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의 신, 대장장이 강무진

제18장 — 숲의 답

화로의 불길이 높아졌다.

도리아가 송풍 손잡이를 당길 때마다 숯 사이로 흰빛이 번졌고, 강무진은 달군 철띠를 모루 위에 올렸고 방패 가장자리에 두를 물건이라 날처럼 단단할 필요는 없었다. 충격에 깨지지 않을 만큼 질기면서도 방패의 곡면을 따라 휠 수 있도록, 두께와 온도를 고르게 맞추는 편이 중요했다.

망치가 세 번 내려갔다.

네 번째 타격을 앞두고 강무진은 손을 멈췄고 밤새 북서쪽 산길을 따라 내려온 쇠의 무리가 가까워지면서 서로 다른 결이 선명해졌기 때문이었다. 앞선 행렬에서 느껴지는 금속은 대부분 가늘고 가벼웠으며, 일정한 무게로 벼린 작은 촉들이 사람의 걸음에 맞춰 흔들렸다. 촉마다 남은 미세한 나선 결은 그가 전에 손질했던 실바나의 화살과 같았다.

“엘프입니다.”

도리아가 송풍 손잡이를 놓지 않은 채 고개를 돌렸다.

“저 많은 쇠가 전부 화살이라고?”

“대부분은 그렇습니다.”

“활쟁이들이 숲 하나를 비울 만큼 챙겨 왔군.”

강무진은 북쪽에 남은 다른 신호를 다시 더듬었고 두꺼운 철판과 긴 창날, 넓은 방패의 테두리로 보이는 쇠는 여전히 먼 능선 너머에 머물러 있었다. 밤사이 가까워지지 않았고, 오히려 한동안 멈추어 방향을 재는 듯했다.

같은 무리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위협이 사라진 것도 아니었다.

방벽에서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가 연달아 들리자 강무진은 망치를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고 북문 안쪽에는 자경대가 모여 있었으며, 라칸은 낮게 엎드려 바람 냄새를 맡고 있었다. 그의 귀가 산등성이를 향해 곧게 섰다.

“피 냄새는 없어. 마족 냄새도 아니고.”

“숲에서 온 자들입니다.”

“실바나인가?”

“그럴 겁니다.”

라칸이 손을 내리자 자경대원들은 활을 내렸지만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훈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간 청년 하나가 시위에서 화살을 빼다가 바닥에 떨어뜨리자, 라칸이 턱짓했다.

“주워.”

청년이 얼른 허리를 숙였다.

“싸움이 나면 떨어뜨린 놈보다 줍느라 고개 숙인 놈이 먼저 죽는다.”

청년은 입술을 깨물며 화살을 주운 뒤 다시 대열에 섰다.

강무진은 북문을 막은 두 겹의 쇠사슬 앞에 멈췄고 수레 두 대가 안쪽에 비스듬히 놓였고 급히 박은 쇠기둥에서는 아직 기름 냄새가 났다. 외투를 걸치며 달려온 로젠은 망루에 먼저 사람을 올려보낸 뒤 북서쪽 산길을 살폈다.

“원로회의 답이 온 모양입니다.”

“좋은 답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거절뿐이었다면 실바나 경 혼자 돌아왔겠지요.”

붉은 불빛들이 가까워졌다. 횃불 위에 씌운 덮개가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가느다란 빛이 새어 나왔고, 마침내 행렬의 선두에 선 실바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녹색 망토 끝에는 먼 길의 흙이 말라붙어 있었다. 그 뒤로는 엘프 궁수 스물넷이 걸어왔는데, 모두 활과 화살통 두 개를 짊어졌으며 가슴과 어깨에는 단단한 나무판과 겹가죽을 엮은 경갑을 둘렀다.

그들은 북문에서 서른 걸음 떨어진 곳에 동시에 멈췄고 실바나만 홀로 앞으로 나왔다.

“삼림 엘프 원로회의 사절, 실바나 에일렌이 돌아왔습니다.”

강무진은 쇠사슬을 풀게 했다.

“들어오십시오.”

