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신, 대장장이 강무진

회차 3

제3장 — 떠돌이 대장장이

마을은 낮은 흙담과 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었다.

수레가 입구에 닿자 개들이 먼저 짖었고, 장작을 나르던 사람들이 손을 멈추는 동안 우물가의 여자들은 낯선 차림의 강무진을 훑어보았다. 이곳에서는 본 적 없는 형태의 작업복과 녹슨 낫 조각을 단 지팡이. 불탄 흔적 하나 없이 온전한 옷은 숲길을 지나며 흙과 풀물이 묻었어도 여전히 이질적이었다.

수레를 몰던 사내가 사람들에게 무언가 설명하며 강무진이 망치질을 흉내 냈던 동작까지 따라 하자 몇 사람이 웃었다. 그러나 사내가 수레 뒤의 부러진 괭이를 들어 보이자 시선이 일제히 마을 안쪽으로 모였다.

그곳에 대장간이 있었다.

대장간이라기보다는 지붕을 덧댄 작업막에 가까웠다. 흙으로 쌓은 화덕과 작은 풀무, 숫돌, 집게 몇 자루가 전부였으며, 한가운데 놓인 모루는 오른쪽 뿔 아래에서부터 금이 뻗어 있었다.

강무진이 마을 밖에서 느낀 바로 그 균열이었다.

모루 곁에는 왼손을 붕대로 감은 노인이 앉아 있었다. 노인은 강무진을 보더니 눈썹을 찌푸렸고, 수레꾼과 짧게 말을 주고받은 뒤 턱으로 모루를 가리켰다.

강무진은 가까이 다가가 손을 얹었다.

차가운 쇠의 결이 손바닥으로 밀려왔다.

겉으로 드러난 금은 하나였으나 내부에는 머리카락보다 가는 갈래가 셋 더 퍼져 있었다. 탄소가 고르게 섞이지 않은 쇳덩이를 덧붙여 만든 모루인 데다, 화덕 옆에 너무 오래 두어 한쪽만 반복해서 달아오른 흔적도 남아 있었다. 이대로 망치를 내리치면 뿔 부분이 떨어져 나갈 터였다.

강무진은 균열을 가리킨 다음 손가락 두 개를 벌렸다. 벌어진 손가락을 더 크게 펼치자 노인의 표정이 굳었다.

“쓰면 안 됩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뜻은 전해진 듯했다.

노인이 붕대 감은 손을 들어 보이자 가장자리에 배어 있던 검붉은 얼룩이 드러났다. 이미 튄 파편에 다친 모양이었다.

강무진은 화덕을 살폈다. 숯은 습기를 먹었고 풀무의 가죽은 군데군데 갈라져 있었다. 좋은 조건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손을 놓을 정도도 아니었다.

그가 수레 뒤의 괭이를 가리키자 사내가 그것을 건넸다. 날과 목이 만나는 곳이 부러진 괭이는 얇게 늘인 쇠를 억지로 구부려 자루에 물린 물건이었고, 파단면 속에는 검은 불순물이 길게 이어져 있었다.

괭이를 고치려면 모루가 필요했다.

모루부터 살려야 했다.

강무진은 노인에게 집게와 숯을 가리킨 뒤 풀무 손잡이를 당기는 시늉을 했다. 노인은 그의 손과 얼굴을 번갈아 보았고, 수레꾼이 옆에서 무언가 말하는 동안 소년은 강무진이 만든 낫 지팡이의 작은 각인을 내보였다.

한참 뒤, 노인은 자기 가슴을 두드렸다.

“브란.”

강무진도 자신을 가리켰다.

“강무진.”

“진…… 체르?”

“강무진.”

브란은 이름을 몇 번 굴려 보고 나서야 화덕 앞에서 물러났다.

강무진은 먼저 풀무를 손봤다. 버려진 가죽 조각을 물에 불리는 한편, 녹슨 못 가운데 중심이 살아 있는 것만 골라 펴서 갈라진 자리를 꿰맸다. 숯도 젖은 것과 마른 것을 나눠, 마른 숯으로 불길을 세우면서 젖은 것은 화덕 가장자리에서 말렸다.

작업막 앞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강무진은 그들을 보지 않았다. 불은 구경꾼을 봐주지 않았다.

모루는 장정 넷이 붙어서야 움직였다. 강무진은 균열이 생긴 부분만 화덕 안으로 밀어 넣고, 달구지 않을 곳에는 진흙을 두껍게 발랐다. 전체를 가열하면 열이 빠지는 차이 때문에 다른 금이 생길 수 있었다.

