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뜰 무렵, 포획용 그물은 흔적만 남았다.
굵은 쇠사슬은 문을 걸어 잠글 빗장 고리로 나뉘었고, 촘촘히 얽혔던 철선은 펴져 방책을 묶는 죔쇠가 되었다. 미늘은 잘라내 못대가리 아래에 덧댈 쐐기로 썼다.
강무진은 마지막 철선을 집게로 당겼다.
붉게 달아오른 쇠가 가늘게 늘어났지만 힘으로만 펴면 중간이 먼저 끊어질 물건이었다. 마족이 값싼 광석을 급히 녹인 탓에 철선에는 불순물이 많이 남아 있었고, 탄소는 고르지 않은 데다 몇 군데에는 식으면서 생긴 미세한 균열도 있었다.
강무진은 손끝으로 그 결을 느꼈다.
금속 안쪽에 엉킨 부분이 손바닥의 잔가시처럼 걸렸다. 망치로 두드릴 곳과 피할 곳을 정한 뒤, 도리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작은 망치.”
“그건 못으로도 못 쓰겠는데.”
도리아가 망치를 건네며 말했다.
“못으로 안 씁니다.”
강무진은 철선을 납작하게 펴면서 끊어지기 직전의 부분을 잘라내고, 남은 조각을 고리 모양으로 말았다.
“화살촉 자루를 묶을 겁니다.”
“크흠. 버릴 게 없군.”
“버릴 쇠는 없습니다. 용도를 잘못 찾은 쇠가 있을 뿐입니다.”
도리아가 수염 끝을 비틀었다.
“그 말, 우리 집안 늙은이들이 들으면 족보에 새기겠어.”
강무진은 대꾸하지 않고 고리를 물통에 담갔다. 짧은 소리와 함께 흰 김이 피어올랐다.
화로 너머에서는 라칸이 사람들을 세워놓고 있었다.
밤중에 앞으로 나왔던 이들 가운데 열셋이 남았는데, 장작 도끼를 든 청년과 하몬도 그 안에 있었다. 수인 여자는 아이를 업은 채 나무 창을 쥐었다. 강무진이 보기에는 군대라 부르기 어려웠다. 서 있는 간격부터 제각각이었고, 발을 어느 쪽으로 내밀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라칸은 그들에게 무기를 휘두르게 하지 않고 북서쪽 비탈 아래까지 달려갔다 돌아오게 했다.
세 번이었다.
두 번째부터 줄이 길게 벌어졌으며 세 번째에는 절반이 허리를 굽혔다. 하몬은 맨 뒤로 처졌으나 멈추지 않았고, 라칸은 기다려주지도 재촉하지도 않은 채 전원이 주춧돌 앞에 돌아온 뒤에야 입을 열었다.
“적은 숨 돌릴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아.”
장작 도끼를 든 청년이 거친 숨을 삼켰다.
“그럼 쉬지 말고 싸워야 합니까?”
“아니. 쫓기기 전에 쉴 곳을 골라야지.”
라칸은 북서쪽 비탈과 아직 낮은 방벽을 번갈아 가리켰다.
“저기서 밀리면 화로까지 달린다. 화로에서 밀리면 천막까지 간다. 천막 뒤에는 애들이 있어. 그러니까 밀릴 자리를 네가 정해. 적이 정하게 두지 마.”
강무진은 식은 고리를 바구니에 넣었다.
라칸은 싸움을 가르치기 전에 물러설 곳부터 가르치고 있었다. 살아남아 본 자의 방식이었다.
그때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실바나는 밤새 구릉에 있었던 듯 망토 자락에 이슬을 달고 있었으며, 은빛 머리카락도 평소처럼 단정히 묶이지 않았다. 활은 등에 메었지만 오른손은 여전히 활끈 가까이에 머물러 있었다.
실바나는 잘린 그물 조각과 새로 만든 못을 보았다.
“모두 바꾸셨군요.”
“쓸 곳이 많습니다.”
“그물이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강무진은 못 하나를 집어 들었다. 표면에는 그물을 이루던 때 생긴, 잘 펴지지 않은 흠이 남아 있었다.
“사라질 필요도 없습니다.”
실바나의 시선이 못에 머물렀다.
