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신, 대장장이 강무진

손에 맞는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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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관 주인은 은덩이를 깨물려다가 무진의 얼굴을 보고 손을 내렸다.

“확인해도 되겠습니까?”

“해 보십시오.”

앞니 자국이 얕게 남았다. 주인은 눈을 크게 뜨더니 이번에는 은과 자기 손톱을 번갈아 보았다.

“이만큼이면 방하고 식사를 드리고도 거스름이 한참 남습니다.”

“그럼 식사를 넉넉히 주십시오.”

그 말에 주인의 표정이 한결 편해졌다.

긴 식탁에 빵 두 덩이와 양파를 넣은 고기찜이 놓였다. 얇게 저민 순무에는 소금과 향초가 뿌려져 있었다. 무진은 김이 오르는 그릇을 잠시 바라보다가 숟가락을 들었다.

고기가 혀로 누르면 풀어졌다. 소스에 빵을 적시자 딱딱했던 껍질까지 부드러워졌다.

그는 두 번째 조각을 집었다.

주인은 거스름돈을 세다가 슬그머니 빵을 하나 더 가져왔다.

무진이 식사에 열중하는 동안 맞은편에서는 노인이 작은 낫을 손질하고 있었다. 숫돌에 물을 묻히고, 날을 몇 번 문지른 뒤 엄지로 살폈다. 날끝보다 낫자루를 쥔 손이 먼저 무진의 눈에 들어왔다.

검지와 중지가 완전히 펴지지 않았다.

노인은 자루가 돌아갈 때마다 손을 다시 고쳐 잡았다. 손바닥에는 오래된 굳은살 위로 새 물집이 잡혀 있었다.

“자루가 굵군요.”

노인이 고개를 들었다.

“응?”

무진이 빵을 삼켰다.

“손에 비해서.”

“이놈이 젊을 적에는 잘 맞았지. 내가 줄어든 모양이야.”

노인은 웃으며 낫을 내려놓았다.

날에는 작은 이가 셋 나 있었다. 쇠 안쪽에는 오래전 수리하면서 남은 균열도 있었다. 무진에게는 뼈가 잘못 붙은 손가락처럼 선명했다.

“봐도 되겠습니까?”

“대장장이라더니, 밥 먹다 일감부터 보이나?”

무진은 남은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손을 내밀었다.

“밥은 먹었습니다.”

낫이 그의 손에 넘어왔다.

휘어진 날의 녹이 사라졌다. 이가 빠진 자리로 쇠가 조용히 차올랐다. 접합부 깊숙이 숨어 있던 균열까지 닫혔다.

노인의 웃음이 멎었다.

무진은 자루 끝의 쇠테를 풀어 작은 금속 손잡이로 바꾸었다. 손가락이 굽은 채 닿는 자리는 얕게 파고, 엄지가 밀어 주는 면은 넓혔다. 속을 비운 손잡이는 나무보다 가벼웠다. 표면에는 차갑지 않은 온기가 머물렀다.

날과 손잡이가 이루는 각도도 조금 틀었다.

“잡아 보십시오.”

노인은 한동안 낫을 받지 못했다.

“방금 뭘…….”

“고쳤습니다.”

낫을 쥔 손이 허공에서 멎었다. 노인은 손바닥을 펴지 않고도 손잡이를 감쌀 수 있었다. 손목을 꺾자 날끝이 뜻한 자리에서 섰다.

그가 탁자 밑에 둔 마른 풀 한 줌을 꺼냈다.

토끼 먹이로 가져가던 풀이었다.

짧게 당겼다.

서걱.

끊어진 풀잎이 무릎 위로 흩어졌다. 손목이 뒤틀리지 않았다. 노인은 제 손을 보다가 다시 풀을 쥐었다.

이번에는 더 천천히 당겼다.

똑같이 잘렸다.

“내가 힘을 덜 줬는데.”

무진은 손잡이 아래에 작은 각인을 남겼다.

“그래도 됩니다.”

여관 주인이 세던 동전을 탁자 위에 쏟았다.

***

이튿날 아침, 여관 앞에는 농기구를 든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무진은 문을 열다가 멈췄다.

