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아 스톤빔은 대답을 재촉하지 않고 작업대를 훑어보았다. 화덕의 깊이부터 모루의 모서리, 풀무 가죽의 마모까지 차례로 살피던 그는 강무진이 쓰던 망치를 집어 들려다 손잡이 앞에서 멈추었다.
남의 망치에 함부로 손대지 않는 것.
그 한 번의 멈춤으로 강무진은 상대가 어떤 부류인지 알았다.
도리아의 허리까지 내려온 수염에는 네 개의 금속 고리가 끼워져 있었다. 구리와 은, 무늬를 새긴 흑철에 이어 가장 아래에는 망치와 들보가 교차한 문장이 달려 있었고, 수염은 한 올도 잘린 흔적 없이 가지런히 땋여 있었다.
그는 작은 체구 안에 화로 하나를 품은 듯했다.
“무엇을 두드리면 됩니까?”
강무진이 묻자 도리아의 눈썹이 꿈틀했다.
“겁은 없군.”
“쇠를 두드리는 데 겁이 필요합니까?”
“크흠.”
도리아는 코로 묵직한 숨을 뿜었다. 화가 났다기보다 마음에 걸리는 말 한마디를 씹어 보는 얼굴이었다.
그가 작업대 위의 쟁기날을 세웠다. 강무진의 각인이 찍힌 물건으로, 오래 흙을 갈아 표면이 긁혔지만 접합부는 벌어지지 않았고 끝도 고르게 닳아 있었다.
“이 물건이 산 너머까지 왔다. 인간 상인이 스톤빔의 쟁기보다 두 계절은 오래 간다고 떠들더군.”
도리아가 굵은 손톱으로 날 옆면을 긁었다.
“얇은 강철을 질긴 몸통에 붙였다. 흙을 밀어내는 각도도 나쁘지 않아. 밭마다 흙이 다른 줄은 아는 솜씨다.”
칭찬처럼 들렸지만 그의 턱은 굳어 있었다.
“그런데 인간들이 말하더군. 드워프가 아니라도 이제 좋은 쇠를 얻을 수 있다고.”
대장간 밖이 소란스러워지며 열린 문틈으로 마을 사람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도리아와 함께 온 드워프 둘도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는데, 둘 다 등에 망치를 메었으나 도리아의 화로에 들어온 뒤로는 한 걸음도 더 다가오지 않았다.
도리아가 강무진을 똑바로 보았다.
“쇠는 우리 드워프의 뿌리다. 스톤빔가는 일곱 대째 산맥의 화로를 지켰지. 굴뚝돌 하나, 모루 받침 하나에도 우리 조상의 망치 자국이 남아 있다.”
그는 수염 끝의 문장을 쥐고 말을 이었다.
“떠돌이 인간 하나가 그 이름 위에 소문을 쌓게 둘 수는 없다.”
강무진은 쟁기날의 긁힌 자국을 바라보았다. 농기구는 땅을 갈면 됐고, 칼은 사람을 지키고 못은 집을 버티면 됐다. 만든 이의 종족은 쓰임에 아무것도 보태지 못했다.
그러나 도리아가 지키려는 것이 허명만은 아니었다. 손마디마다 오래된 화상 자국이 있었고, 오른손 엄지 아래에는 망치 자루에 쓸려 생긴 굳은살이 층층이 박혀 있었다. 화려한 갑옷보다 그 손이 그의 말을 증명했다.
강무진이 물었다.
“어디서 합니까?”
도리아의 입꼬리가 들렸다.
“우리 화로에서.”
“좋습니다.”
“조건도 안 듣나?”
“말하십시오.”
도리아가 손가락 두 개를 폈다.
“같은 광석, 같은 숯, 같은 시간. 각자 칼 한 자루를 만든다. 장식은 없다. 마법도 금지다. 완성된 칼의 날과 결, 균형으로 승부를 가른다.”
강무진은 잠시 생각했다. 철의 축복이 마법인지 아닌지는 그도 알지 못했으나, 쇠를 느끼고 움직이는 힘임은 분명했다. 그것을 숨긴 채 겨루면 공정하지 않았다.
“나는 쇠의 상태를 느낄 수 있습니다.”
도리아의 눈이 가늘어졌다.
“어느 대장장이든 느낀다.”
“그보다 더 자세히.”
강무진은 작업대 아래 바구니에서 쇳조각 하나를 꺼내 손바닥 위에 올리고 손가락을 접었다.
차가운 쇠가 미세하게 떨리면서 표면에 붙은 녹가루가 떨어졌고, 못대가리만 한 조각이 천천히 떠올랐다. 문 앞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숨을 삼키자 도리아와 함께 온 드워프들의 손이 등에 멘 망치로 향했지만, 도리아만은 움직이지 않았다.
쇳조각이 반 바퀴 돌아 강무진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이렇게 다룰 수도 있습니다.”
도리아는 한참 동안 쇳조각을 노려보다 물었다.
“그 힘으로 칼을 만들겠다는 건가?”