“잡는 데 쓰였던 쇠입니다.”
“이제 막는 데 씁니다.”
“용도를 바꾸면 과거도 달라집니까?”
“과거는 그대로입니다.”
강무진은 못을 바구니에 내려놓았다.
“다음에 무엇을 하느냐가 달라집니다.”
실바나의 손가락이 활끈에서 떨어졌다. 그는 잠시 화로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는 숲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도리아가 풀무 손잡이를 놓았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판자에 글을 적던 로젠도 고개를 들었다.
강무진은 실바나를 보았다.
“언제 갑니까?”
“오늘 떠나겠습니다.”
“급하군요.”
“어젯밤 정찰대는 일곱이었습니다. 그들이 돌아가지 않으면 더 많은 병력이 확인하러 올 것입니다. 정령길을 타고 쉬지 않으면 숲과 이곳을 왕복하는 데 이틀이 필요합니다. 원로회의 답을 그 안에 받아야 하니 이미 늦었을지도 모릅니다.”
실바나는 평소처럼 느리고 분명하게 말했지만, 활을 쥔 왼손 엄지는 같은 자리를 두 번 문질렀다.
강무진은 그 작은 움직임을 보았다.
“무엇을 요청할 생각입니까?”
“우선 강철보루의 존재를 정식으로 보고하겠습니다. 그다음에는 지원을 요청하겠습니다.”
로젠이 판자를 내려놓고 다가왔다.
“병력 지원입니까?”
“궁수와 정령술사, 가능하다면 숲의 경계를 맡는 추적자도 요청할 생각입니다.”
“원로회가 받아들이겠습니까?”
실바나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바람이 북쪽에서 불어오자 그의 망토에 밴 숲 냄새가 숯과 쇠 냄새 사이로 스쳤다.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로젠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이유를 들어도 되겠습니까?”
“인간이 세운 거점이기 때문입니다.”
라칸이 훈련을 멈추지 않은 채 이쪽을 힐끗 보았고, 도리아는 코로 짧게 숨을 뿜었다.
실바나는 강무진에게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원로회는 인간의 약속을 믿지 않습니다. 필요할 때 숲의 길을 빌려달라 말하고, 길이 넓어지면 그 곁의 나무를 벱니다. 마족을 막기 위해 성벽을 허락해달라 청하고, 성벽이 완성되면 숲을 향해 문을 냅니다.”
“우리는 아직 문도 없습니다.”
도리아가 걸걸하게 말했다.
“바닥에 구멍만 파놓은 걸 보고도 경계한다는 건가?”
“그 구멍이 무엇의 기초인지 묻는 것이 원로회의 역할입니다.”
“방벽 기초지.”
“드워프에게는 그렇겠지요.”
도리아의 눈썹이 꿈틀했으나 실바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강무진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못 바구니를 보았다. 같은 쇠도 쓰는 자에 따라 문이 되고 족쇄가 되었으니, 숲의 불신도 까닭 없이 생긴 것이 아니었다.
“엘프만 지키는 방벽으로 보일 겁니까?”
강무진이 물었다.
실바나의 손이 멈췄다.
“아닙니다.”
“인간만 지키는 방벽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강무진은 라칸 쪽을 보았다. 늑대수인과 인간, 이름 모를 아인종들이 같은 비탈을 뛰는 동안 화로 옆에서는 아이샤가 작은 집게로 못을 분류하고 있었다. 뜨거운 것과 식은 것을 구분하는 손놀림이 전보다 빨라졌다.
“본 대로 말하면 됩니다.”
실바나가 낮게 물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과장하면 쇠가 약해집니다.”
강무진은 불순물이 많은 철선 조각을 집었다.
“감춘다고 강해지지도 않습니다.”
실바나의 눈이 가늘어지며 시선이 철선에서 강무진의 손으로 옮겨갔다.
강무진의 손등에는 전생의 화로에서 얻은 오래된 화상 자국과 이곳의 쇠가 남긴 새 상처가 겹쳐 있었다. 그는 남에게 보여주려고 손을 내민 적이 없었다. 손은 물건을 만들기 위해 있었고, 완성된 물건이 설명을 대신했다.
실바나는 그 손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제가 본 것을 그대로 전하겠습니다.”