쟁기날, 괭이, 낫, 삽, 양털 가위까지 있었다. 손에 들 수 없는 큰 쟁기는 두 사람이 끌고 왔다. 앞줄에 선 노인이 어젯밤의 낫을 등 뒤로 감췄다.

“내가 떠벌린 건 아니고.”

뒤에서 누군가 말했다.

“우물가에서 풀을 열 번도 더 베시던데요.”

“시험을 해 봐야 할 것 아니냐.”

장작을 나르던 여자도 와 있었다. 곁에 선 소년은 금 간 작은 가위를 양손으로 받쳐 들었다.

여자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

“어제 인사도 제대로 못 드렸어요. 저는 마르타예요. 이 애는 토빈이고요.”

토빈은 기다렸다는 듯 가위를 내밀었다.

“이건 빵 자르는 거 아니에요. 엄마가 실 끊을 때 써요.”

“아직 맡긴다고 안 했잖니.”

마르타가 아이의 손을 내리려 했다.

무진은 가위보다 사람들의 손부터 보았다.

쟁기를 끌고 온 사내는 한쪽 어깨가 눈에 띄게 내려앉아 있었다. 삽을 든 여자는 손바닥에 헝겊을 감았다. 양털 가위를 가져온 청년은 엄지 뿌리를 계속 주물렀다.

쇠는 다들 비슷하게 닳아 있었다.

사람은 달랐다.

무진이 여관 주인을 돌아봤다.

“넓은 자리가 있습니까?”

주인은 우물 너머의 빈 마당을 가리켰다.

“타작철에 쓰는 곳이 있습니다. 화로를 빌리시려면 문지기한테…….”

“마당이면 됩니다.”

그는 식탁에서 가져온 마지막 빵 조각을 입에 넣었다.

아침 햇살 아래 농기구들이 놓였다. 사람들이 서로의 것에 섞이지 않도록 줄을 맞추려 하자 무진이 손을 들었다.

“주인 것만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마당 전체의 금속에 뜻을 보냈다.

녹이 사라졌다.

갈라졌던 날이 붙었다. 못이 헐거워진 구멍이 오므라들고, 삐뚤어진 쇠테가 나무를 상하게 하지 않을 만큼만 조여졌다. 부러진 괭이 목은 본래보다 매끄러운 곡선으로 이어졌다.

작은 가위에서 큰 쟁기날까지, 하나도 빠지지 않았다.

쇠 부딪치는 소리조차 거의 나지 않았다.

한 여자가 아직 손에 들고 있던 낫을 황급히 내려다봤다. 날끝에 아침 햇살이 길게 맺혔다.

“내 것도 됐어.”

그 말이 마당을 건넜다.

“이쪽도.”

“아버지, 이거 보세요. 부러진 데가 없어졌어요.”

사람들이 제 농기구를 집어 들었다. 누군가는 날을 만지려다 옆 사람에게 손등을 맞았다. 쟁기를 끌고 온 사내는 쇠날 밑으로 머리를 들이밀었다.

그가 벌떡 일어났다.

“아니, 저 안쪽까지 어떻게…….”

무진은 사내가 쥔 쟁기 손잡이를 보았다.

“고치는 건 끝났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쓰는 걸 봐도 되겠습니까?”

***

밭은 마을 울타리 바로 바깥에 있었다.

쟁기 주인의 이름은 베른이었다. 그는 소를 몰고 밭고랑에 섰다. 수리된 쟁기가 젖은 흙을 가르자 평소보다 깊게 들어갔다. 베른이 얼른 손잡이를 들어 올렸다.

무진은 그 모습을 옆에서 따라갔다.

몇 걸음 지나지 않아 쟁기날 앞에 흙이 뭉쳤다.

베른이 멈췄다. 발로 흙을 걷어 낸 뒤 다시 손잡이를 잡았다. 허리를 숙이자 어깨 한쪽이 더 내려갔다.

“이 밭은 원래 이렇습니다. 비 온 뒤에는 두 고랑 갈고 한 번씩 털어야 해요.”

무진이 쟁기 옆에 쪼그려 앉았다.