“먼저 전할 말이 있습니다.”

실바나의 활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원로회는 강철보루와 동맹을 맺지 않았습니다. 이곳을 국가나 영지로 승인하지도 않았습니다.”

방벽 위에서 작은 웅성거림이 일었지만, 실바나는 말의 속도를 바꾸지 않았다.

“원로회가 인정한 것은 접경의 위협과 제가 제출한 보고의 사실성입니다. 그에 따라 제 판단 아래 소규모 궁수대를 데려가는 것을 한 계절 동안 허락했습니다.”

로젠이 낮게 물었다.

“원로회의 정식 파병군은 아니라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지원자를 선발하고 지휘자를 정한 책임은 제게 있으며, 원로회는 그 재량을 제한적으로 허용했을 뿐입니다.”

병력은 왔으나 숲의 깃발도, 전면 동맹의 약속도 오지 않았다. 위험해지면 원로회는 이들을 정규군이 아니라고 선을 그을 수 있었고, 실패한다면 실바나 개인의 오판으로 남길 수도 있었다.

강무진은 실바나의 망토에 묻은 흙을 바라보았고 활대를 천천히 문지르는 엄지는 평소보다 굳어 있었다.

원하는 답을 얻어온 사람의 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빈손도 아니었다.

엘프들 가운데 머리가 희끗한 남자가 앞으로 나왔다.

“숲길 수비대에서 물러난 자들과 변경의 지원자들이다. 나를 포함해 궁수 스물넷, 테르윈 라에사르가 이들을 이끈다.”

그는 방벽과 목책, 북문을 막은 수레를 차례로 훑었고 환영받을 곳을 보는 얼굴이라기보다 무너질 곳을 찾는 눈에 가까웠다.

강무진이 물었다.

“조건은 무엇입니까?”

실바나가 답했다.

“궁수대의 지휘권은 테르윈에게 있습니다. 동족 포로를 구출할 가능성이 확인되면 그 임무가 우선되며, 강철보루가 먼저 마족 영토를 침범할 경우에는 참전하지 않습니다. 한 계절 뒤에는 각자가 잔류 여부를 다시 결정할 것입니다.”

라칸이 코웃음을 쳤다.

“싸우러 온 게 아니라 구경하러 왔군.”

테르윈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늑대의 해석은 언제나 소리부터 크나?”

라칸의 귀가 뒤로 젖혀지자 강무진이 두 사람 사이에 섰다.

“여기까지 온 이유가 구경입니까?”

테르윈은 강무진을 마주 보았다. 그의 시선은 얼굴보다 손에 오래 머물렀고, 화상 자국과 굳은살, 손톱 밑의 쇳가루를 차례로 확인하는 듯했다.

“실바나 에일렌이 본 것이 사실인지 판단하러 왔다.”

“보면 됩니다.”

“우리가 당신의 명령을 따르지 않아도?”

“맡은 자리는 지켜야 합니다.”

“그 자리는 누가 정하지?”

강무진은 북동쪽 방벽을 가리켰고 그곳은 지대가 낮았으며, 마른 개울이 방벽 바깥을 굽어 돌아 사각을 만들었다. 멀리 숲 가장자리까지 시야가 열리는 대신 엄폐물이 적어, 적의 움직임을 먼저 볼 수 있는 만큼 먼저 노출되는 자리였다.

“활을 가장 멀리 쏘는 사람이 정하십시오.”

테르윈이 그곳을 살폈다.

“좋은 자리를 내준다고 생각하나?”

“위험한 자리입니다.”

“솔직하군.”

“벽은 거짓말을 오래 못 합니다.”

강무진은 쇠사슬을 완전히 걷어내게 했다.

“지휘권은 가지십시오. 다만 경계 종이 울리면 정한 자리로 가야 합니다. 어느 종족이 공격받든 같습니다.”

테르윈은 한동안 답하지 않은 채 실바나를 보았고 실바나는 아무 말도 보태지 않았다.

마침내 그가 손을 들자 궁수 스물넷이 북문을 통과했다.

