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소재는 전날 일정한 굵기로 뽑아 둔 사각 막대였다.
길이와 폭, 투겁의 안지름은 기준 창촉에 맞춰 정해 두었고, 분업 순서와 공정별 검수 원칙도 세워졌다. 다만 그 치수가 실제 타격과 담금질을 견디는지, 어느 정도의 오차까지 전장에 내보낼 수 있는지는 아직 쇠로 증명되지 않았다.
강무진은 사각 막대를 화로에 넣기 전, 새벽에 돌아온 정찰조의 장비 목록부터 헤아렸다. 갑옷과 창을 실은 본대에서 말 편자와 기병도, 화살촉과 짐수레 차축이 가벼운 선봉으로 떨어져 더 빠르게 남하하고 있었다.
라칸은 진흙 묻은 정찰 보고와 지도를 작업대 위에 펼치며 북쪽 길목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선봉만 떼면 열흘입니다. 빠르면 아홉 날. 놈들이 길을 닦으며 오면 그 뒤로 본대가 붙겠죠.”
도리아가 수염에 묻은 숯가루를 털었다.
“보름도 모자라다더니, 적이 닷새를 깎아 주는군.”
강철보루 거주자는 새 피난민 열넷이 합류한 뒤 이백두 명이 되었다. 열넷 모두 일을 맡아 자경대·공역 명부에 오른 사람은 백마흔두 명으로 늘었고, 정식 전투조는 서른여덟 명, 훈련 예비조는 스물셋이었다. 나머지 근무 등록자도 대부분 경계와 수송, 공병과 취사를 맡아야 했으며 망가진 장비를 당장 교체할 여유도 없었다. 선봉이 열흘 뒤에 닿는다면 장인 한 사람이 한 자루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지는 방식으로는 늦었다.
“열흘 안에 첫 물량을 냅니다.”
도리아가 코웃음을 쳤다.
“첫 물량이 어느 정도인가?”
“전투조 전원의 창과 방패. 예비조가 나눠 입을 갑옷까지.”
“불도 덜 길들였고 사람도 초짜야.”
“그래서 사람보다 기준을 먼저 세웠습니다.”
강무진은 사각 막대를 화로 속으로 밀어 넣었다.
새로 작업장에 들어온 일손은 열넷이었다. 인간이 여덟, 드워프가 둘, 염소 뿔이 난 아인종이 셋, 너구리수인이 하나였으며 대장장이로 일해 본 이는 드워프 둘뿐이었다. 나머지는 목수와 마부, 광부, 농부였고 평소라면 망치를 쥐기 전에 숯을 고르는 법부터 몇 달씩 배워야 할 사람들이었다.
화로 속 쇠가 천천히 붉어지자 강무진은 눈을 감고 표면에서 중심으로 스며드는 열을 더듬었고 겉의 결정은 이미 느슨해졌지만 안쪽에는 찬 결이 남아 있었다. 지금 꺼내면 표면만 먼저 늘어나 중심을 따라 균열이 생길 터였다.
집게를 뻗던 견습공에게 그가 말했다.
“아직입니다.”
사내가 손을 멈추자 도리아는 반대편 송풍구를 조절했고 풀무에서 밀려든 바람이 숯 사이를 파고들면서 불꽃을 짧고 푸르게 일으켰다.
“공구용 강철까지 같은 자리에 넣지 마라! 저쪽은 먹어야 할 불이 다르다. 크흠, 색도 못 읽는 놈이 쇠부터 꺼내면 손에는 잡철만 남아!”
도리아의 고함이 대장간을 울리는 동안 강무진은 중심까지 열이 고르게 찬 순간을 기다렸다가 소재를 모루 위에 놓았다.
“첫 공정에서는 길이와 폭만 맞춥니다.”
망치가 내려갔다.
쾅.
첫 타격으로 달군 쇠가 납작해졌고, 소재를 돌려 내린 두 번째 망치질은 폭을 잡았으며 세 번째에는 창촉의 목이 될 부분이 좁아졌다. 예전 같으면 그대로 형상을 이어 갔겠지만 강무진은 망치를 내려놓고 집게째 다음 사람에게 건넸다.
인간 광부였다는 사내가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제가 합니까?”
