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신, 대장장이 강무진

회차 2

제2장 — 눈뜬 자리

차가운 것이 뺨을 눌렀다.

강무진은 눈을 뜨지 않은 채 손가락부터 움직였다. 오른손 검지와 중지가 축축한 흙을 긁자 재도 그을음도 아닌, 잘게 썩은 낙엽과 뿌리, 물기를 머금은 이끼가 손톱 밑으로 밀려들었다.

숨을 들이켰으나 연기가 없었다.

젖은 나무 냄새가 폐 깊숙이 들어왔고, 짙은 흙냄새 사이로 이름 모를 풀의 매운 향이 섞여 있었다. 숨은 길게 이어졌으며 타들어 가던 목도 멀쩡했다.

강무진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새벽빛이 빽빽한 나뭇잎 사이로 부서져 내렸다. 나무들은 하나같이 굵고 높았는데, 가까운 줄기만 해도 성인 둘이 팔을 벌려야 겨우 감쌀 만했다. 낯선 모양의 잎 아래로 푸른빛을 띤 덩굴이 나무껍질을 타고 올랐다.

작업장은 없었다.

화덕도, 무너진 선반도, 마지막 칼도 보이지 않았다.

강무진은 가슴을 짚었다.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고 있었다.

작업복은 그대로였고, 불길에 휩싸였던 옷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온전했다. 두꺼운 면직물에는 탄 자국 하나 없었으며 선반에 찍힌 발목도, 불에 덴 팔도 멀쩡했다. 손바닥에는 평생 망치 자루가 눌러 만든 굳은살까지 남아 있었다.

죽은 것은 분명했다.

마지막 숨이 끊기던 순간을 기억했다. 연기에 막힌 폐와 힘이 빠진 손가락, 바닥에 떨어진 망치 소리까지 선명했기에 꿈이라 하기에는 죽음이 지나치게 구체적이었다.

강무진은 왼팔을 꼬집었다.

아팠다.

“살아 있군.”

낮은 목소리가 숲속으로 흩어졌다.

그는 일어서려다가 몸을 멈췄다.

무언가가 느껴졌다.

오른쪽 땅속 깊은 곳에서 묵직한 감각이 올라왔다. 손으로 만진 것도 아닌데 거친 표면과 무게가 잡혔고, 흙과 돌 사이에 박힌 광석이라는 사실도 알 수 있었다. 순수한 철은 아니었다. 산화물이 많았으며 황과 규소가 어지럽게 뒤섞여 있었다.

그보다 가까운 곳에도 금속이 있었다.

왼쪽으로 열한 걸음 떨어진 낙엽 아래에는 가늘고 길게 녹슨 쇳조각이 묻혀 있었고, 정면의 고목 너머에는 작은 금속 셋이 흩어져 있었다. 하나는 둥글었으며 둘은 납작했다.

강무진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화재 속에서 처음 생긴 감각이었다.

환각이 아니었다.

그는 왼쪽으로 걸어가 열한 걸음째에 멈췄다. 발끝으로 낙엽을 걷어도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없었지만, 손으로 흙을 파자 손가락 두 마디쯤 아래에서 검붉은 녹이 묻어 나왔다.

그가 쇳조각을 꺼냈다.

날이 거의 삭은 낫 조각이었다. 자루를 끼우는 슴베 일부와 안쪽 날만 남아 있었고, 녹이 여러 겹 일어난 표면에는 토양의 물기와 산 성분이 깊이 파고들어 있었다.

강무진은 엄지로 표면을 문질렀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속을 알 수 있었다.

탄소가 고르게 퍼지지 않은 조악한 연철이었다. 날 쪽만 침탄하려 했으나 불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지 못했고 망치질도 성겼다. 접힌 결 사이에는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슬래그가 줄지어 박혀 있었다.

그런데도 오래 쓰인 물건이었다.

날 안쪽에는 반복해서 갈아낸 흔적이 남아 있었다. 무른 쇠를 자주 세워 가며 억센 풀이나 곡식을 베었을 터였다.

“도구는 도구였어.”

솜씨는 부족해도 쓸 사람을 생각한 흔적은 있었다.

강무진은 낫 조각을 쥐고 가장 얇은 끝의 결을 모았다. 녹에 빼앗긴 쇠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남은 금속은 한 톨씩 자리를 바꾸며 벌어진 틈을 좁혔다.

관자놀이가 울렸다. 그는 곧 힘을 풀고 돌로 날을 긁은 뒤 등 부분을 눌렀다.

딱.

예상한 자리에서 금이 갔다. 결을 움직일 수는 있어도 열처리와 담금질까지 대신하지는 못했다. 강무진은 깨진 단면을 확인하고 낫 조각을 주머니에 넣었다.

“공짜는 아니군.”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쇠의 상태를 읽는 힘이 생겼어도 쓸 만한 물건을 만드는 데는 여전히 불과 망치, 장인의 판단이 필요했다.

강무진은 부러진 낫 조각을 작업복 허리 주머니에 넣었다. 아직 쓸모가 남아 있었고, 갈고리나 작은 칼의 심재로 쓸 수 있었다. 탄소량이 낮아 날로 쓰기 어렵다면 못이나 죔쇠로 만들면 됐다.

그는 고목 너머의 금속도 확인했다.

낙엽 아래에서는 검게 변색된 동전 하나와 철제 버클 두 개가 나왔다.