흙은 날에 잘리고도 빠져나가지 못했다. 넓고 평평한 쇠판에 달라붙어 뒤에서 밀려오는 흙을 받았다. 베른은 그 덩어리까지 소에게 끌게 하고 있었다.

무진은 예전에 작업장 바닥에 쌓이던 쇳밥을 떠올렸다.

잘 드는 공구라도 깎인 부스러기가 빠져나갈 자리가 나쁘면 일이 거칠어졌다. 날끝만 세우는 것으로 끝낼 일이 아니었다.

그가 손가락으로 쟁기 옆면에 곡선을 그렸다.

평평했던 판이 비틀리며 올라갔다. 흙을 가르는 앞코는 좁아졌다. 잘린 흙을 옆으로 넘기는 면에는 넓고 얕은 굴곡을 주었다. 젖은 흙이 찰싹 달라붙지 않도록 표면의 성질도 바꾸었다.

날 뒤쪽은 충격에 조금씩 휘었다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게 했다.

돌에 부딪힐 때마다 그 힘이 베른의 손목까지 곧장 오를 필요는 없었다.

“손잡이 잡아 보십시오.”

베른이 손을 얹자 무진은 그 높이부터 바꿨다.

굽어 있던 허리가 펴졌다.

손잡이 끝에는 손바닥을 밀어 받치는 넓은 면이 생겼다. 손가락으로 악착같이 움켜쥐지 않아도 방향을 잡을 수 있었다.

“이렇게 높아도 됩니까?”

“걸어 보십시오.”

베른이 소에게 혀를 찼다.

쟁기가 나아갔다.

갈라진 흙은 쇠판의 굴곡을 타고 말려 올라갔다. 두툼한 흙덩이가 옆으로 뒤집혔다. 젖은 흙이 남아 붙으려다가도 다음 흙에 밀려 미끄러져 나왔다.

베른은 멈출 자리를 지나쳤다.

평소라면 발로 흙을 걷어 냈을 자리였다.

그는 한 고랑 끝까지 걸었다. 돌아올 때에는 자꾸 제 뒤를 봤다.

“왜 털 게 없지?”

밭둑에서 지켜보던 노인이 손뼉을 쳤다.

“네가 아침을 든든하게 먹었나 보지!”

베른이 웃지도 않고 쟁기를 돌렸다.

두 번째 고랑에서는 소의 고삐를 쥔 손에 여유가 생겼다. 손잡이에 몸을 매달리지 않아도 날이 일정하게 흙을 갈랐다. 묻힌 돌을 스쳤을 때에도 쟁기 목이 짧게 휘었다 펴졌을 뿐이었다.

그가 밭 가운데 멈춰 섰다.

“오늘 이쪽 다 하고도 남겠는데.”

말끝이 이상하게 잠겼다.

밭둑에 있던 아내가 물었다.

“그럼 동쪽 밭도 해요?”

베른이 고개를 돌렸다.

“아니. 지붕.”

그의 아내가 입을 다물었다.

“비 오기 전에 고친다고 했잖아.”

무진은 쟁기 목 아래에 각인을 남겼다. 몸을 펴고 걷는 사내의 등에 햇살이 넓게 닿았다.

***

마당으로 돌아오자 토빈이 두 손으로 자기 키를 재고 있었다.

손바닥을 정수리에 얹었다가 허공에 그대로 둔 채 무진에게 달려왔다.

“저는 이만큼이에요.”

“무엇을 만들려고.”

“삽이요.”

마르타가 한숨을 쉬었다.

“네 삽까지 맡기면 어떡하니.”

“엄마 삽 쓰면 땅이 안 들리잖아.”

무진은 아이가 가져온 삽을 보았다. 어른의 부러진 삽자루를 잘라 끼운 물건이었다. 날도 옆이 깨져 있었다.

그는 토빈에게 삽을 잡고 흙을 뜨는 자세를 해 보라고 했다.

아이는 팔을 쭉 뻗었다. 삽날이 무거워 끝이 자꾸 떨어졌다.

