳐내 승부를 끝냈다. 상대가 비틀거리자 검끝도 즉시 멎었다.
풍은 섣불리 빈틈을 찾으려 하지 않았고 세 수 안에 끝냈다는 결과보다, 세 수 동안 상대에게 보인 것이 거의 없다는 점이 더 마음에 걸렸다. 예비 심사 때 남궁휘가 풍의 손과 시험관의 발자국을 함께 살핀 까닭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판단은 직접 맞선 뒤에나 내릴 수 있었다.
송진은 비무가 끝난 풍에게 다가오지 않았고 다만 집법관에게 무언가를 지시하면서, 풍을 지켜보던 좌석 몇 군데를 기억하듯 차례로 훑었다. 그중 누가 ‘백학’과 관련됐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풍의 승리가 관심을 끈 이상, 소문은 칼이면서 미끼가 될 수도 있었다.
오후까지 비무는 이어졌다. 화산파의 매화검은 흐트러지는 듯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았고, 사천당가의 무인은 금지된 독 대신 정교한 암기술로 상대의 발을 묶었다. 풍은 기맥시를 깊이 열지 않은 채 필요한 흐름만 눈에 담았으며, 첫 비무에서 배운 대로 보이는 것과 안다고 믿는 것을 구분하려 애썼다.
해가 서쪽 담장 너머로 기울 무렵, 첫날의 마지막 승자가 정해졌고 장로가 내일의 대진은 아침에 발표하겠다고 알리자 참가자들이 무리를 지어 연무장을 빠져나갔다.
풍은 현허와 아영을 따라 걸으며 뒤에서 들려오는 말을 들었다. 청성의 쾌검이 옷깃 하나 건드리지 못했다는 이야기, 맨손으로 검을 놓게 했다는 이야기, 변경에서 나타난 이름 없는 고수가 정체를 숨기고 있다는 이야기가 벌써 서로 다른 모양으로 불어나고 있었다.
막동이 혀를 차며 웃었다.
“오늘 밤이면 성시의 객잔마다 형씨 이름이 한 번씩은 오르겠구려.”
풍은 웃지 못했다. 이름을 얻으면 노하촌의 어둠을 좇을 명분도 커지겠지만, 그 이름을 따라 장부와 반지의 흔적을 캐려는 눈도 늘어날 터였다. 첫 승리는 끝이 아니라 더 좁고 위험한 길의 입구였다.
첫날의 해가 저물기도 전에, 무명이던 단풍의 이름은 이미 연무장 밖으로 번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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