“쇠자에 맞추십시오.”
작업대에는 전날 치수를 옮긴 철제 기준자가 놓여 있었으며 사내가 소재를 홈에 가져다 대자 끝이 손가락 한 마디만큼 길었다.
“어디를 쳐야 합니까?”
“긴 곳이 아니라 두꺼운 곳입니다. 여기서 쇠를 밀어내면 길이가 맞습니다.”
강무진의 망치 자루 끝이 소재 가운데를 가리켰고 사내의 첫 타격은 비껴갔고, 두 번째는 지나치게 강해 한쪽 면을 불룩하게 만들었다.
도리아의 콧김이 거칠어졌다.
“그걸 타격이라고—”
강무진이 손을 들어 말을 막았다.
“다시 달굽니다.”
광부가 일그러진 소재를 내려다보았다.
“망친 것 아닙니까?”
“쇠는 한 번 빗나갔다고 끝나지 않습니다.”
화로로 돌아가는 소재의 안쪽을 살피니 결은 흐트러졌지만 균열은 아직 없었고 불룩해진 면을 반대쪽에서 눌러 주면 살릴 수 있었다.
“다음에는 망치 면을 세우지 마십시오. 팔로 찍지 말고 무게를 떨어뜨립니다.”
“예.”
다시 꺼낸 쇠 위로 세 번째 타격이 떨어졌고 완벽하지는 않았으나 소재가 기준자의 홈에 들어가자 강무진은 곧바로 다음 공정에 넘겼다.
드워프 장인이 홈을 판 틀 위에서 양쪽 날개를 벌렸고, 이어 너구리수인이 투겁이 될 부분을 원통형 말이쇠에 감았다. 마지막에는 도리아가 이음새를 두 차례 두드려 붙였으니, 창촉 하나에 여섯 사람의 손이 닿은 셈이었다.
완성된 첫 시제품은 도면보다 조금 무거웠다. 중심 능선도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으며 강무진이 내부의 결을 읽자 날개 뿌리에 응력이 고르지 않게 몰려 있었다. 그대로 담금질하면 왼쪽이 먼저 오그라들면서 끝이 틀어질 상태였다.
그는 능선 옆을 두 번 가볍게 두드렸고 눈으로는 알아보기 힘든 수정이었으나 안쪽에서 서로 밀어내던 결은 그 타격을 따라 제자리로 돌아갔다.
“담금질합니다.”
도리아가 직접 집게를 잡았다.
창촉이 다시 달아오르면서 밝은 주황색이던 표면이 한 단계 가라앉았고 지나치게 뜨거우면 입자가 거칠어지고, 모자라면 두꺼운 중심부까지 굳지 않았다. 강무진은 자성을 잃어 가는 쇠의 상태를 손끝으로 더듬다가 짧게 말했다.
“지금.”
도리아가 창촉을 기름에 담갔다.
치익!
매캐한 연기가 천장을 뒤덮었다. 얇은 날과 두꺼운 능선이 서로 다른 속도로 식는 가운데 투겁 안으로 스며든 기름에서 기포가 터지자 강무진은 집게 끝을 밀어 각도를 바꾸었다. 고여 있던 기름이 빠지고 연기가 잦아든 뒤 드러난 창촉은 휘지 않았다.
도리아는 숫돌에 끝을 세워 짧은 자루에 끼우더니 참나무 토막을 향해 힘껏 내리쳤다.
퍽.
창끝이 깊이 박혔다. 그가 자루를 옆으로 비틀자 나무가 삐걱거렸으나 날개 뿌리는 갈라지지 않았고 투겁의 이음새도 벌어지지 않았다.
“썩 아름답지는 않군.”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래도 쇠맛은 있네.”
첫 시제품 옆에는 실패품을 담을 상자가 놓여 있었으며 도리아는 두 곳을 번갈아 보더니 창촉을 시제품 쪽으로 밀었다.
“통과다.”
작업장 안에서 참았던 숨이 한꺼번에 빠져나왔다. 그러나 강무진은 웃지 않았다. 견본 하나로는 병사 한 명만 무장시킬 수 있었고, 북쪽에서는 그 수십 배에 이르는 쇠가 계속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소재를 넣습니다.”