그의 말이 한결 느려졌다.
“노예 상단에 붙잡혀 있던 제 동족을 구한 사람이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말하겠습니다. 그 뒤 대가를 요구하지 않았다는 것도 말하겠습니다.”
라칸의 귀가 이쪽으로 기울었다.
“늑대수인에게 검을 맡기고, 드워프와 한 화로를 쓰며, 이름조차 없던 아이에게 망치를 쥐여준 일도 전하겠습니다.”
아이샤가 고개를 들었는데, 집게 끝에는 작은 못 하나가 매달려 있었다.
실바나는 아이샤를 잠깐 보았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곳의 인간들이 모두 당신과 같지는 않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겠습니다. 어제 줄을 선 이들 가운데는 저를 보고 귀가 뾰족하다고 수군거린 사람도 있었습니다. 숲의 땔감을 당연히 자신들이 쓸 수 있다고 여긴 자도 있었습니다.”
로젠은 그 말을 듣고 판자에 무언가를 적었고, 실바나는 계속했다.
“이곳이 아직 완성된 공존의 증거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그 가능성을 시험할 가치가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그거면 됩니다.”
강무진이 말했다.
실바나의 활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이번에는 감추려 하지 않았다.
“강무진 님은 원로회를 모릅니다.”
“모릅니다.”
“그들은 한 번 의심하면 한 세대 동안 지켜봅니다. 인간에게 한 세대는 평생에 가깝지만, 우리에게는 결정을 서두르지 않을 이유가 됩니다.”
“기다릴 수는 없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가는 겁니까?”
실바나는 북쪽 숲을 바라보았다.
“저는 사절입니다. 관찰한 것을 보고하는 것이 제 의무였습니다.”
그는 허리의 화살통을 바로잡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보고하는 데서 그치지 않을 생각입니다.”
로젠이 물었다.
“원로회를 설득하시겠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짧은 대답이었다.
강무진은 실바나의 옆얼굴을 보았다. 그는 여전히 표정을 드러내지 않았으나 북쪽을 향한 발끝은 이미 돌아가 있었다.
관찰자는 본 것을 전하면 책임을 다했다. 중재자는 서로 듣지 않으려는 말을 양쪽에 옮겨야 했는데, 그 길은 활을 쏘는 것보다 오래 걸리고 표적도 분명하지 않았다.
실바나는 그 길을 택했다.
“호의적인 답을 약속드릴 수는 없습니다.”
“약속하지 마십시오.”
“원군을 데려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도 압니다.”
“그런데도 보내시겠습니까?”
강무진은 잠시 실바나를 바라보았다.
“붙잡을 이유가 없습니다.”
실바나의 눈썹이 아주 조금 올라갔다.
“동료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말씀으로 이해하겠습니다.”
“숲의 길은 당신이 더 잘 압니다.”
도리아가 웃음을 터뜨렸다.
“크흠, 저 인간 말은 늘 듣는 쪽이 절반을 만들어야 한다니까.”
로젠이 옅게 미소 지었다.
“나머지 절반을 잘못 붙이지 않는 것도 저희 역할이겠지요.”
실바나는 두 사람을 차례로 보았다. 입가가 움직인 듯했으나 웃음이라 단정하기에는 짧았다.
출발 준비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실바나가 천막에서 말린 열매와 약초 꾸러미를 챙기는 동안, 로젠은 강철보루 주변의 지형을 그린 지도를 내밀었다. 방벽 예정선과 정찰대가 접근한 길, 피난민들이 넘어온 마을의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원로회에 보여주셔도 됩니다.”
로젠이 말했다.
“방어 배치까지 공개해도 되겠습니까?”
“지원 여부를 결정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다만 이 지도가 마족의 손에 들어가면 곤란합니다.”
“그전에 태우겠습니다.”
실바나는 지도를 방수 가죽 안쪽에 넣었다.
“제가 떠난 뒤 새 정보가 생기면 북쪽 숲 경계의 은빛 매듭에 봉인 쇠찰을 걸어 두십시오. 남겨 둔 바람 정령이 원로회 길목까지 가져옵니다.”
로젠은 전달 내용에 보루 서기의 인장과 작성 시각을 함께 남기겠다고 답했다.