강철보루의 주민들은 길 양쪽으로 물러섰다. 아이들은 긴 귀와 녹색 망토를 바라보았고 어른들의 얼굴에는 기대와 경계가 함께 떠올랐으며, 엘프들 역시 염소수인이 끄는 수레와 인간들이 세운 목책, 흙을 다지는 오크 노인을 쉬지 않고 살폈다.

테르윈은 대장간 앞에 걸린 검은 철판에서 걸음을 멈췄다. 마족 포로의 장비에서 떼어낸 판으로, 새겨져 있던 글자는 지워졌고 그 옆에는 강무진의 작은 각인만 남아 있었다.

“저것은 무엇이지?”

“잡은 자들이 남긴 기록입니다.”

“마족을 생포했나?”

“셋을 잡았습니다.”

실바나가 덧붙였다.

“제가 숲 경계에 닿은 다음 날, 남겨 둔 바람 정령이 보루 서기의 봉인 쇠찰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없는 동안 포로 셋을 따로 가두고 분리 심문한 기록과 병력 운용·노예 수송 경로가 적혀 있어 원로회에 추가 보고로 제출했습니다.”

테르윈은 검은 철판을 바라본 채 말했다.

“원로들은 그 봉인 쇠찰까지 읽었다.”

그의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

“읽고도 허락한 것은 스물넷뿐이지.”

실바나의 손가락이 활을 한 번 조였다.

강무진이 대장간으로 들어가자 테르윈과 궁수 몇 명이 뒤따랐고 화로 앞에서는 도리아가 철띠를 다시 달구고 있었으며, 낯선 이들이 들어왔는데도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발 치워라. 바람길 막힌다.”

입구에 선 엘프가 눈썹을 치켜올렸다.

“우리는 원로회의 허락을 받고 왔다.”

“화로가 원로회 이름을 듣고 뜨거워지면 거기 계속 서 있든가.”

도리아가 달군 철띠를 꺼내며 콧김을 뿜었다.

“크흠. 아니면 비켜.”

테르윈이 손을 들자 엘프들은 벽 쪽으로 물러났다.

강무진은 그들의 화살 한 대를 받아 들었고 화살대는 곧았고 깃 세 장의 각도도 정확했으며, 화살촉에는 순도 높은 강철이 쓰였다. 다만 지나치게 단단하게 담금질되어 숲짐승의 가죽을 뚫기에는 좋아도 방패 가장자리에 비스듬히 맞으면 끝이 깨질 수 있었다.

“마족 갑옷을 쏴본 적 있습니까?”

“세 번 있다.”

“결과는?”

“백 보 안에서 겨드랑이와 목을 뚫었다.”

강무진은 화살촉을 손가락으로 눌렀고 금속의 결이 감각 안에서 가늘게 울렸고, 담금질 과정에서 생긴 응력은 촉 끝에 몰려 있었다.

“잘 만든 화살입니다.”

테르윈은 말없이 다음 말을 기다렸다.

“다만 다음 적은 큰 방패를 들고 올 겁니다.”

강무진은 화살촉을 화로 가장자리의 약한 불에 대고 화살대를 천천히 돌렸다. 열이 한쪽에 몰리지 않도록 먹인 다음, 강철의 긴장이 풀리되 날이 무너지지 않는 지점에서 꺼내 재 속에 눕혔다.

테르윈이 말했다.

“촉 끝을 무르게 했군.”

“깨지지 않을 겁니다.”

“대신 덜 파고들겠지.”

강무진은 모루 아래에서 갈고리처럼 끝이 굽은 시제품을 꺼냈다.

“방패를 뚫을 필요는 없습니다. 테두리나 이음매에 걸리면 됩니다.”

“뒤에서 줄을 당겨 방패를 기울이고, 다음 궁수가 틈을 쏜다.”

“그렇습니다.”

테르윈은 시제품을 세 번 돌려본 뒤 화살대에 끼워 무게중심을 확인했고 강무진은 그의 얼굴에서 감탄을 찾지 않았다. 물건을 살피는 손이면 충분했다.