화로 셋이 동시에 열렸다.
둘째 날 창촉 열아홉 중 여섯, 셋째 날 서른둘 중 일곱이 탈락했다. 손은 빨라졌지만 서로 다른 화로 온도 때문에 속이 덜 익거나 결이 거칠어진 쇠가 섞였다. 도리아가 멀쩡해 보이는 실패품을 모루에 내리치자 날개 뿌리가 쨍 하고 갈라졌다.
셋째 날 해 질 무렵에는 전진 감시조의 목판이 연달아 도착했다. 본대에서 먼저 떨어져 나왔던 선봉의 수레 자국이 남쪽 갈림길에서 끊기고 북서쪽 집결지로 되돌아갔으며, 그 아래로 새로 이어진 남하 흔적은 없었다. 적이 전력을 다시 합치거나 보급을 기다리는 것으로 보였지만, 라칸은 기만일 가능성을 지우지 않았다. 강무진도 처음 정한 열흘을 늦추지 않고 생산과 경계를 그대로 밀어붙였다.
“이런 걸 보내면 병사는 이유도 모르고 죽어.”
강무진은 공정별 색판과 탄소 함량이 다른 시험봉을 나란히 세웠다. 눈으로 색을 읽고, 손으로 시험봉의 휨을 확인하게 했다.
“드워프 견습은 이런 것 없이도 배워.”
“몇 년 걸립니까?”
“십 년.”
“남은 날은 일곱입니다.”
그날부터 불량이 줄었다. 창촉 기준은 둥글게 말아 충격을 흘리는 방패 철테와 교환 가능한 갑옷 조각으로 확장됐다. 아이샤도 화로 가까이 작은 모루를 옮겨 시험봉으로 온도를 확인한 뒤 방패끈 죔쇠를 만들었다. 네 번째 쇳조각이 기준자 홈에 들어가고 비틀림까지 버티자 강무진이 아이의 손바닥에 돌려주었다.
“됩니다.”
아이샤는 웃는 대신 다음 소재를 집었다.
그때 북쪽 망루의 종이 울렸다.
한 번 길고, 두 번 짧았다.
적 발견 신호였다.
작업장 안에서 망치질이 끊겼고 곧이어 라칸의 고함이 앞마당을 가로질렀다.
“전투조는 북벽! 예비조는 주민들을 안쪽으로 물려! 대장간 불부터 줄여!”
사람들이 한꺼번에 문으로 몰리려 하자 강무진이 작업대를 망치 자루로 내리쳤다.
쾅!
“달군 쇠부터 치웁니다. 집게를 놓고 뛰지 마십시오.”
놀라 멈춘 이들이 다시 움직였고 성형 중이던 소재는 모래통에 묻혔고 기름통에는 뚜껑이 덮였으며, 풀무를 멈춘 뒤 숯 위로 흙이 뿌려졌다. 초보자들이 대피하는 사이 도리아와 드워프 장인 둘은 화로에 남아 불길이 번지지 않을 만큼 숨을 눌렀다.
강무진은 북쪽 구릉을 향해 감각을 뻗었고 말 편자 스물 남짓이 두 갈래로 갈라지고 있었고, 그중 일부는 숲 가장자리를 타고 동쪽으로 돌았다. 기병도와 화살촉이 섞여 있었으나 공성 장비는 느껴지지 않았다.
“정찰대입니다. 셋은 동쪽으로 돕니다.”
라칸이 방패를 들어 올렸다.
“문을 떠보려는 놈들이군. 곁에 붙으실 겁니까?”
“여기서 봅니다. 쇠가 성벽에 닿으면 말하겠습니다.”
라칸은 더 묻지 않고 북벽으로 달려갔다.
잠시 뒤 구릉 위로 마족 기병의 검은 형체가 나타났다. 그들은 성벽의 사거리 밖에서 흩어져 보루의 규모와 출입구를 살폈으며, 둘은 말에서 내려 북쪽 길의 수레바퀴 자국을 확인했다.
실바나의 화살이 그들 앞 땅에 박혔다.
