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신, 대장장이 강무진

마지막 담금질 너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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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무진은 부러진 우산을 버리려는 손을 붙잡았다.

“그거 두고 가.”

철물점 주인이 문밖으로 내밀었던 우산을 도로 들였다. 검은 천이 뒤집힌 채 축 늘어져 있었다. 아침 돌풍에 살 두 개가 꺾였다는 물건이었다.

“선생님 댁에 우산 없어요?”
“우산은 있어.”
“그런데 이걸 뭐 하러.”

무진은 천을 걷고 부러진 자리를 살폈다. 가느다란 쇠가 납작하게 눌렸다가 끝으로 갈수록 얕은 골을 품었다. 손톱보다 좁은 폭에 제법 많은 궁리가 들어 있었다.

“여긴 휘어야 하고, 저긴 버텨야 하니까.”

그가 엄지로 온전한 살을 눌렀다. 쇠가 둥글게 휘었다가 손을 떼자 튕겨 돌아왔다.

“같은 굵기로 밀었으면 무겁기만 했겠지.”

철물점 주인은 그 모습을 보다가 웃었다.

“나라에서 상도 받은 양반이 남의 폐품 들고 제일 신났어.”
“상을 펴서 비를 막을 순 없잖아.”

무진은 우산값 대신 따뜻한 캔커피 두 개를 사서 하나를 주인에게 건넸다. 자기 것은 주머니에 넣었다. 걸어가는 동안 손이 따뜻했다.

공방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하천을 건넜다.

비가 그친 물 위로 보행교의 철제 뼈대가 드러났다. 무진은 난간 곁에 멈춰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길게 뻗은 부재 사이를 사선이 받치고 있었다. 자전거를 끄는 사람이 지나가자 판 아래에서 짧은 울림이 났다.

그는 난간을 잡은 손바닥으로 그 울림을 받았다.

곧게 버티는 것과 힘을 옆으로 건네는 것.

검의 슴베를 지나치게 두껍게 만들던 젊은 날이 떠올랐다. 부러지지 않게 하겠다고 쇠를 보탰더니 손목이 먼저 지쳤다. 남는 쇠를 덜어 내는 법을 배우는 데 몇 해가 걸렸다.

“선생님!”

다리 건너에서 제자 민석이 손을 흔들었다.

“또 다리 보고 계세요? 거래처에서 기다린다고 전화 왔는데요.”
“다리한테 배울 게 있어서.”
“지난번엔 식당 가위한테 배우셨잖아요.”
“그놈도 잘하더라.”

민석이 웃으며 우산을 받아 들었다.

“이건 왜 가져오셨어요?”
“펴 봐.”
“길에서요?”
“사람 없는 쪽으로.”

우산을 펼치자 꺾인 한쪽이 볼품없이 처졌다. 무진은 멀쩡한 살과 부러진 살을 차례로 짚었다.

“버티는 자리와 접히는 자리를 봐 둬. 칼만 보면 칼밖에 못 만든다.”

민석은 웃음을 거두고 쇠의 골을 들여다보았다. 무진은 먼저 걸었다. 제자가 뒤따라오는 발소리 사이로 하천 물이 돌을 두드렸다.

공방에는 젖은 숯 냄새와 기름 냄새가 배어 있었다.

벽에는 크기와 용도가 다른 집게가 걸렸고, 작업대 한쪽에는 완성을 앞둔 도검이 누워 있었다. 바깥 전시실에 놓인 상패보다 손때 묻은 공구가 훨씬 많았다. 무진이 좋은 물건을 사들이는 데 주저한 적은 없었다. 손에 맞는 망치를 만나면 값부터 묻지 않았다.

그는 우산을 구석에 세우고 앞치마를 둘렀다.

오늘 찾아온 손님은 음식점을 하는 부부였다. 남편은 신문에 실린 도검 사진을 기억했다. 아내는 싸 온 보자기에서 부엌칼을 꺼냈다.

“무거운 건 괜찮아요. 그런데 무를 자르면 손이 자꾸 이쪽으로 밀려요.”

무진은 칼을 바로 받지 않고 손부터 보았다.

검지 뿌리에 굳은살이 솟아 있었다. 손잡이 옆면을 받치는 중지는 붉게 쓸려 있었다.

“평소처럼 쥐어 보세요.”

아내가 칼을 잡았다. 손잡이의 배가 손바닥을 밀어내고 있었다. 엄지는 그 틈을 막으려고 힘껏 눌렸다.