무진은 땅속에서 철과 가벼운 은백색 금속을 불렀다. 흙 한 줌 튀지 않은 채 맺힌 금속이 삽날을 감쌌다. 폭을 줄이고 안쪽을 얕게 오므렸다. 가장자리는 둥글게 말되 땅을 파는 앞부분만 단단하게 남겼다.

손잡이는 작은 주먹이 감기는 굵기로 바뀌었다.

“이건 네 것.”

토빈이 삽을 들었다.

이번에는 날끝이 떨어지지 않았다.

아이는 마당 가장자리의 흙을 떠서 옮겼다. 첫 삽에는 지나치게 많이 담았다가 절반을 쏟았다. 다음에는 적당히 떴다.

그 뒤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 손으로 판 작은 구덩이를 한참 들여다봤다.

마르타가 웃음을 참다가 고개를 돌렸다.

무진은 그 여자의 헝겊 감긴 손을 가리켰다.

“가위도 봅시다.”

가위는 벌어진 두 날을 힘으로 눌러 붙여야 실이 잘렸다. 날을 예리하게 갈아도 두 날이 만나지 않으면 실은 사이로 접혀 들어갈 뿐이었다.

무진은 옛 작업장에서 가죽을 자르던 큰 가위를 떠올렸다. 종이를 자르는 가위와 두꺼운 가죽을 자르는 가위는 손잡이 길이부터 달랐다.

그는 두 날의 안쪽을 미세하게 굽혔다.

날 전체가 한꺼번에 맞닿는 대신, 닫히는 동안 만나는 자리가 앞쪽으로 옮겨 가도록 했다. 축에는 단단하고 매끄러운 작은 테를 넣었다. 손잡이를 누르는 힘이 마찰에 허비되지 않았다.

한쪽 고리는 손가락 하나가 아니라 세 개가 편하게 들어갈 만큼 길어졌다. 두 고리 사이에는 얇게 만 용수철이 자리 잡았다.

마르타가 손가락을 폈다 오므렸다.

가위가 가볍게 벌어졌다.

“놓으면 열리네요.”

“계속 벌려 줄 필요 없습니다.”

여관 주인이 낡은 자루를 가져왔다. 마르타는 솔기가 겹친 부분에 날을 댔다.

사각.

그녀가 멈췄다.

곁의 양털 가위 주인이 목을 길게 뺐다.

“잘렸어요?”

마르타는 잘린 자루를 들어 보였다.

“손이 덜 아파요.”

그 말은 작았다. 가위를 다시 쥔 손은 놓이지 않았다.

무진은 양털 가위도 받았다. 청년에게 양을 어떻게 붙잡는지, 어느 방향으로 가위를 넣는지 보여 달라고 했다. 손가락과 양의 살이 닿는 쪽은 둥글게 다듬었다. 오래 눌러도 엄지 뿌리를 파고들지 않게 받치는 면을 넓혔다.

청년은 완성된 가위를 허공에서 몇 번 움직였다.

“이러면 양이 움직여도 손을 다시 잡을 필요가 없겠는데.”

그는 당장 양을 데려오겠다며 달려갔다.

그사이 무진은 줄지어 놓인 괭이와 삽을 주인들에게 돌려주었다. 키가 큰 여자에게는 목이 긴 괭이를, 무릎이 불편한 노인에게는 힘을 아래로 싣기 쉬운 각도의 삽을 주었다.

손잡이의 굴곡도 모두 달랐다.

같은 집에서 가져온 두 낫조차 서로 바꿔 쥐자 불편했다.

노인이 아내의 낫을 쥐고 투덜거렸다.

“이건 손이 자꾸 옆으로 가.”

아내가 제 낫을 빼앗았다.

“그러니까 내 것 가져가지 말라고.”

마당에 웃음이 번졌다.

무진도 입가를 조금 올렸다.

***

점심은 마르타의 집 앞에서 먹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음식이 모였다. 베른의 아내는 버터를 발라 구운 빵을 가져왔다. 노인은 꿀에 재운 말린 열매를 내놓았다. 양털 가위 주인은 치즈 덩어리를 놓으며 말했다.

“양이 저보다 먼저 좋아했습니다. 덜 붙잡고 끝났거든요.”

무진은 치즈를 두껍게 잘랐다.