경고를 알아듣지 못할 거리는 아니었다. 그런데도 마족 기병 셋이 말머리를 돌려 동쪽 목책으로 내달렸고, 나머지는 북쪽에서 활을 들어 성벽 위의 대응을 재려 했다.
“동쪽에 셋!”
망루의 외침과 함께 화살촉들이 날아왔고 몇 발은 방패에 박혔지만 하나는 대장간 지붕을 넘어 앞마당 숯가마를 덮은 마른 짚에 꽂혔다.
연기가 솟자 남아 있던 인부들이 물통을 들고 뛰었다. 불길은 크지 않았으나 짚을 걷어 내고 젖은 흙을 덮는 사이 식혀 두었던 소재 한 묶음이 발에 차여 진흙탕으로 쏟아졌다.
북벽에서는 실바나의 활이 다시 울렸다. 구릉 아래까지 내려온 말 한 필이 앞발을 들며 멈췄고, 라칸이 이끄는 방패대가 동쪽 목책 뒤로 모습을 드러내자 정찰대는 더 접근하지 않았다. 그들은 보루 둘레를 반 바퀴 돈 뒤 북쪽 숲으로 물러났다.
경계 해제는 해가 중천을 지난 뒤에야 울렸다. 급히 죽인 화로와 진흙탕에 떨어진 소재 때문에 반나절이 사라졌다.
강무진은 손실을 만회하려 담금질을 서두르지 않았다. 경보가 울리면 두 사람은 불을 지키고 두 사람은 가연물을 치우며, 나머지만 대피하도록 공정을 새로 나눴다. 불을 쓰지 않는 조립과 검수는 밤으로 옮겼고 목수들은 철테를 기다리지 않고 규격 나무판부터 쌓았다.
아이샤가 만든 죔쇠도 방패끈을 세 차례 내리쳐 검수한 뒤 실전 상자로 들어갔다. 정찰대가 훔친 반나절은 공정을 바꾸는 기준이 되었고, 숙련자는 담금질과 최종 검수에 집중했다.
열흘째 아침, 대장간 앞마당에는 창촉 이백여 개와 방패 일흔 장, 수백 개의 조립식 갑옷 조각이 놓였다. 정식 전투조 서른여덟 명의 장비가 먼저 완성됐고, 다음 물량은 예비조 스물셋에게 돌아갈 예정이었다.
강무진은 무작위로 뽑은 창촉 열 개 가운데 결이 빈 하나를 다시 녹일 상자에 던졌다. 나머지 아홉에는 자신의 각인 아래 짧은 가로선을 새겼다. 여러 사람의 손으로 완성했다는 표식이었다.
그때 북쪽 구릉에 검은 기병 셋이 다시 나타났다. 며칠 전 불화살로 반나절을 훔쳐 간 정찰병들이었다.
라칸은 새 방패 일흔 장을 한 줄로 세웠다. 구령 한 번에 철테가 동시에 맞물렸고, 방패 뒤의 서른여덟 자루 창이 같은 높이로 튀어나왔다. 열흘 전에는 창 하나를 만들 때마다 장인을 기다려야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부품을 갈아 끼우며 하나의 벽을 세웠다.
“받쳐!”
도리아가 시험용 통나무를 굴리자 방패벽 전체가 굉음을 내며 충격을 받았다. 나무판은 휘었지만 둥글게 말아 올린 철테가 힘을 양옆으로 흘렸고, 끊어진 가죽끈 하나는 아이샤가 만든 죔쇠에서 빠지지 않았다. 아이는 방패 뒤에서 두 손으로 끈을 붙든 채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다.
“창!”
서른여덟 자루가 동시에 참나무 표적을 찔렀다. 서로 다른 인간과 드워프, 수인과 아인종의 손에서 나온 창촉들이 한 번의 충격으로 박혔다. 울림이 성벽을 타고 북쪽 구릉까지 번지자 정찰 기병들은 더 다가오지 않고 말머리를 돌렸다.
도리아가 방패에서 아이샤의 죔쇠를 빼내 비틀었다. 쇠는 휘지 않았고 금도 가지 않았다.
“검수 통과다.”
아이샤가 숨을 삼켰다. 강무진은 죔쇠의 좁은 면에 공동 제작 표식과 아이샤의 비뚤어진 선을 나란히 새겼다.