풀무가 움직이자 불이 쇠를 핥았다.

어두운 적색이 선홍색으로, 다시 주황색으로 밝아졌다. 강무진에게 그 변화는 빛깔만이 아니었다. 열을 머금은 결정립이 부풀면서 불순물이 낀 경계가 거칠게 맞물렸고, 균열 끝에는 응력이 가는 바늘처럼 몰려 있었다.

그가 손을 뻗었다.

닿지 않은 모루가 낮게 떨리자 주변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강무진은 균열 양쪽의 쇠를 조금씩 움직였다. 힘으로 눌러 붙이면 겉만 닫히고 속에는 빈틈이 남기에, 먼저 불순물을 가장자리로 밀어냈다. 그러고는 갈라진 면의 굴곡을 맞춘 뒤 가열된 결정립끼리 맞물리게 했다.

이마에서 땀이 흘렀다.

낫 조각을 움직일 때와는 달랐다. 모루는 두껍고 무거웠으며, 축복이 쇠의 상태를 알려 주어도 움직이는 힘과 집중까지 대신해 주지는 않았다. 가느다란 갈래 하나만 놓쳐도 망치질을 견디지 못했다.

“망치.”

강무진이 빈손을 내밀자 브란이 가장 큰 망치를 건넸다.

탕.

첫 소리는 탁했다.

아직 아니었다.

강무진은 모루를 반 뼘 돌려 산소가 지나치게 닿는 자리를 피했다. 온도가 조금 더 오르자 표면에 얇은 산화막이 피어났다.

망치가 다시 내려갔다.

탕. 탕. 탕.

처음에는 균열 바깥을 넓고 약하게 쳐서 흩어진 결을 안으로 모은 뒤 타격 지점을 좁혔다. 망치의 모서리와 평면을 번갈아 쓰며 손목으로 방향을 잡았다. 너무 세면 붙기 시작한 조직이 밀려났고, 약하면 충격이 속까지 닿지 않았다.

수십 번의 타격 끝에 소리가 바뀌었다.

탁한 울림 뒤에 맑은 꼬리가 붙었다.

강무진은 망치를 멈추고 모루를 물에 넣는 대신, 재와 마른 흙을 채운 구덩이에 묻었다. 급히 식히면 애써 붙인 자리 주변이 다시 갈라질 수 있었다.

기다리는 동안에는 괭이를 손봤다.

부러진 부분을 잘라 내고 남은 쇠의 결을 따라 목을 새로 뽑았으며, 덧댈 재료로는 낡은 말굽 두 개 중 비교적 질긴 것을 골랐다. 괭이날을 달군 뒤 흙을 찍는 면은 단단하게, 목 부분은 질기게 남겼다. 담금질할 때는 날끝부터 비스듬히 물에 넣었다.

치익.

하얀 김이 솟았다.

강무진은 열이 빠지는 경계가 날의 중간을 지나는 순간 괭이를 꺼내 숫돌로 날을 세우고 자루 구멍을 다듬었다.

마지막에는 작은 끌을 집었다.

괭이날의 목 가까이에 두 번 꺾인 선을 새기고 가운데에 짧은 획을 붙였다. 멀리서는 망치와 모루가 겹친 듯 보이는 단순한 표식이었다.

수레꾼이 각인을 알아보았고, 소년은 낫 조각의 표식을 옆에 대 보았다. 두 표식은 같았다.

강무진이 괭이를 내밀자 사내는 굳은 땅을 찍었다.

퍽.

괭이날이 흙을 깊이 물었다. 두 번, 세 번 내리쳐도 목은 흔들리지 않았으며, 충격은 날에서 자루로 부드럽게 흘렀다.

사내는 작은 자루를 가져와 강무진에게 내밀었다. 안에는 납작한 동전 다섯 닢이 있었지만, 강무진은 한 닢만 집었다.

숯도, 말굽도 마을 것이었다. 품값으로는 충분했다.

사내가 나머지를 다시 내밀었다.

“하나면 됩니다.”

강무진이 손가락 하나를 세우자 사내는 더 권하지 않았다. 대신 수레에서 둥근 빵 한 덩이를 꺼내 그의 손에 얹었다.

강무진은 빵을 돌려주지 않았다.

“고맙습니다.”

해가 기울 무렵 모루를 꺼냈다.

표면의 산화막을 갈아 내자 균열 자리에 옅은 선이 남았다. 애초에 재료가 고르지 않은 물건이었으므로 새것처럼 만들 수는 없었다.