빵 사이에 끼우고 고기까지 얹었다. 마르타가 눈을 동그랗게 뜨자 그가 물었다.

“같이 먹으면 안 됩니까?”

“아뇨. 맛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맛있습니다.”

토빈이 즉시 따라 했다.

마르타는 차를 가져오다가 주전자를 탁자에 급히 내려놓았다. 손에 감은 천이 젖어 있었다. 뜨거운 물이 천으로 스며들면서 손가락까지 열이 전해진 모양이었다.

그녀는 손을 털고 다시 천을 접었다.

주전자의 손잡이는 불에 직접 닿아 검게 변해 있었다. 짧은 주둥이 아래로는 흘러내린 찻물이 갈색 줄을 남겼다.

무진이 그것을 당겨 왔다.

“이것도 손이 아프군.”

“불에서 내린 지 얼마 안 돼서 그래요. 좀 기다리면 됩니다.”

그는 주전자를 보다가 제 앞의 식은 찻잔을 봤다.

기다리면 손은 편해졌다.

차도 식었다.

무진은 옛 작업장에서 겨울마다 쓰던 보온병을 떠올렸다. 바깥과 안쪽을 떨어뜨려 놓으면 속의 열이 쉽게 빠져나가지 않았다. 이곳의 금속이라면 그 사이에 열을 머금는 결까지 둘 수 있었다.

“차를 조금 더 끓여 주시겠습니까.”

마르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동안 낡은 주전자에서 찌그러진 배가 펴졌다. 검은 손잡이는 몸통으로 스며들었다. 대신 양옆에 손바닥이 자연스럽게 얹히는 넓고 얕은 홈이 생겼다.

안쪽에는 물을 담는 둥근 벽을 새로 세웠다. 두 벽 사이는 비웠다. 입구와 바닥을 잇는 가느다란 부분에는 열이 바깥으로 건너기 어려운 결을 놓았다.

속벽은 따뜻함을 오래 품었다.

겉벽은 맨손에 편한 온기를 유지했다.

무진은 주둥이를 길게 빼다가 다시 줄였다. 끝부분을 얇게 세우고 아랫면에 작은 턱을 만들었다. 물을 따르고 세웠을 때 마지막 방울이 배를 타고 흐르지 않고 안으로 돌아가게 했다.

뚜껑에는 엄지로 누르는 넓은 잎 모양 판이 생겼다.

밑바닥 한쪽에 작은 각인이 찍혔다.

마르타가 끓인 차를 가져왔을 때, 탁자 위에는 잎사귀를 포갠 듯한 은회색 그릇이 놓여 있었다. 배를 감싼 세로 굴곡은 빛을 따라 옅은 금빛을 띠었다.

“손잡이는요?”

“없어도 됩니다.”

뜨거운 차가 안으로 쏟아졌다.

마르타는 천을 찾았다. 무진은 먼저 두 손으로 주전자 양옆을 감쌌다. 김은 입구에서 피어올랐지만 손가락은 편안하게 펴져 있었다.

“잡아 보십시오.”

그녀는 손끝 하나만 댔다.

곧 두 손바닥을 붙였다.

“갓 구운 빵보다 덜 뜨거워요.”

“잡는 데는 그 정도면 좋겠군요.”

마르타가 주전자를 들어 잔에 차를 따랐다. 손잡이 하나에 손가락을 걸 때보다 두 손에 무게가 고르게 실렸다. 주전자를 바로 세우자 주둥이에 맺힌 물방울이 안으로 말려들었다.

탁자에는 한 방울도 떨어지지 않았다.

토빈이 밑을 들여다봤다.

“구멍이 있어요?”

“없다.”

“그런데 안 흘러요?”

무진은 주둥이 끝을 가리켰다.

“여기가 잡아 주는 거다.”

토빈은 자기가 마시던 잔을 천천히 기울였다가 세웠다. 찻물이 손등으로 흘렀다.

마르타가 얼른 닦아 주었다.

무진은 아이의 잔도 받아 들었다. 입술에 닿는 테를 부드럽게 만들고, 작은 손이 받치는 아랫부분에 둥근 홈을 냈다.