“쓰지 말라면 쓰지 않겠습니다.”
“쇠 속을 보는 감각도?”
“가능한 만큼 닫겠습니다.”
도리아의 수염 고리가 부딪쳐 낮은 소리를 냈다. 그는 생각할 때마다 수염을 한 번씩 쓸어내렸다.
“아니다.”
도리아가 말했다.
“다 써라.”
문밖의 드워프 하나가 놀라 외쳤다.
“도리아!”
“화로 앞에서 끼어들지 마라!”
도리아가 고함치자 드워프는 즉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다시 강무진을 보았다.
“망치가 무거우면 무거운 망치를 쓰는 법이다. 좋은 눈을 타고났다면 눈을 뽑고 겨루진 않아. 네가 가진 것을 전부 써라. 나도 스톤빔이 쌓은 것을 전부 쓸 테니.”
강무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겠습니다.”
도리아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사흘 뒤다. 회색산 남쪽 굴뚝을 찾아와라. 도망치면 네 각인이 찍힌 물건을 모조리 사들여 녹여 버리겠다.”
“안 도망칩니다.”
“크흠. 그 말도 쇠처럼 단단한지 보지.”
도리아는 쟁기날을 옆구리에 끼고 돌아섰다가 문을 나서기 전 한 번 멈추었다.
“그 망치.”
그의 시선이 강무진이 직접 만든 짧은 망치에 머물렀다.
“네가 만들었나?”
“그렇습니다.”
“중심을 뒤로 당겼군.”
“오래 칠 물건이라서요.”
도리아는 대꾸하지 않았으나, 조금 전보다 느린 걸음으로 대장간을 떠났다.
사흘 뒤, 강무진은 회색산에 닿았다.
산허리에 자리한 드워프 마을은 멀리서부터 연기로 보였다. 돌집마다 굴뚝이 솟은 사이로 붉은 불똥이 낮에도 별처럼 흩날렸으며, 길은 수레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넓고 평평하게 다져져 있었다. 배수로 덮개와 난간, 문고리까지 모두 쇠였다.
장식은 많지 않았지만 어디에 손을 대도 헐거운 곳이 없었다.
강무진은 걸음을 늦추었다. 다리의 못은 물길에 부식되지 않도록 머리를 둥글게 눌렀고, 광차의 바퀴에는 마모된 테만 갈아 끼울 수 있도록 홈이 파여 있었다. 돌벽 사이를 잇는 철제 죔쇠에는 지진을 견디도록 약간의 유격을 두었다.
쌓인 세월이 보였다.
스톤빔의 화로는 마을 가장 안쪽, 산의 암벽을 그대로 파낸 거대한 대장간 안에 있었다. 굴뚝은 세 개였고 수차와 연결된 풀무가 일정한 간격으로 숨을 뱉었다.
쿵. 후우.
쿵. 후우.
땅 아래에서 거인이 숨 쉬는 소리 같았다.
대장간 앞에는 드워프들이 층층이 모여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어른들의 어깨 위에 앉았으며, 나이 든 드워프들은 수염에 가문의 고리를 달고 돌의자에 자리 잡았다. 인간은 강무진 혼자였다.
그가 안으로 들어서자 수십 쌍의 눈이 한꺼번에 따라붙었다.
도리아는 이미 준비를 마친 뒤였다. 두 화덕 사이에 선 채 가죽 앞치마의 끈을 조이고 있었는데, 길게 땋은 수염은 불에 닿지 않도록 가슴에 감아 올린 뒤 철망으로 감쌌다. 잘라내면 간단했겠지만 그에게는 선택지조차 아닌 모양이었다.
도리아가 강무진의 가방을 보았다.
“개인 도구는 허용한다. 망치와 집게뿐이다.”
강무진은 가방을 열어 짧은 망치 두 자루와 집게, 줄, 숫돌을 보였다. 도리아는 하나씩 확인하면서도 손을 대지는 않았다.
“광석부터 고른다.”
화로 중앙에는 같은 광산에서 캐낸 철광석이 쌓여 있었다. 붉은빛을 띤 갈철광과 검은 자철광이 섞여 있었는데, 겉보기에는 고르게 나누어 놓았으나 쇠의 양과 불순물은 제각각이었다.
“같은 광석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강무진이 묻자 도리아가 눈을 빛냈다.
“같은 더미다.”
“고르는 눈도 솜씨라는 뜻이군요.”
“쇠맛 좀 아는군!”
도리아가 무릎을 치며 웃었고, 둘은 동시에 광석 더미 앞에 앉았다.
도리아는 돌을 집어 무게를 가늠하고 모서리를 깨뜨려 속빛을 살폈다. 혀끝을 대 보거나 작은 망치로 두드려 울림을 듣는 손놀림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스톤빔의 광산에서 나온 돌을 평생 다룬 사람의 선택이었다.
강무진은 손바닥을 더미 가까이 가져갔다.