“우리 화살을 얼마나 손볼 수 있나?”

“두 사람이 붙으면 해 뜨기 전까지 백오십 대입니다.”

도리아가 망치를 내리치며 끼어들었다.

“내 화로에서 누굴 붙일지는 내가 정한다.”

“그러면 정하십시오.”

“엘프 둘. 손 빠른 놈으로. 망치질은 맡기지 않는다. 화살대하고 깃만 만져.”

테르윈이 두 사람을 지목하자 그들은 못마땅한 얼굴로 앞으로 나왔으나 군말은 하지 않았다.

아이샤가 화살촉을 담을 쇠접시를 들고 다가왔고 낯선 이들을 한참 살피던 아이는 강무진 곁에 서서 물었다.

“엘프도 우리 편이야?”

대장간이 잠시 조용해졌다.

강무진은 테르윈이 대답하도록 기다렸다.

테르윈은 아이샤의 귀 끝과 목덜미에 남은 옅은 흉터를 보더니 손에 든 화살을 접시에 내려놓았다.

“한 계절 동안은 그렇다.”

“그다음은?”

“우리가 본 것을 전하고 다시 결정한다.”

아이샤는 화살촉 하나를 집어 눈높이에 맞췄고 강무진에게 배운 대로 휜 곳이 없는지 천천히 돌려본 뒤 접시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잘 보면 되겠네.”

도리아의 망치가 다시 내려갔다.

그날 오전, 엘프와 드워프는 같은 화로 곁에서 화살을 손봤다.

테르윈이 데려온 궁수들은 잠을 미루고 북동쪽 방벽으로 이동했다. 그는 직접 보폭을 재며 사격 위치를 정하고 방벽 위에 흰 나뭇가지를 꽂아 거리를 표시한 다음, 사정거리마다 쓸 화살을 나누어 놓았다.

인간 자경대원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자 엘프 궁수 하나가 그들을 불렀다.

“활을 들어라.”

“저희가 말입니까?”

“그 손으로 창만 잡을 생각인가?”

잠시 뒤 방벽 아래에 짚단 표적이 세워졌다. 엘프들은 인간과 수인에게 호흡과 발의 각도를 가르쳤으며, 같은 실수를 두 번 하면 활대로 팔다리를 밀어 자세를 바로잡았다.

라칸이 팔짱을 끼고 보다가 테르윈에게 물었다.

“우리 훈련까지 간섭할 셈인가?”

“옆 사람의 등을 꿰뚫지 않게 하는 건 간섭이 아니다.”

“말은 맞네.”

“늑대도 맞는 말을 알아듣는군.”

라칸이 송곳니를 드러냈다.

강무진은 둘 사이를 지나며 말했다.

“표적을 하나 더 세우십시오.”

라칸이 코로 숨을 내뿜었다.

“당신 아니었으면 벌써 물었어.”

“그러면 병력이 하나 줄어듭니다.”

“알아.”

정오 무렵, 실바나가 강무진을 찾아왔다.

강무진은 방벽 안쪽에 심을 철심을 다듬고 있었다. 땅속의 가느다란 광맥에서 뽑아낸 철은 불순물이 많아 날붙이에는 쓰지 못했지만, 돌과 나무를 붙드는 심봉으로는 충분했다.

실바나는 망치질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원로회에서 있었던 일을 더 말씀드리겠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접경 사안을 먼저 심의한 일곱 원로의 소위원회에서 둘은 제 재량 파견조차 반대했습니다. 인간이 세운 거점에 엘프의 피를 보낼 수 없다고 했습니다. 셋은 제한적인 시험을 허락했고, 나머지 둘은 끝까지 입장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열두 원로 전체의 정식 표결은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무엇이라 했습니까?”

“제가 본 것을 말했습니다.”

실바나의 목소리는 느리고 정확했다.

“노예 수송대를 부수고도 전리품을 먼저 세지 않은 사람, 엘프의 활과 수인의 검을 같은 모루 위에서 고친 대장장이, 해방된 아이가 스스로 고른 이름을 철패에 새겨 주고 임시 배급표에 올려 보호한 거점을 말했습니다.”