라칸은 훈련 중 쓰던 나무 창을 내려놓고 다가와 실바나에게 작은 칼 하나를 건넸다. 마족 정찰대에게서 빼앗은 물건이었으나 칼날은 새로 갈려 있었다.
“숲에서 칼 쓸 일이 있나 모르겠는데.”
“엘프도 줄을 자르고 나뭇가지를 깎습니다.”
“사람 찌르는 데도 쓰고.”
“그럴 필요가 없기를 바랍니다.”
“필요하면 망설이지 말고.”
실바나는 칼을 받아 허리 뒤에 꽂았다.
“조언은 기억하겠습니다.”
라칸은 목덜미를 긁다가 덧붙였다.
“숲 늙은이들이 안 믿으면, 여기 직접 와서 보라 그래.”
“원로들을 늙은이라 부르지는 않겠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잖아.”
“외교에는 틀리지 않은 말보다 하지 않는 편이 나은 말이 더 많습니다.”
라칸이 강무진을 바라보았다.
“저 말, 당신도 좀 배워.”
강무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이샤는 실바나가 떠날 채비를 하는 동안 계속 화로 주변을 맴돌았다. 할 말이 있는 얼굴이었지만 먼저 입을 열지 않았다.
실바나가 배낭끈을 조인 뒤 무릎을 굽혀 아이샤와 눈높이를 맞췄다.
“무엇을 보고 있었습니까?”
아이샤는 실바나의 활을 가리켰다.
“안 무거워?”
“익숙해지면 무겁지 않습니다.”
“망치랑 같네.”
“아마 그럴 것입니다.”
아이샤는 주머니를 뒤져 못 하나를 꺼냈다. 끝이 뭉툭하고 머리는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는데, 어제 강무진의 도움 없이 혼자 두드린 못이었다.
“이거 가져가.”
실바나는 못을 받지 않고 물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입니까?”
아이샤는 잠시 생각했다.
“돌아올 자리 표시.”
말은 짧았다.
실바나가 손바닥을 펴자 아이샤는 그 위에 못을 올려놓았다.
“그렇다면 반드시 가져오겠습니다.”
“잃어버려도 다시 만들면 돼.”
“그 말도 기억하겠습니다.”
실바나는 못을 지도와 같은 가죽 주머니에 넣었다.
강무진은 화로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못은 서툴렀고, 재료의 결을 읽지 못한 망치 자국이 많은 데다 끝의 각도도 맞지 않았다. 방벽에 박으면 곧게 들어가지 않을 물건이었다.
그래도 아이샤는 그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 손으로 만들었다.
쓸모는 만드는 순간에만 정해지지 않았다.
실바나가 북쪽 길로 들어설 때, 모두가 배웅하러 나오지는 않았다. 방벽을 쌓는 사람들은 돌을 날랐고 자경대는 비탈을 오르내렸으며, 도리아는 풀무 앞을 떠나지 않았다.
강철보루에서는 멈출 일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강무진만 길 입구까지 실바나와 함께 걸었다.
낮은 구릉을 넘자 화로의 소리가 멀어졌다. 북쪽에는 짙은 숲이 수평선을 따라 이어졌고, 숲까지 길게 열린 초원에는 마족 정찰대가 지나간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실바나는 풀잎이 눕는 방향을 살폈다.
“그들은 북서쪽에서 왔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숲으로 향한 흔적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다음 정찰대는 길을 달리 잡을 수 있습니다.”
“혼자 가도 됩니까?”
“혼자이기 때문에 더 빠르게 갈 수 있습니다.”
그는 화살통을 두드렸다.
“그리고 저는 아직 보호받아야 할 만큼 늙지 않았습니다.”
강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숲의 사절에게 인간식 걱정을 덧붙이는 것은 예의가 아닐 수 있었기에, 그는 대신 허리춤에서 가느다란 물건 하나를 꺼냈다.
화살촉이었다.
어젯밤 그물에서 잘라낸 철선을 여러 겹 접어 두드린 것이었다. 철의 순도가 낮아 날 전체로 쓰지는 못했으므로, 강무진은 안쪽의 불순물을 밀어내고 끝부분에만 단단한 결을 모았다. 목이 긴 형태라 갑옷 틈이나 가죽끈을 끊는 데 적합했다.