동전에는 본 적 없는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한쪽에는 탑처럼 생긴 건물이, 다른 쪽에는 뿔 달린 짐승이 양각되어 있었으며 가장자리를 둘러싼 표시는 어느 나라 문자와도 닮지 않았다.

구리와 주석을 섞은 청동이었다. 주석 비율이 높아 단단했으나 충격에는 약했고, 가장자리에는 누군가 이로 깨문 흔적까지 남아 있었다.

버클의 형태도 낯설었다. 작은 가시와 이중 걸쇠가 달린 손제품이었지만, 강무진이 아는 어느 지역의 양식도 아니었다.

그는 나뭇가지 사이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푸른 하늘과 햇빛은 익숙했다. 그 밖에는 알 수 없는 것뿐이었으며, 화재 현장에서 누군가 자신을 옮겼다고 보기에는 몸과 작업복의 상태가 설명되지 않았다.

마지막에 들었던 목소리가 기억에 남아 있었다.

철은 불에서 죽지 않는다.

철의 축복을 내린다.

강무진은 동전을 주머니에 넣었다.

“다시 벼린다더니.”

죽은 사람을 낯선 땅에 내려놓는 일이 그 말의 뜻이라면 썩 친절한 솜씨는 아니었다. 설명도, 지도도, 물 한 모금도 없었다.

그래도 살아 있었다.

두 손도 붙어 있었다.

쇠도 있었다.

시작하기에는 충분했다.

강무진은 물소리가 나는 쪽으로 걸었다. 땅속 광맥과 가까운 철편이 한꺼번에 밀려오자 감각을 발밑 세 걸음 안으로 좁혔고, 머리를 누르던 압박이 줄었다.

얕은 개울에서 목을 축이던 순간 왼쪽 숲길에서 금속이 규칙적으로 흔들렸다. 철테를 두른 바퀴 둘, 고삐 고리 넷, 작은 솥과 부러진 농기구. 누군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강무진에게는 숨을 곳보다 손에 쥘 도구가 먼저 필요했다. 그는 버클의 피로 균열을 따라 걸쇠를 떼어 송곳으로 만들고, 곧은 가지 끝에는 낫 조각을 갈고리처럼 묶었다. 달아오르지 않은 쇠를 억지로 늘이지 않고 이미 약한 선만 끊었기에 이번에는 머리가 울리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낫의 슴베 가까이에 두 번 꺾인 선과 가운데의 짧은 획을 새겼다. 꺾인 선은 망치의 머리와 자루를, 가운데 짧은 획은 그 아래의 모루를 이루었다. 이후 사람들이 작은 망치 각인이나 망치와 모루의 표식이라고 부르는, 평생 자신의 물건에 남긴 같은 도안이었다.

바퀴 소리가 한 굽이 앞으로 다가왔다. 강무진은 완성한 지팡이를 짚고 길 쪽으로 몸을 돌렸다.

금속 울림은 개울가의 수레바퀴 자국과 맞물렸고, 바람에는 젖은 장작과 곡물을 익히는 냄새가 실려 왔다. 강무진은 낫 조각을 단 지팡이를 내려 잡고 길 한쪽으로 물러서 빈손을 보였다.

곧 낡은 수레가 굽은 길 너머에서 나타났다. 털이 누렇게 바랜 짐승 한 마리가 수레를 끌고 있었는데, 말과 비슷하면서도 이마에는 짧고 뭉툭한 뿔이 돋아 있었다.

수레를 몰던 사내가 그를 발견했다.

사내는 고삐를 당기며 허리춤의 짧은 칼에 손을 얹었고, 옆에 앉은 소년은 나무 상자를 끌어안았다.

사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물었다.

강무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말은 낯설었지만 경계하는 뜻은 알아볼 수 있었다. 사내의 손은 칼자루를 잡았으나 뽑지는 않았고, 칼집 안의 쇠는 이가 나간 데다 슴베와 손잡이 사이로 붉은 녹이 깊게 번져 있었다.

그 상태로 힘을 주면 부러질 가능성이 컸다.

강무진은 지팡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불탄 흔적 없이 온전한 작업복 차림은 사내에게도 낯설어 보였다. 그는 양손을 펼쳐 보인 뒤 녹슨 낫 조각을 가리켰다.

이어서 수레 뒤에 실린 부러진 괭이와 금 간 솥을 차례로 짚고, 오른손으로 망치를 쥔 시늉을 하며 두 번 내려쳤다.

“탕. 탕.”

소년이 눈을 크게 떴다.

사내는 강무진의 작업복과 지팡이에 묶인 낫 조각을 번갈아 보았다. 작은 각인 위에서 시선이 잠시 멈추더니 칼자루를 잡았던 손이 느슨해졌다.

사내가 짧게 무언가를 말하며 수레 뒤편을 가리켰다.

흙길 너머로 연기 몇 줄기가 나무 위로 솟고 있었다.

마을이었다.

강무진은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말은 통하지 않았다. 가진 돈도 낯선 동전 한 닢뿐이었고, 그것이 이곳에서 쓰이는 물건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수레에는 부러진 괭이가 있었다.

금 간 솥도 있었다.

그리고 숲 너머 어딘가에는 불과 망치가 있을 터였다.

강무진은 사내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수레 뒤를 따랐다.

그때 마을 쪽에서 바람을 타고 무수한 쇠의 감각이 밀려왔다.

못, 낫, 칼, 솥, 경첩.

그 가운데 하나가 유난히 거칠게 울렸다.

금이 간 모루였다.

회차 끝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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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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