강무진은 철심을 뒤집었다.

“부족했군요.”

“부족했습니다. 원로들에게 인간의 약속은 짧습니다. 당신의 남은 삶을 전부 걸어도 그들에게는 한 시절일 뿐입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화가 나지 않습니까?”

강무진은 집게로 철심을 들었고 한쪽의 열이 아직 덜 빠져 이대로 두면 식는 동안 내부가 휠 터였다.

“오래된 쇠는 한 번 달군다고 펴지지 않습니다.”

실바나의 손이 멈췄다.

“몇 번이고 불에 넣어야 합니다. 깨지지 않을 온도를 찾아서.”

강무진은 철심을 재 속에 다시 묻었다.

“스물넷이면 됐습니다.”

“그들은 돕기보다 판단하러 왔습니다.”

“판단하게 두십시오.”

“잘못 판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다시 보여주면 됩니다.”

실바나는 방벽을 바라보았고 테르윈의 구령에 맞춰 날아간 화살 가운데 첫 발은 표적 왼쪽에 박혔고, 두 번째는 중앙에 가까웠다.

“저는 잘못 본 결론을 그대로 두지 않을 겁니다.”

그의 목소리는 높지 않았다.

“듣지 않은 자가 있다면 들을 때까지 말하겠습니다.”

강무진이 망치를 들었다.

“할 일이 많겠군요.”

“그렇습니다.”

실바나는 곧장 방벽으로 돌아갔다.

해가 서쪽으로 기울 무렵, 궁수 스물넷의 배치가 끝났다.

여덟은 방벽 위에, 여덟은 뒤편의 목조 발판에 자리 잡았으며 나머지 여덟은 교대와 기동을 맡았고 실바나는 궁수대 편제에 포함되지 않은 채 그 사이를 오가며 연락과 정령술을 담당했다. 로젠은 그 배치를 도면에 옮겼고, 엘프식 거리 표식과 인간식 경계 종, 라칸이 정한 자경대 교대 시간이 한 장에 함께 적혔다.

“이제야 방어선이라 부를 만해졌습니다.”

로젠이 말했다.

강무진은 방벽을 따라 시선을 옮겼고 북쪽에는 라칸과 자경대가 있었고, 북동쪽에는 테르윈의 궁수들이 자리를 잡았다. 실바나는 두 전열 사이를 잇고 있었으며, 대장간에서는 도리아가 마지막 갈고리 화살촉을 벼리는 동안 아이샤가 완성된 화살을 열 대씩 묶었다.

서로 다른 손이었다.

활을 쥐는 법도, 돌을 쌓는 법도 달랐다. 아직 한 덩어리라 부를 수는 없었고 맞댄 쇠 사이처럼 곳곳에 틈이 남아 있었지만, 그런 틈은 불에 넣고 두드려 줄이는 수밖에 없었다.

테르윈이 방벽 아래로 내려왔다.

“오늘 밤부터 우리가 북동쪽을 맡겠다.”

“그렇게 하십시오.”

“당신의 명령은 받지 않는다. 하지만 경계 종은 따르겠다.”

“충분합니다.”

“충분한지는 적이 정하겠지.”

그때 북쪽 망루에서 종이 울렸다.

한 번.

이번에는 누구도 허둥대지 않았다.

자경대가 정해진 자리로 움직이자 엘프들은 말없이 활을 들었고 도리아가 송풍구를 닫는 동안 로젠은 도면을 접어 품에 넣었고, 아이샤는 묶던 화살을 벽 쪽으로 옮겼다.

라칸이 망루 위에서 외쳤다.

“북쪽! 기마 여섯!”

강무진은 밤새 능선 너머에 머물던 무리에서 작은 쇠붙이 몇 개가 떨어져 나온 것을 느꼈다. 얇은 흉갑과 곡도, 말재갈이 정북쪽 황무지를 가로질러 빠르게 접근하고 있었으며, 그 뒤의 묵직한 철은 움직이지 않은 채 능선 너머에 남아 있었다.