화살촉 밑에는 강무진의 작은 각인이 찍혀 있었다.
“시험작입니다.”
실바나는 화살촉을 받아 손가락 사이에서 돌려보았다.
“무엇을 시험합니까?”
“나쁜 쇠가 어디까지 쓸모 있는지.”
“결과는요?”
“쏴봐야 압니다.”
실바나는 화살 하나를 꺼내 기존 촉을 빼고 새 화살촉을 끼운 뒤, 아이샤가 분류한 철제 고리로 자루를 단단히 조였다.
그는 길가에서 죽은 나무를 골랐다.
거리는 백 걸음이 넘었으며 가지 사이로 드러난 줄기 폭은 손바닥 둘을 합친 정도였다.
활이 휘었다.
시위가 울리자 화살이 바람을 갈라 줄기 한가운데 박혔다. 화살촉은 단단한 겉껍질을 뚫고 절반 이상 들어갔고, 자루가 오래 떨리는 동안에도 촉은 빠지지 않았다.
실바나는 한동안 표적을 보았다.
“숲의 장인들이 보면 재료가 나쁘다고 먼저 말할 것입니다.”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다음에는 이 형태를 누가 만들었는지 물을 것입니다.”
“보면 압니다.”
각인이 있으니 이름을 길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실바나는 활을 등에 멨다.
“당신은 말보다 쇠를 먼저 보내는군요.”
“쇠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사람은 합니까?”
“합니다.”
“당신도 그렇습니까?”
강무진은 잠시 생각했다.
“필요 없는 말은 안 합니다.”
실바나의 입가에 이번에는 분명한 미소가 스쳤다.
“그것이 대답이라고 전하겠습니다.”
그는 몸을 돌려 북쪽으로 걸었다.
몇 걸음 뒤, 실바나가 멈췄다.
“원로회가 거부하더라도 저는 돌아오겠습니다.”
강무진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실바나는 다시 걸었고, 은빛 머리카락이 초원 끝에서 가늘어졌다. 숲의 그림자가 그를 삼킬 때까지 강무진은 자리를 지켰다.
돌아오는 길에는 바람이 거세졌다.
강철보루의 화로 연기가 한쪽으로 길게 누운 가운데, 방벽 위에서는 사람들이 돌을 맞추고 있었고 라칸의 고함이 비탈을 울렸다. 도리아의 망치 소리는 일정했다.
달라진 것은 한 사람의 빈자리뿐이었다.
그러나 강무진은 화로 가까이에 이르기 전 걸음을 멈췄다.
땅속에서 희미한 떨림이 전해졌다.
바람이나 말발굽의 진동이 아니었다. 여러 금속 조각이 일정한 간격으로 움직일 때 생기는, 묵직하고 거친 울림이었다. 수레바퀴의 철테와 솥, 농기구가 한데 부딪치는 소리 사이로 무기 몇 자루의 가벼운 진동이 섞여 있었다.
아직 멀었다.
어젯밤의 일곱보다 많았다.
강무진은 북서쪽 비탈을 바라보았다. 실바나가 떠난 숲길과는 다른 방향이었다.
로젠이 판자를 들고 다가오다가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무엇이 있습니까?”
강무진은 땅에 손을 짚고 흙 아래로 번지는 금속의 진동을 다시 세었다. 거리가 먼 데다 광맥에서 올라오는 감각과 겹쳐 수레에 무엇을 실었고 무장한 사람이 몇인지는 아직 가르기 어려웠다. 다만 전투 대열처럼 빠르지도 고르지도 않았다.
누군가 살림을 싣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그중 몇 개는 사람이 들고 다닐 만한 무게가 아니었다.
“손님이 옵니다.”
로젠의 얼굴에서 피로가 사라졌다.
“언제쯤입니까?”
강무진은 손을 떼고 일어섰다.
낮은 방벽과 열린 비탈, 쌓이지 않은 돌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화로는 하나였고 실바나는 떠났으며, 자경대는 이제 막 서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준비한 뒤에 올 만큼 친절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화로를 향해 걸었다.
멀리 북서쪽 땅속에서, 무거운 쇠가 다시 한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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