무진이 민석에게 짧게 말했다.

“줄자.”

민석이 줄자를 당기다가 너무 길게 뽑았다. 얇은 강철 띠가 허공에 버티더니 끝에서 툭 꺾였다.

무진은 손님의 손을 살핀 뒤 줄자 띠를 한 번 뒤집어 보았다. 오목한 쪽을 누르자 쉽게 접혔다. 반대쪽은 제법 버텼다.

“넓히기만 할 게 아니었군.”

그는 작업대의 나무토막을 가져왔다. 손잡이 밑면에 얕은 홈을 파고 옆을 조금 깎았다. 손님이 다시 쥐었을 때 이번에는 손가락 끝까지 자연스럽게 감겼다.

“어머.”

아내가 빈 손잡이를 들고 손목을 움직였다.

“안 꽉 잡아도 되네요.”
“날까지 맞추면 더 편할 겁니다. 내일 찾아가세요.”

남편이 전시실 쪽으로 턱을 들었다.

“저기 긴 칼처럼 무늬도 넣어 주십니까?”
“원하시면.”
“칼값이 더 나오겠죠?”
“많이.”

아내가 남편의 팔을 쳤다.

“당신은 설거지도 안 하면서 무늬는 왜 골라.”

무진은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두 사람이 돌아간 뒤에도 작업대에 웃음이 남았다.

그는 부엌칼의 날을 빛에 비추었다. 끝 가까이는 단단해야 했다. 그렇다고 전체를 같은 성질로 밀어붙이면 얇은 몸이 충격을 견디지 못했다. 베는 자리와 힘을 받는 자리, 손으로 돌아오는 떨림까지 한 자루 안에서 어울려야 했다.

민석이 새 절삭 공구를 들고 왔다.

“이건 날 끝만 다른 재료네요.”
“몸까지 전부 그걸로 만들면?”
“비싸죠.”
“잘 깨지고.”

무진은 공구 끝을 손톱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한 가지가 다 잘할 필요는 없어. 붙여 놓고 서로 잘하게 하면 되지.”

그가 작은 확대경 아래로 날을 옮겼다. 눈가의 주름이 깊어졌다. 쇠를 볼 때면 예순을 넘긴 얼굴에서 세월보다 호기심이 먼저 보였다.

해 질 무렵, 마지막 담금질을 준비했다.

화로 안에서 숯이 붉게 숨을 쉬었다. 민석은 집게를 정리했고, 견학을 마친 직업학교 학생 셋이 출입구 옆에서 신발을 갈아 신었다. 인솔 교사는 학생들이 만든 작은 고리를 종이상자에 담았다.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망치 소리를 이렇게 좋아할 줄 몰랐어요.”
“귀마개는 꼭 챙기고.”
“네. 다음에는…….”

말이 끊겼다.

문밖에서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났다. 곧 유리창이 안으로 쏟아졌다.

무진은 집게를 놓았다.

옆 창고 쪽 창문이 주황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매캐한 연기가 천장 아래로 밀려들었다. 바닥을 타고 번진 불길이 출입구 앞에 고인 액체를 핥았다.

“뒤로 나가.”

그의 목소리는 낮았다.

민석이 학생 둘을 뒤쪽 문으로 이끌었다. 교사는 상자를 떨어뜨린 채 안을 돌아보았다.

“지훈이가 없어요.”

작업대 아래에서 기침이 터졌다.

유리 깨지는 소리에 놀란 학생 하나가 몸을 숨긴 것이었다. 무진이 허리를 숙여 손을 뻗자 학생은 덜덜 떨며 고개를 들었다.

“손 잡아.”

학생이 엉거주춤 일어섰다. 그때 천장 가까이 쌓아 둔 포장재에 불이 붙었다. 검은 연기가 아래로 내려왔다. 무진은 학생의 머리에 젖은 수건을 씌우고 등을 밀었다.

뒤쪽 문 앞에서 민석이 쇠막대를 당기고 있었다.

오래된 문틀이 어긋나 문이 걸렸다. 낮에 드나들던 문인데, 밖에서 떨어진 선반이 문짝을 짓누른 모양이었다. 틈은 어른 어깨가 지나가기에도 모자랐다.

무진은 학생을 교사에게 넘겼다.

“낮게 있어.”

벽에서 긴 쇠지렛대를 뽑아 들었다. 문틈에 끝을 박고 작업대 받침쇠를 밑에 밀어 넣었다. 팔만으로 당기지 않았다. 몸을 낮춘 뒤 다리로 일어서며 손잡이를 눌렀다.