선발 관측대였다.

“문은 열지 않습니다.”

강무진이 말하자 라칸은 북문 뒤에 방패를 세웠다. 자경대원들이 창을 들고 수레 사이에 섰으며, 손에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 창끝이 조금씩 흔들렸지만 대열을 벗어나는 자는 없었다.

반면 북동쪽 방벽에 오른 엘프들은 서두르지 않았다.

테르윈이 흰 나뭇가지 표식과 기마대의 거리를 번갈아 살피며 손가락 두 개를 들자, 교대조 여덟을 제외한 궁수 열여섯이 각기 다른 각도로 활을 기울였다. 방벽 아래에서는 실바나가 홀로 마른 풀에 손을 얹었다.

바람의 정령이 풀잎 사이를 훑었다.

흔들리던 흰 표식들이 일제히 멎었다.

기마대는 보루의 사정거리를 재려는 듯 크게 호를 그렸다. 선두의 마족이 안장에서 몸을 일으켜 방벽 높이와 북문의 구조를 살피는 동안, 뒤따르던 둘은 짧은 투창을 꺼냈다.

테르윈의 손가락 하나가 접혔다.

활시위 세 개가 먼저 울렸다.

첫 화살은 선두 말의 앞발 두 걸음 앞에 박혀 말을 옆으로 틀게 했고, 두 번째는 후미 기수의 투창 든 팔뚝을 스쳤다. 마지막 화살은 도리아가 벼린 갈고리 촉을 단 물건이었다. 그것은 기수의 몸이 아니라 안장 아래 늘어진 철고리에 걸렸으며, 촉에 묶은 가는 줄이 팽팽해지자 방벽 뒤의 궁수 둘이 동시에 몸을 낮췄다.

안장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기수가 황무지 바닥에 굴렀고 빈 말은 고삐를 끌며 달아났고 나머지 다섯이 즉시 방향을 돌렸으나, 실바나는 이미 두 번째 화살을 놓은 뒤였다.

화살은 도망치는 기수의 어깨너머를 지나 말재갈 옆 가죽끈을 끊었고 놀란 말이 고개를 치켜들며 옆의 말과 부딪혀 대열이 흐트러지자, 테르윈이 손을 폈다.

여섯 발이 차례를 두고 뒤따랐다.

죽이기 위한 화살은 아니었다.

두 발은 투창을 쥔 손과 말 앞의 흙바닥에 떨어졌고, 나머지 넷은 퇴로 오른쪽에 간격을 두고 박혔다. 기마대가 화살이 비워둔 왼쪽 길로 몰리자 마른 개울의 깊은 턱이 모습을 드러냈으며, 선두 두 필이 급히 속도를 줄이면서 뒤의 말들이 엉켰다.

“나가자!”

라칸이 외쳤다.

쇠사슬 한 겹이 풀리자 라칸과 자경대 넷이 북문 밖으로 뛰쳐나갔다. 바닥에 굴러떨어진 마족은 곡도를 뽑으려 했지만 라칸의 방패가 손목을 눌렀고, 자경대원들이 창끝으로 목과 옆구리를 에워쌌다.

달아난 기마대는 동료를 구하려 돌아오지 않았다.

테르윈은 마지막까지 활을 내리지 않았다. 적들이 사정거리 밖으로 벗어난 뒤에야 손을 펴자 궁수들의 활이 함께 내려갔으며, 아군이 문밖으로 나간 뒤에는 한 발도 날아가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라칸이 포로의 뒷덜미를 잡아끌고 돌아왔고 자경대원 하나의 뺨에는 투창이 스치며 생긴 가느다란 상처가 있었지만 걸음은 멀쩡했고, 사망자는 없었다.

테르윈이 강무진을 돌아보았다.

“우리가 맡은 자리는 지켰다.”

“보았습니다.”

“저들도 보았겠지.”

강무진은 능선 너머의 쇠를 더듬었다. 달아난 기마대의 말재갈이 그쪽으로 빠르게 멀어지고 있었고, 멈춰 있던 무거운 철들은 조금씩 간격을 좁히기 시작했다.