그래도 몇 해는 더 버틸 터였다.

강무진은 작은 망치로 모루의 중앙을 두드렸다.

챙.

맑은 울림이 작업막 아래로 번졌다.

브란은 직접 망치를 들어 모루의 뿔과 가장자리, 중앙을 차례로 쳤다.

챙. 챙. 챙.

노인은 오랫동안 모루 위에 손을 올려 두었다가 이윽고 강무진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강무진도 같은 깊이로 숙였다.

그날 밤 그는 작업막 한쪽에서 잠들었다.

다음 날부터 낫과 솥, 손수레와 문고리가 밀려들었다. 강무진은 긴 말을 몰랐지만 물건을 가져온 손과 옷을 보고 순서를 정했다. 당장 밭에 나갈 농부의 낫과 아침 물을 끓일 솥이 먼저였고, 아직 버틸 경비병의 창과 곡물상의 장식 주문은 뒤였다.

브란과 아이들은 그에게 이곳의 말을 가르쳤다. 불은 ‘아르’, 쇠는 ‘페르’, 망치는 ‘마르토’였다. 아이들이 “마르토!”를 외치면 강무진은 “망치”라고 답했고, 며칠 뒤 작업막에는 두 세계의 말이 함께 울렸다. 잡아라, 돌려라, 쳐라, 멈춰라. 쇠가 내는 소리에는 애초부터 통역이 필요 없었다.

한 달 뒤에는 이웃 마을의 쟁기날과 말발굽까지 찾아왔다. 강무진은 품삯을 모아 자신의 망치를 벼렸다. 탄소가 많은 쇠는 타격면에, 질긴 연철은 몸통에 놓고 사흘 동안 약한 풀무의 열을 지켰다. 축복은 쇠의 상태를 알려 주었지만, 망치가 닿을 자리와 각도는 평생의 경험으로 정했다.

완성한 망치 옆에는 두 번 꺾인 선과 가운데의 짧은 획을 새겼다. 망치와 모루를 닮은 그 표식이 이름보다 먼저 장터를 돌자 가짜도 곧 나타났다. 한 상인이 엉성한 칼에 비슷한 선을 긁어 값을 올려 받으려 했던 것이다.

“내 것이 아닙니다.”

강무진은 빗나간 획을 짚은 뒤 칼등을 모루 모서리에 가볍게 쳤다.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날이 갈라졌고 검은 불순물이 밴 단면이 드러났다.

“쇠는 거짓말을 안 합니다.”

그날 이후 표식을 흉내 내는 자는 사라졌다.

겨울이 오기 전 강무진은 망치 두 자루와 집게, 줄, 숫돌을 챙겼다. 브란은 낡은 휴대용 풀무를 내주었고, 강무진은 새로 배운 말로 봄에 다시 올 수도 있다고 약속한 뒤 길을 나섰다.

그는 강가와 구릉, 작은 성곽 도시를 지나며 갈고리와 쟁기, 창촉을 고쳤다. 영주의 관리가 농부의 금 간 쟁기보다 멀쩡한 장검을 먼저 내밀었을 때도 순서는 바뀌지 않았다.

“검은 오늘 안 부러집니다.”

계절 하나가 흐르는 동안 꺾인 선은 산길과 강을 건넜고, 소문은 사람의 걸음보다 빨리 다음 마을에 닿았다.

강무진은 그것을 알지 못한 채 다음 마을의 화덕 앞에 앉아 있었다. 손에는 이가 빠진 도끼날이 들려 있었다.

탄소의 분포를 살피던 그가 고개를 들었다.

멀리서 무거운 금속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꺼운 망치 셋.

철테를 두른 장화 한 켤레.

사슬 갑옷과 사람 키만 한 양날도끼.

땅을 누르는 걸음은 짧고 단단했다.

잠시 뒤 대장간 문이 열렸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수염을 금속 고리로 묶은 사내가 들어왔다. 인간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으나 어깨는 문틀에 닿을 만큼 넓었다.

그는 작업대 위에 각인이 찍힌 쟁기날을 내려놓았다.

“네가 강무진인가?”

이번 말은 강무진도 알아들었다.

강무진이 망치를 내려놓았다.

“그렇습니다.”

사내는 굵은 손가락으로 각인을 두드렸다.

“도리아 스톤빔이다.”

그의 눈이 화덕보다 뜨겁게 빛났다.

“내 앞에서 쇠를 두드려라. 네 소문이 망치질만큼 단단한지 보겠다.”

회차 끝 3

ReNovels · 한 회차씩, 이야기 속으로.

회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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