도리아는 앞마당을 채운 장비와 아직 떨리는 방패벽을 돌아보았다.
“한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지 않아도 같은 쓰임을 내는 법. 드워프식 말이쇠와 자네 시험봉, 조립식 갑옷, 저 꼬맹이의 죔쇠까지 전부 묶였군.”
그가 창촉 하나를 높이 들었다.
“강철보루류라 하세.”
주변의 망치질이 멎었다. 화로 앞에서 도리아가 기술에 이름을 붙이는 일은 농담이 아니었다.
“이름보다 쓰임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싫다는 건가?”
“아닙니다.”
강무진은 방패벽에 남은 통나무 자국을 보았다.
“그 이름이면 어디서, 무엇을 지키려고 만든 방식인지 알 수 있습니다.”
도리아의 웃음이 대장간 천장을 울렸다.
“그럼 정해졌군. 강철보루류다!”
아이샤는 자신의 표식이 찍힌 죔쇠를 엄지로 문질렀다.
“내 것도 그거야?”
“네가 만든 것도 벽을 버텼습니다.”
아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앞마당에서는 서른여덟 자루 창이 다시 한 번 같은 높이로 들렸다.
첫 방어전에 참가한 엘프 궁수 스물넷 가운데, 어깨를 다친 궁수가 이동할 만큼 회복되자 그를 포함한 열두 명은 전투 보고와 부상자 귀환을 맡아 숲으로 돌아갔다. 나머지 궁수 열두 명은 강철보루에 남아 경계 교대를 이어 왔고, 연락과 정령술을 맡은 실바나는 그들과 별도로 보루에 머물렀다.
여행용 망토를 걸친 실바나가 대장간 문 앞에 나타난 것은 그날 저녁이었고 그녀는 앞마당의 장비를 훑어본 뒤 표준 창촉 하나를 집어 들었다.
“원로회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번에는 시험 파견이 아니라 정식 병력을 요청할 생각입니다.”
강무진이 물었다.
“그 창촉을 가져갑니까?”
“말보다 오래 남을 증거가 필요합니다.”
실바나는 창촉을 천으로 감쌌다.
“그리고 증인도 필요합니다. 창촉만 가져가면 반대파는 인간이 꾸민 물건이라고 밀어붙일 겁니다. 합금의 결을 읽고 같은 규격을 다시 만들어 보일 수 있는 사람, 이 방식이 전쟁 준비에 실제로 쓰였다고 원로들 앞에서 답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건 당신밖에 없습니다.”
강무진은 멈추지 않고 이어지는 망치질을 들었고 도리아가 화로를 살폈고 아이샤는 새 죔쇠를 기준자에 맞추고 있었다. 이제 그가 자리를 비워도 공정은 멈추지 않을 터였다. 그는 북벽의 경계표와 작업표를 차례로 확인한 뒤 도리아와 라칸을 불렀다.
떠나기로 정하기 전에 강무진은 북벽에서 감각을 한계까지 펼쳤다. 약 백오십 보 안에는 낮의 탐색을 끝내고 물러나는 정찰대의 말 편자만 걸렸고, 그 너머 본대의 위치는 감각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대신 전진 감시조 세 곳의 최신 목판은 선봉이 되돌아간 뒤 본대와 합쳐진 북서쪽 집결지에서 모든 수레가 멈췄고, 남쪽 갈림길에도 새 바퀴 자국이 없다고 기록했다. 처음 잡은 열흘은 적이 쉬지 않고 남하할 때의 최악을 가정한 기한이었고, 지금은 선봉을 포함한 적 병력이 집결을 위해 방향을 틀었다는 판단을 세 보고가 뒷받침했다.
“닷새 안에 돌아오겠습니다. 도리아는 생산과 최종 검수를, 라칸은 경계와 장비 배치를 맡아 주십시오. 전진 감시조가 선봉을 포함한 적 병력의 남하 재개를 알리면 전령을 보내십시오. 회의 중이라도 즉시 돌아오겠습니다.”
두 사람이 각자 맡을 표를 받아 들자 강무진은 실바나를 보았다.
“같이 가겠습니다.”
동이 트기 전, 강무진은 실바나와 함께 강철보루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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