철의 기척이 손금 안으로 스며들자 광석마다 다른 맥박이 느껴졌다. 어떤 것은 철분이 고르게 퍼졌고, 어떤 것은 중심에만 검은 핵이 뭉쳐 있었다. 황이 섞인 돌에서는 바늘처럼 따끔한 감각이 올라왔으며 규소가 많은 것은 둔하고 메말랐다.
그는 가장 순도 높은 것만 고르지 않았다. 칼에는 단단한 날과 버티는 몸이 모두 필요했기에 탄소를 받아들일 철과 여러 번 접어도 결이 끊기지 않을 철을 따로 골랐다. 지나치게 순한 쇠는 몸통으로 쓰기 좋았지만 날을 세우기 어려웠다.
강무진이 일곱 덩이를 꺼냈을 때, 도리아는 아홉 덩이를 골라 놓은 뒤였다.
도리아의 눈이 그의 몫을 훑었다.
“적다.”
“찌꺼기도 적습니다.”
“말은 완성하고 해라.”
“그러겠습니다.”
제련이 시작되었다.
도리아는 같은 크기의 숯을 층층이 쌓아 불을 한 점으로 몰았고, 강무진은 수차 바람을 갈라 화덕 전체의 온도를 맞췄다. 거의 동시에 붉은 해면철이 나왔다.
깡! 깡!
도리아의 무거운 망치는 앞선 자국의 절반을 어김없이 겹쳤다. 강무진은 작은 망치로 불순물이 빠질 길을 열고 접합면을 물결처럼 눌렀다.
“잔재주를 부리는군!”
“쓸 만합니다.”
“붙고 나서 말해라!”
첫 우열은 담금질에서 갈렸다. 도리아의 칼이 짧고 맑게 울린 반면, 강무진의 칼에는 단단한 날과 질긴 등이 맞닿은 옅은 선이 떠올랐다. 도리아가 그것을 휨으로 오해해 비웃었지만, 강무진은 설명하지 않고 숫돌을 당겼다. 승부는 말이 아니라 시험대에서 끝날 일이었다.
해가 산등성이 아래로 기울 무렵 두 칼이 완성되었다.
도리아의 칼은 짧고 넓었다. 칼끝으로 갈수록 무게가 실려 갑옷이나 두꺼운 뼈를 쪼개기에 적합했으며, 칼자루와 날 사이에는 손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낮은 턱만 두었다. 가문의 문장도, 보석도 없었다.
강무진의 칼은 길고 단정했다. 한쪽 날은 얇고 등은 두꺼웠으며, 손잡이에는 아직 가죽도 감지 않았다. 장식이라 부를 만한 것은 없었다.
강무진은 칼자루 가까운 곳에 작은 정으로 각인을 새겼다.
두 번 꺾인 선과 가운데의 짧은 획.
톡. 톡. 톡.
도리아는 그 소리를 들으며 자신의 칼 아래에 망치와 들보가 교차한 스톤빔의 문장을 찍었다.
두 사람이 완성된 칼을 모루 위에 나란히 놓자 대장간 안이 조용해졌다.
심사를 맡은 늙은 드워프 셋이 돌의자에서 일어났다. 셋 모두 수염이 무릎 아래까지 내려왔으며, 손에는 닳은 확대경과 작은 시험망치가 들려 있었다.
가장 앞의 드워프가 말했다.
“먼저 눈으로 본다. 다음은 소리다. 그 뒤에 휨과 날을 시험한다.”
도리아가 팔짱을 꼈다.
“부러져도 불평하지 않겠다.”
강무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물건은 써 봐야 압니다.”
늙은 드워프가 도리아의 칼부터 집어 들었다. 확대경이 날을 훑었고, 시험망치는 칼등과 칼날, 손잡이 가까운 부분을 차례로 두드렸다. 위치마다 높이가 다른 맑은 소리가 나자 심사자들은 말없이 서로를 보았다.
다음은 강무진의 칼이었다.
첫 번째 드워프가 칼을 드는 순간 눈썹을 찌푸렸고, 두 번째는 확대경을 댄 채 한참 움직이지 않았다. 세 번째가 날과 등 사이에 떠오른 옅은 경계선을 손톱으로 긁어 보는 동안 도리아의 팔짱이 천천히 풀렸다.
“왜 그러나?”
심사자는 대답하지 않고 강무진의 칼을 시험망치로 두드렸다.
팅.
맑은 울림이 대장간 천장까지 솟았다.
다시 칼등을 쳤다.
텅.
이번에는 낮고 질긴 소리가 났다.
한 자루의 칼에서 서로 다른 쇠처럼 두 개의 울림이 나자 도리아가 모루 앞으로 한 걸음 다가왔다.
그의 눈에서는 처음의 뜨거운 오기가 사라져 있었다. 대신 화덕 앞에서 쇠가 예상과 다른 빛을 냈을 때 장인이 짓는 표정이 떠올랐다.
아직 휨과 날 시험이 남아 승자는 정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강무진의 칼에서 서로 다른 두 울림이 난 순간, 처음부터 자신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던 도리아가 먼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칼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채 아주 낮게 중얼거렸다.
“저 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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