“잔은 기울여서 마셔라.”

토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그가 물었다.

“그럼 주전자는 추울 때 껴안고 자도 돼요?”

무진은 주전자의 둥근 배를 보았다.

차를 따르는 물건에서 끝낼 이유는 없었다.

***

오후에는 타원형의 얇은 금속 주머니가 생겼다.

마르타가 산에서 장작을 지고 내려올 때 등에 댈 수 있는 크기였다. 속에 뜨거운 물을 담으면 넓은 겉면으로 온기가 천천히 퍼졌다. 단단한 테는 장작의 무게를 넓게 나눠 받았다. 어깨끈에 걸 수 있는 고리도 달렸다.

마르타는 그것을 등에 대고 한참 서 있었다.

“옷이 마르겠어요.”

무진은 전날 여자의 젖은 어깨를 떠올렸다.

“그것도 좋겠군요.”

“겨울에는 땀 흘린 채 내려오는 게 제일 추워요. 집에 와서 불 앞에 앉아도 등이 한참 시리고.”

그녀가 금속 주머니 가장자리를 쓸었다.

“이건 장작보다 제가 먼저 지고 싶네요.”

옆에 있던 여관 주인이 목을 가다듬었다.

그의 눈은 계속 주전자에 가 있었다.

무진이 물었다.

“몇 잔 나갑니까?”

“예?”

“차 한 번 끓이면.”

주인의 얼굴이 환해졌다.

“저녁에는 스무 잔도 나갑니다.”

여관에는 두 손으로 들 수 있는 큰 주전자가 생겼다. 따르는 동안 뚜껑을 붙잡지 않아도 되도록 걸림턱을 넣었다. 바닥은 넓고 안정적이었다. 겉면에는 여관 간판에 그려진 보리 이삭을 양각으로 새겼다.

주인이 품에 안자 턱 아래까지 올라왔다.

“방마다 자랑하고 다니겠는데요.”

“차를 담으십시오.”

해가 기울 무렵에도 마르타의 주전자에서는 뜨거운 차가 나왔다.

베른은 지붕의 낡은 널빤지를 갈고 내려와 한 잔을 받아 들었다. 굽었던 어깨에는 톱밥이 붙어 있었다. 그는 차를 마시고 나서 밭 쪽을 돌아봤다.

“내일도 저만큼 갈리겠지요?”

“망가지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그 말이 참 좋네요.”

무진은 늦은 점심부터 계속 차지하고 있던 의자에 등을 기댔다. 마르타가 마지막 빵을 반으로 갈라 주었다. 가운데에는 버터가 두툼하게 들어 있었다.

그는 사양하지 않았다.

빵을 베어 물자 꿀과 버터가 함께 녹았다.

마당 저편에서 노부부가 서로의 낫을 구분하려고 자루에 천을 묶었다. 양털 가위 청년은 다 깎은 털을 자루에 담았다. 토빈은 제 삽으로 어머니가 심을 향초 자리를 파고 있었다.

아이가 삽자루를 놓고 손바닥을 폈다.

물집이 생겼는지 살피는 모양이었다.

아무것도 없자 다시 삽을 들었다.

무진은 그 모습을 보다가 자기 손을 내려다봤다. 굳은살이 겹겹이 박인 손이었다. 쇠를 붙잡고 평생 익힌 자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 손으로 만든 물건들이 지금 다른 손들에 쥐어져 있었다.

그는 남은 빵을 천천히 먹었다.

저녁 종이 울렸다.

금 간 소리가 마을 위로 퍼졌다. 무진은 여관 앞의 작은 종을 돌아봤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부터 느꼈던 균열이 여전히 벌어져 있었다.

그가 손가락을 가볍게 들었다.

종을 흔들던 문지기가 다음번 줄을 당겼다.

댕.

맑고 깊은 울림이 지붕 사이를 흘렀다.

문지기는 줄을 잡은 채 위를 올려다봤다. 마당 사람들도 하나둘 고개를 들었다. 토빈은 삽을 품에 안았다.

무진은 찻잔을 들었다.

아직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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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차 끝 3

ReNovels · 한 회차씩, 이야기 속으로.

회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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