“예. 보고하러 갔습니다.”

로젠은 포로를 분리해 가두도록 지시한 다음 손상된 화살과 회수할 수 있는 갈고리촉을 세었고 갈고리촉 하나는 철고리에 부딪치며 끝이 조금 휘었지만 깨지지는 않았다.

강무진이 그것을 집어 들자 테르윈이 물었다.

“담금질을 풀지 않았다면?”

“부러졌을 겁니다.”

“그렇겠군.”

테르윈은 짧게 답하고 방벽 위로 돌아갔고 칭찬도 사과도 없었지만, 떠날 때에는 시제품 화살촉 하나를 더 집어 들고 있었다.

시험 파견대가 강철보루에서 치른 첫 교전은 짧았다.

그러나 화살의 쓰임과 경계 종의 약속, 서로 다른 지휘를 가진 자들이 어느 순간 함께 멈춰야 하는지는 충분히 드러났다. 엘프들은 자리를 지켰고 자경대는 그 화살 아래에서 문밖으로 나갔다가 살아 돌아왔다.

동맹은 아니었다.

그래도 방어선은 생겼다.

밤이 내린 뒤에도 엘프 궁수대는 자리를 비우지 않았다.

실바나는 홀로 바람의 정령을 북쪽으로 띄웠고, 테르윈은 궁수들을 두 명씩 짝지어 관측을 이어갔다. 인간 자경대는 엘프의 교대에 맞춰 종을 확인했으며, 라칸은 북문 밖에 나갔던 네 사람에게 같은 간격으로 다시 창을 세우게 했다.

포로는 입을 열지 않았다. 다만 회수한 흉갑의 안쪽에는 세 줄로 찍힌 규격표가 있었고, 포로에게서 회수한 곡도 한 자루는 능선 너머 적들의 곡도와 길이와 무게가 같은 규격품이었다. 급조한 정찰대의 장비가 아니었다.

강무진은 대장간 앞에 서서 먼 쇠의 움직임을 살폈다.

능선 너머에서는 철판들이 줄을 맞추고 있었다. 긴 창날들이 여러 줄로 나뉘었다가 다시 합쳐졌으며, 그보다 뒤에는 유난히 무거운 두 덩이가 천천히 움직였다. 걸음의 흔들림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메고 옮길 때 생기는 일정한 진동이 전해졌다.

도리아가 곁으로 와 수염을 쓸어내렸다.

“아까 놈들은 눈이었군.”

“그렇습니다.”

“눈이 돌아갔으니 다음에는 주먹이 오겠어.”

강무진은 대답 대신 갈고리 화살촉을 모루 위에 올렸고 휘어진 끝을 약한 불에 달군 뒤 망치로 두 번 바로잡고, 식기 전에 자신의 작은 각인을 밑동에 남겼다.

밤새 화로는 꺼지지 않았다.

동이 트기 전, 북쪽을 감시하던 엘프가 활대로 방벽을 두드렸고 소리는 크지 않았으나 정해진 신호를 아는 자들은 모두 일어났다.

실바나가 망루에 올랐고 라칸은 북문 앞으로 갔다. 로젠이 도면과 명부를 품에 넣는 동안 도리아는 긴 자루망치를 어깨에 걸쳤으며, 아이샤는 완성된 화살 묶음을 방벽 아래로 날랐다.

강무진은 앞치마를 벗어 작업대 위에 접어두었다.

밤새 줄을 맞추던 쇠가 능선 뒤에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두꺼운 방패 테두리와 갑옷 철판, 수백 개의 창날이 같은 보폭에 맞춰 황무지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 뒤에서는 여럿이 나누어 멘 두 개의 무거운 금속이 느리지만 멈추지 않고 가까워졌다.

아직 능선은 적의 모습을 가리고 있었다.

그러나 쇠는 숨지 못했다.

강무진은 검을 들고 북문으로 향했다.

회차 끝 18

ReNovels · 한 회차씩, 이야기 속으로.

회차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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