경첩 쪽에서 비명이 났다.

“더요!”

민석이 문짝을 붙잡았다. 틈이 벌어졌다. 교사가 먼저 빠져나가 학생을 받았다. 남은 학생들도 하나씩 바깥으로 기어갔다.

불빛 속에서 무진의 그림자가 길게 흔들렸다.

마지막 학생의 신발이 문턱을 넘는 순간, 안쪽에서 기둥을 때리는 굉음이 울렸다.

민석이 무진의 팔을 잡았다.

“선생님, 나오세요!”

무진은 제자의 등을 밀었다.

머리 위에서 들보가 기울었다. 어디로 떨어질지 보였다. 피할 틈보다 민석을 밀어낼 틈이 조금 더 컸다.

그는 그쪽을 골랐다.

민석의 몸이 문밖으로 굴렀다. 들보가 내려앉았다.

뼈가 부서지는 소리는 뜻밖에 작았다.

무진은 뜨거운 바닥에 뺨을 댔다. 숨을 쉬자 불이 폐 속으로 들어왔다. 문틈 너머에서 누군가 울부짖었다. 제자의 손이 다시 들어왔지만 무진은 고개를 저었다.

나무가 갈라졌다. 쇠 선반이 주저앉았다.

평생 두드린 금속들이 마지막으로 한꺼번에 울었다.

완성을 기다리던 칼이 떠올랐다. 손잡이를 맞추다 만 부엌칼도 있었다. 구석의 부러진 우산은 아직 펴 보지도 못했다.

아깝군.

그 생각 끝에 이상하리만치 선명한 울림이 닿았다.

귀로 듣는 소리는 아니었다. 흩어진 못과 선반, 무너진 들보 속 철물의 결이 손바닥 안으로 들어왔다. 불에 달궈진 것들의 온도와 찌그러진 자리까지.

누군가 묻지도 않았는데, 무진은 대답을 알고 있었다.

철의 축복.

그 이름이 마지막 숨이 끊어진 자리에 남았다.

이번에는 쇠가 그의 손을 잡았다.

눈을 떴을 때 뺨 아래에는 풀이 있었다.

무진은 한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잎 끝에 맺힌 물방울이 턱을 타고 흘렀다. 젖은 흙 냄새가 났다. 불탄 나무 냄새도, 살을 태우는 통증도 없었다.

그는 몸을 일으켰다.

앞치마는 사라졌고 작업복은 그대로였다. 손등에는 익숙한 흉터가 남아 있었다. 다만 오래 굽혔다 펴면 뻣뻣하던 손가락이 아무 저항 없이 움직였다.

무진은 가슴에 손을 댔다.

심장이 뛰었다.

“……살았나.”

입 밖으로 나온 말은 작았다.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들보가 떨어졌을 때의 무게를 기억했다. 바깥으로 나간 학생들의 얼굴도 기억했다. 민석이 다시 들어오지 않았기를 바랐다.

일어서서 주변을 살폈다.

나무들이 낯설었다. 껍질 사이로 은빛 가루 같은 것이 박힌 거목이 있었고, 넓은 잎 아래에서는 푸른 털을 가진 작은 짐승이 도망쳤다. 멀리 산등성이 위로 둥근 천체 하나가 희미하게 걸려 있었다. 대낮의 달이라기에는 지나치게 컸다.

하지만 그보다 낯선 것은 발밑이었다.

땅속에 쇠가 있었다.

안다는 말로는 모자랐다.

흙 아래 얕게 흩어진 철분부터 바위 속에 갇힌 구리, 깊은 곳에서 길게 누운 은의 줄기까지 느껴졌다.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았다. 굳이 어느 쪽을 보려고 애쓸 필요도 없었다.

먼 산맥 안쪽에서 광맥이 갈라졌다.

골짜기를 건너고 강바닥 아래를 지나, 그 너머의 산으로 이어졌다. 무진에게는 그 모든 결이 손바닥의 주름처럼 또렷했다. 산 하나를 지나 더 먼 땅에 닿아도 흐려지지 않았다.

그는 저도 모르게 손을 펼쳤다.

발밑의 광석 한 알과 먼 땅의 금속 덩어리가 같은 깊이에서 응답했다. 가까운 것을 먼저 짚어야 할 까닭이 없었다.

쇠만도 아니었다.

금과 납, 아연과 주석. 이름을 아는 것들 사이에 처음 접하는 금속이 섞여 있었다. 낯선 금속 속에는 열과 빛을 품은 결이 깃들어 있었다. 그것이 어떻게 흐르고 무엇을 붙잡는지도 함께 느껴졌다.

무진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평생 재료 앞에서 품었던 질문들이 한꺼번에 답을 얻고 있었다. 그런데도 궁금한 것은 줄지 않았다. 답 하나가 손에 잡힐 때마다 그걸 어디에 쓸 수 있을지 새로운 생각이 솟았다.

그는 가까운 나무에 손을 짚었다.

거친 껍질이었다. 그 안은 쇠처럼 읽히지 않았다. 숲 어딘가에서 새가 울었지만 무슨 새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이 어디에 떨어졌는지도 여전히 몰랐다.

분명한 것은 금속이었다.

무진은 풀 사이에 반쯤 묻힌 붉은 물체로 시선을 옮겼다.

녹슨 쇠붙이였다.

굽은 끝과 넓적한 몸을 보니 부러진 수레 테로 보였다. 나무 조각 몇 개가 안쪽에 눌어붙어 있었다. 못 하나도 함께 박혀 있었다.

그는 그것을 주웠다.

손가락에 붉은 녹가루가 묻었다. 남은 두께를 재보려던 버릇이 먼저 나왔다. 하지만 손끝이 표면에 닿기도 전에 쇠의 속이 이미 펼쳐져 있었다.

군데군데 탄소가 몰려 있었다. 잘 붙지 못한 틈에는 찌꺼기가 끼었고, 거칠게 두드린 자리가 오래된 상처처럼 남았다. 좋은 쇠가 아니라며 버릴 수도 있는 조각이었다.

무진은 엄지로 녹을 문질렀다.

“많이도 맞았군.”

쇠붙이가 대답했다.

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생각에 따라 안쪽의 결이 가지런해졌다.

붉은 녹이 표면에서 가라앉았다. 떨어져 나갈 줄 알았던 가루가 맑은 쇠빛 속으로 돌아왔다. 남겨 둘 이유가 없는 흙과 돌만 발치에 톡톡 떨어졌다. 박혀 있던 못도 뽑혀 나와 옆에 놓였다.

무진은 손을 멈췄다.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몰라서가 아니었다.

너무 정확히 알았다.

어디를 정리했고 어떤 성질을 바꾸었는지, 손으로 수천 번 두드렸어도 얻기 어려웠을 균일한 결이 어떻게 놓였는지 전부 알았다.

망치가 필요하지 않았다. 화로도 집게도 필요 없었다.

그런데 그의 오른손은 습관처럼 허공에서 망치 자루를 찾았다.

무진이 짧게 웃었다.

“손버릇은 남았네.”

그는 바위에 앉아 쇠붙이를 두 손 위에 올렸다.

먼저 생각난 것은 검이었다.

하지만 당장 긴 검부터 만들지는 않았다. 허리춤에 차고 다니며 나뭇가지를 다듬거나 먹을 것을 자를 만한 칼이 좋았다. 숲에서 손에 쥘 첫 물건이었다. 쓸 때마다 기분이 좋을 만큼 제대로 만들고 싶었다.

길이는 한 뼘보다 조금 길게.

손가락이 날로 미끄러지지 않도록 뿌리에 낮은 턱을 두고, 엄지를 얹는 등에는 살짝 둥근 면을 냈다. 배는 완만하게 부풀리고 끝은 지나치게 가늘지 않게 잡았다.

칼날을 얇게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가 가장 쓸모 있을까.

무진은 음식점 여자의 붉어진 손가락을 떠올렸다. 칼이 잘 들어도 쥐는 사람이 아프면 좋은 물건이 아니었다. 손잡이를 세게 움켜쥐지 않아도 방향이 잡히도록 옆면을 눌렀다. 젖은 손에도 걸리도록 미세한 결을 넣되 살을 긁을 모서리는 없앴다.

쇠가 길어졌다.

두드리는 소리도 없이 굽은 테가 펴졌다. 두꺼운 부분이 흘러 얇은 곳을 채웠다. 칼의 윤곽이 그의 손 위로 조용히 드러났다.

무진은 그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날 끝은 단단하게, 몸은 질기게.

오랫동안 익숙했던 주문이 떠올랐지만, 이번에 손에 닿은 가능성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단단한 부분도 깨지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유연한 결을 넣고도 날이 무뎌지지 않게 붙잡을 수 있었다.

현실에서 번번이 한쪽을 덜어 내며 타협했던 성질들이 나란히 자리를 잡았다.

그는 칼 속에 아주 얇은 층을 겹쳤다. 단단한 날을 받치는 결은 부드럽게 이어졌다. 충격은 손바닥을 찌르지 않고 몸 전체로 잔잔하게 번지도록 했다.

금속 안에 깃든 미약한 기운도 느껴졌다.

붉은 불씨 같은 성질이었다. 무진은 그것을 태워 없애지 않았다. 날을 따라 고르게 펼쳐, 완성된 날의 상태를 붙드는 결로 정착시켰다.

그가 손잡이를 쥐었다.

차가울 줄 알았던 쇠가 편안하게 닿았다. 손의 굴곡을 빈틈없이 받치면서도 꽉 끼지 않았다. 손목을 돌리자 칼끝이 생각한 자리에서 멎었다.

무진의 눈이 가늘어졌다.

잘 만든 정도가 아니었다.

그가 평생 좇았던 완성의 경계가 손 안에서 한참 멀어졌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 너머에 서 있었다.

그는 발치의 마른 가지를 주웠다.

칼을 대고 조금 밀었다. 얇은 나무껍질이 길게 말려 나왔다. 걸리는 곳이 없었다. 단단한 옹이도 날의 흐름을 비틀지 못했다.

다음에는 풀잎 하나를 집었다.

팽팽히 당기지도 않은 잎에 칼날을 가볍게 댔다. 잘린 끝이 손등으로 내려앉았다. 그는 날을 빛에 비췄다. 빠진 자리도 말린 부분도 없었다.

무진은 한동안 그 칼만 바라보았다.

누가 옆에 있었다면 한 번 쥐어 보라고 건넸을 것이다. 민석이라면 먼저 입을 벌렸을 테고, 철물점 주인은 그 좋은 걸로 왜 풀이나 자르냐고 했을 것이다.

웃음이 났다가 천천히 가라앉았다.

마지막으로 밀어냈던 제자의 등이 손바닥에 남아 있었다.

“다 나갔지.”

대답은 없었다.

잎 사이로 바람이 지나갔다. 무진은 칼을 무릎에 얹고 한동안 앉아 있었다. 돌아갈 길도, 소식을 물을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자신이 끝까지 보았던 것들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문밖의 교사와 학생들. 제 손에 밀려 바깥으로 나간 민석.

그는 손바닥의 녹가루를 털었다.

그때 칼에 빠진 것이 하나 보였다.

무진은 날 뿌리의 넓은 면을 엄지로 짚었다. 그가 만든 물건에는 늘 작은 각인이 들어갔다. 멀리서 알아볼 만큼 크지도 않았다. 쓰는 사람이 손질하다 문득 발견하면 충분했다.

眞鐵.

두 글자가 좁은 면에 또렷하게 새겨졌다.

힘을 주어 파지도 않았는데 획의 바닥까지 맑았다. 무진은 손톱으로 그 자리를 쓸었다. 낯선 땅에서 처음 만든 물건에 익숙한 이름이 남았다.

나무껍질을 얇게 벗겨 칼을 닦았다. 풀물이 묻었던 표면은 한 번 쓸자 깨끗해졌다. 빛을 받은 날에는 물결 같은 무늬가 아주 옅게 떠올랐다. 억지로 꾸미지 않았는데도 속의 결이 아름다웠다.

그는 칼을 옆에 내려놓았다가 다시 집었다.

한 번 더 쥐어 보고 싶었다.

그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죽기 전에도 가장 좋았던 순간은 이랬다. 남들이 명장이라 부를 때보다, 어려운 주문을 끝내 돈이 들어왔을 때보다, 막 완성한 물건을 내려놓기 아까울 때.

이번에는 그 아까움이 유난히 컸다.

무진은 해가 기울어 가는 숲을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배가 고팠다. 오늘 밤 몸을 누일 자리도 찾아야 했다. 발밑에는 대륙을 가로지르는 광맥이 여전히 고요하게 펼쳐져 있었다. 그 모든 금속이 그의 의지를 기다렸다.

그는 칼등에 엄지를 얹었다.

손에 꼭 맞았다.

“좋다.”

누구에게 들려주려는 말도 아니었다.

강무진은 완성된 칼을 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뭇잎 사이로 스민 마지막 볕이 작은 각인 위에 머물렀다. 쇠의 맑은 빛이, 이번에는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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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끝 1

ReNovels · 한 회차씩, 이야기 속으로.

회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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